최근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창업이 제2의 붐을 맞으면서 초기기업 투자에 집중하는 벤처캐피털(VC)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소액으로 여러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마이크로 벤처캐피털(Micro VC)이 지난 몇 년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이다. 기존 벤처캐피털과 달리 이들은 5억원 내외의 비교적 적은 금액으로 여러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도 이런 투자 방식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설비투자가 필요없는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창업이 늘어나면서 소액으로 다양한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투자한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도 마이크로 벤처캐피털의 특징 중 하나다. 한국 벤처업계의 르네상스를 뒷받침 하고 있는 마이크로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을 만나 투자 원칙과 노하우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임지훈 케이큐브벤처스 대표

“역량 있는 사람들이 창없하고 꿈을 만들어 가는 것은 결국 엔드 유저(최종 소비자), 즉 국민들에게 좋은 일입니다. 창업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삶의 질을 증진시키는 것들이 기업의 형태로 나오게 되고, 그럴 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저희는 남들이 안하지만 꼭 필요한 곳에 투자하려고 노력 합니다. 사람을 보고 투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설립 2년만에 30여개 스타트업에 투자, 민간 자본만으로 115억 규모 펀드 설립,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만든 벤처캐피털, 30대 초반 최연소 벤처캐피털 업체 대표.

초기기업 전문 벤처캐피털 케이큐브벤처스와 임지훈 대표를 설명하는 수식어들이다. 눈길을 끌만한 화려한 것들이지만, 임 대표가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내용은 따로 있다. 투자한 스타트업 중 창업 1년 미만 업체가 3분의 2에 이른다는 점이다. 서비스가 출시되기 전에 투자한 업체가 전체 투자사의 절반을 넘고, 법인 설립 전 투자한 곳도 6곳이나 된다. 국내에서 가장 모험적인 방식으로 투자를 진행하는 벤처캐피털 중 한 곳이 바로 케이큐브벤처스다.

◆ 스타트업에 투자 기회 많아

왜 그렇게 열정적으로 창업 초기 기업에 투자하냐는 질문에 임 대표는 당연하다는 듯 “매력적인 투자 기회가 많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케이큐브벤처스가 2012년 이후 투자한 스타트업은 공개되지 않은 것을 포함해 30개 이상인데, 그 중 70%를 사람만 보고 투자했다는 게 임 대표의 설멍이다. 최근 스타트업 생태계가 살아나면서 좋은 스타트업이 많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에 투자를 많이 하게 된다는 것이다.

“왜 벤처캐피털을 만들었느냐는 질문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김범수 의장과 회사를 만들 때 생각했던 것이 대한민국에 훌륭한 인재가 많다는 점이었어요. 최고 수준 인재들은 실리콘밸리의 최고 수준 인재들과 비슷하지만 구조적으로 한국에는 초초기 기업 투자, 즉 매출이 발생하기 전에 투자하는 사례는 별로 없었습니다. 돈이 필요한 유능한 사람들이 역량과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투자한 회사들이 활발하게 경험과 정보를 공유한다는 점도 케이큐브벤처스가 계속해 초기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배경이 되고 있다. 케이큐브벤처스로부터 투자 받은 업체들은 임원진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게시판, CEO들이 한 달에 한번씩 모이는 ‘패밀리 데이’ 등을 통해 긴밀하게 교류하고 있는데, 이것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케이큐브벤처스의 스타트업 커뮤니티에 가입하고 싶어 투자 신청을 한다거나, 이미 투자 받은 회사가 다른 회사를 소개해 투자 받게 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한달에 한번씩 투자 받은 회사 CEO들이 저녁 7시에 모이는데, 보통 새벽 3~4시 까지 남아 정보와 경험을 공유합니다. 서로 자신의 사례를 공유하고 심리적으로 동지의식이 생기는 거죠. 패밀리 데이 외에 자발적으로 만나는 모임이 생길 정도입니다. 투자받은 회사들이 다른 회사를 추천해주는 선순환 구조가 되고 있는데, 기술적 문제 등 실질적인 도움도 서로 주고 받을 정도로 공동체가 끈끈합니다.”

