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9일 강원도 삼척에서 실시된 원자력발전소(이하 원전) 찬반 주민투표의 후폭풍이 불고 있다. 주민투표에서 반대표가 85%에 이르자 다른 원전(原電) 예정지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북 영덕에서는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원전 반대 주장이 거세지고, 경북 울진군의 시민단체들은 신한울 원전 1~4호기 건설 조건으로 한국수력원자력이 제시한 금액(2000억원)보다 1000억원을 더 지원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다. 정부 당국으로선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뾰족한 해법도 없어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전국에 확산되는 '원전 건설 반대'

정부는 2035년까지 국내 총 발전 용량에서 원전 비중을 29%로 유지하기로 확정한 상태다. 이를 위해 공사 예정 또는 진행 중인 11기의 원전 외에 7~10기를 더 지을 방침이다. 2012년에 삼척과 영덕을 신규 원전 예정 구역으로 지정하고 각각 150만㎾급 원전 4기씩을 짓는다는 계획을 세웠다.

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 원전 전경. 강원도 삼척과 경북 영덕군 등 원전 예정지에서 원전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원전을 대체할 만큼 값싸고 안정적인 발전원이 없다며 원전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해당 지역에서는 반대 여론이 높다. 한국농업경영인 영덕군연합회는 전(全) 군민(郡民)을 상대로 주민투표를 실시하라는 청원서를 냈고 울진에선 범군민대책위원회가 구성됐다. 장유덕 공동위원장은 "정부와 한수원이 신한울 원전 1~4호기 건설을 위한 선결 과제로 상수도 확충과 교육·의료 등 8개 사업을 지원하겠다고 한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 (원전 건설) 저지 투쟁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강원·삼척 지역 2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이뤄진 강원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이달 10일 "정부가 원전 건설 계획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전국 시민단체와 연대해 강력한 대(對)정부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성명서를 내놓았다. 이에 따라 정부의 원전 건설사업이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원전은 가장 안정적이고 값싼 에너지源"

하지만 국내 전력 수요가 매년 5%씩 늘어나는 상황에서 정부는 원전 건설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산업통상자원부 당국자는 "원전만큼 값싸고 안정적인 발전원(源)이 없다"며 "현재 가동 중인 100만㎾급 원전 건립에 필요한 부지는 33만㎡이나 이를 태양광발전소로 대체하려면 300배나 넓은 9900만㎡의 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발전 단가(單價) 측면에서도 원전은 ㎾h당 39원으로 유연탄(59원)이나 LNG(159원)발전소보다 훨씬 싸다. 정부 관계자는 "삼척·영덕 원전을 화력발전으로 대체할 경우 15% 정도 전기요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박사는 "원전을 포기하고 석탄·석유·가스로 발전을 할 경우 해외 자원 가격에 따라 전기요금이 등락(騰落)을 거듭하게 돼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새 일자리 제공 등 體感型 지원 필요"

이런 원전 건설을 제대로 추진하려면 무엇보다 주민 신뢰 회복이 급선무라는 지적이 많다. 원전 유치에 따른 지역 발전 효과 등을 정부가 많이 부각했음에도 원전 불량 부품·비리 사건 등이 연이어 터지면서 국민의 믿음을 잃었기 때문이다. 조성경 명지대 교수(자연교양학)는 "원자력 연구·개발(R&D) 관련 재원을 원전 안전 분야에도 집중 투자해 원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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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주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인센티브 제공도 필요하다. 정부가 원전 대상 지역에 제공하는 인프라 구축 등을 위한 사업비 지급 방식의 인센티브는 주민들에게 직접적인 이익이 되지 않는 탓이다. 한 전문가는 "원전 건립지 주민에게 파격적으로 싼 가격의 전기 공급을 포함해 주민들이 가시적인 혜택을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병원·체육관 등 공공시설 건립 같은 일회성 지원을 넘어 지역 주민들이 지속 가능한 이익을 얻어 같이 성장하도록 접근법을 바꿔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목진휴 국민대 교수(행정학)는 "원전 유치 지역에 원전 설비·부품 같은 관련 기업들을 동반 진출시켜 지역 주민들이 안정된 일자리를 많이 얻도록 해야 한다"며 "원전 운영 인력 양성 기관을 세워 현지 주민들을 훈련한 다음 운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