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방송 안테나 업체 '필셋'은 주요 부품과 케이블을 중국의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닷컴'에서 조달한다. 위성 수신 장치와 TV를 연결하는 'HDMI 케이블(cable)'이 대표적이다. 부품 구매를 담당하는 염정훈 부장은 "1.5m 길이 고품질 HDMI 케이블은 국내 업체는 4000원쯤 하는데 알리바바에서는 2달러(약 2120원)면 살 수 있어 주 조달 창구로 이용한다"며 "제품이 당장 없어, 원하는 규격을 알리바바 사이트에 등록해두면 조건에 맞는 기업으로부터 금방 연락이 오기 때문에 정말 편리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알리바바닷컴 검색창에 'HDMI Cable'이라고 입력해보니 길이와 품질에 따라 0.6달러(600원)에서 20달러(약 2만원)까지 케이블 수천종이 화면에 나타났다.

현재 알리바바에서 물건을 파는 회사 280만개(2012년 말 기준)의 약 80%는 중국 업체다. 반대로 물건 구매자 3670만명의 60% 이상은 중국이 아니라 한국·미국·일본 등이다. 알리바바가 글로벌 거래 장터를 틀어쥔 덕분에 중국 구석구석에 있는 중소 제조업체가 이 '파이프라인'을 타고 전 세계로 상품을 팔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은 200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접속 속도 등을 바탕으로 '인터넷 강국'으로 대접받았다. 당시 중국은 세계시장에 이름을 알린 인터넷 기업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완전히 역전됐다. 중국은 알리바바 외에 텐센트·바이두·샨다 등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하는 인터넷 기업이 즐비하지만, 우리는 모바일 메신저 라인을 갖고 있는 네이버 정도만 있을 뿐이다.

미국의 경제 전문지(誌) '포브스'는 2013년 중국의 인터넷 포털 기업 바이두를 아시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세계 6위)으로 선정했다. 알리바바는 5위(세계 18위)에 올랐다. 하지만 한국의 인터넷 기업은 단 한 곳도 100위 안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인터넷·모바일 비즈니스에서 한국이 중국의 변방국으로 추락할지 모른다는 지적도 나온다.

네이버와 다음카카오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최재홍 강릉원주대 교수(멀티미디어공학)는 "인터넷과 모바일 분야는 그 자체로도 큰 산업이지만, 에너지나 교통망처럼 모든 산업의 기반이 되는 기술이자 플랫폼"이라며 "이 분야에서의 '한·중 역전'은 다른 산업의 경쟁력 역전까지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알리바바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의 80%를 차지하는 중국 최대 인터넷 기업. 기업 간 거래(B2B)를 하는 ‘알리바바닷컴’과 개인 간 거래(C2C) 형태의 ‘타오바오’, 기업과 개인 간 거래(B2C) ‘티몰’, 결제대행 서비스 ‘알리페이’ 등을 운영한다. 월간 실사용자는 2억7900만명. 작년 총 거래액은 2480억달러로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의 2배가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