케이큐브벤처스의 캐치프레이즈

◆ 진정성과 실력 보고 투자…벤처기업은 문제 해결하는 곳

임 대표는 창업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오히려 위험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제품 및 서비스가 나온 뒤에 투자하는 것과 좋은 팀을 보고 투자하는 것의 차이(갭)가 크면 위험한데, 실제로는 그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의미있는 일이며 돈도 벌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며 “좋은 취지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지속 가능성이 뒷받침 돼야 하는데, 그러려면 업계 최상위권의 수익률을 낼 수 있다는 점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좋은 팀이 갖춰야할 두가지 요건으로 진정성과 실력을 꼽았다. 실력이 있는데 진정성이 없으면 성공 확률이 낮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것. 그는 “실력 있는 사람들 중에 미국에서 뜨면 비슷하게 만들어 해보려는 사람들이 있다”며 “그 일을 왜 꼭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세상에 꼭 필요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묵묵히 해나가는 사람들이 결국 성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대표적인 예가 키즈노트입니다. 대표이사의 딸이 어린이집에 다니는데 공책에 수기로 적는 방식이 너무 비효율 적이라고 느꼈고, 그 문제를 해결해야 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죠. 0~4세 자녀를 둔 대한민국 부모들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면 대한민국의 행복을 증진하게 되는 것이죠. 이런 점이 사업계획서를 멋지게 쓰거나 매출이 숫자로 찍히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벤처기업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곳이란 게 그의 투자 철학이다. 누군가의 고통을 해결해 주는 게 벤처기업이며, 문제를 풀고 있는 회사에 투자한다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고 그는 말했다.

케이큐브벤처스가 투자한 이미지 인식 기술업체 '클디(CLDI)'의 데모 실행 화면

◆ 기술기반 스타트업에 관심

임 대표가 벤처투자 업계에 몸담게 된 것은 우연에 가까웠다. 카이스트를 졸업한뒤 NHN에 취업해 직장생활을 했던 그였다. 직장생활을 하던 중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잠깐 일하기도 했는데, 결국 본인은 인터넷이나 IT 쪽에서 공헌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2007년 국내 주요 벤처캐피털 중 하나인 소프트뱅크벤처스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고, 그 이후로 쭉 벤처투자업계에서 일하게 됐다.

“벤처캐피털리스트로 지내는 게 행복한 이유는 제가 하는 일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하루 제가 하는 일이 의미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다는 점이 멋진 것 같아요. 저는 이런 일을 할 수 있게된 것 자체가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뿐만 아니라 회사의 다른 직원들도 주도적으로 일을 찾아서 합니다. 하는 일이 의미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이죠.”

임 대표가 최근 관심을 갖고 있는 스타트업은 극도의 기술기반 업체들이다. 국내에 훌륭한 연구원들이 많은데, 좋은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대기업 등에선 그 분야에 관련된 일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훌륭한 기술을 개발한 박사님들에게 용기를 드리고 초기부터 투자해 창업을 유도하는 데 큰 관심을 갖고 있다”며 “꽃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이 있다고 치면, 이런 앱이 20개 새로 나오는 것 보다 기술기반 벤처가 나오는 편이 국가 경제에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테면 ‘클디(CLDI)’라는 이미지 인식 업체가 있는데, 이와 같은 기술을 활용하면 옷을 사진으로 찍어 웹상에서 유사한 옷을 찾는 것이나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사진을 인식해 종류별로 분류해 주는 등의 서비스가 가능하다.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새로운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사용자가 사랑하는 서비스는 돈이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 유명한 카카오도 창업 후 5년 동안은 전혀 돈을 벌지 못했어요. 기술 기반 기업의 경우 시작은 어렵지만, 꼭 필요한 기술을 만들면 많은 사람들이 도와줄 수 있는 것이죠. 큰 기업이 인수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 초기 기업 투자 계속 집중할 것

임 대표는 이 같은 투자를 통해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아직 투자금을 회수한 사례는 없지만, 기업공개(IPO)가 충분히 가능한 회사가 벌써 3개 이상 된다는 것이다. 게임 개발사 핀콘의 경우 작년 이익이 100억원에 이른다. 임 대표는 “투자했을 당시 지분 가치가 워낙 낮기 때문에 수십배 리턴이 가능하다”며 “저희가 투자한 지분 가치의 5배 정도에 다른 벤처캐피털이 후속 투자를 한다거나, 인수합병(M&A) 제안을 받는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케이큐브벤처스가 운용하는 펀드는 115억원 규모와 300억원 규모 2개인데, 카카오의 출자금과 벤처 1세대들의 투자금이 들어가 있다고 한다. 그는 “2007년과 비교하면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훨씬 좋아졌다”며 “초기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곳도 15~20개 가량 있다”고 말했다. 투자자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대기업, 정부 등 벤처 생태계의 모든 이해 관계자들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국의 마이크로 벤처캐피털은 더 활성화 될 것이라고 봅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1~3억원만 투자를 받아도 창업할 수 있게 됐어요. 반면 1000억원 이상 규모의 대형 펀드를 만드는 벤처캐피털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벤처캐피털도 두 가지로 나뉘게 되는데 저희 회사가 나아갈 방향은 초기 투자라고 생각해요. 창업 후기 기업을 M&A(바이아웃)해 수익을 남기는 방향으로는 가지 않을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