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낮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지하 1층 '나인웨스트' 구두 매장. 10월이 눈앞에 다가온 이날 매장에는 한여름에나 신을 법한 샌들이 가득 진열돼 있었다. '낮은 여름, 밤은 겨울' 같은 날씨 덕에 올해 9월에는 샌들 판매가 작년 9월과 비교해 60% 정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선대 롯데백화점 이사는 "지난해보다 매장에 진열된 샌들 비중이 2배 정도 늘었고 새벽과 밤의 쌀쌀한 날씨 영향인지 겨울용 부츠 매출도 이달 들어 계속 늘고 있다"고 말했다.

특이한 것은 구두 매장만이 아니다. 8월 말이면 백화점에서 사라지던 반소매 의류도 올해엔 이달 중순까지 진열대를 지켰다. 심지어 롯데백화점의 9월 수영복 매출도 작년보다 12% 정도 늘었다. 커피전문점 파스쿠찌에선 '아이스 아메리카노' 판매가 11% 넘게 증가했다.

낮은 여름이면서 밤에는 겨울과 같은 뒤죽박죽 날씨가 유통업체의 매장 풍경을 바꿔놓고 있다. 여름 상품과 겨울 상품 판매가 동시에 늘어나는 기(奇)현상이 나타나는가 하면 여름에도 안 팔리던 모기약 매출이 늘고 있다. 오락가락하는 날씨 탓에 유통업체들이 상품 구색 캘린더를 맞추느라 안간힘을 쏟고 있다.

여름과 겨울 상품 同時 인기. 왜?

기상청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25일까지 전국 낮 최고기온 평균은 평년(1981~ 2010년 평균)보다 섭씨 0.5도 높았으나 아침 최저기온은 0.2도 낮았다. 특히 서울지역은 같은 기간 최고기온이 평년보다 1.8도 높게 나타났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은 "평년보다 1~1.5도 정도만 높아도 무더위라고 느끼는 것을 감안할 때 소비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칠 만한 수치"라며 "특히 강수량이 적고 맑은 날씨가 이어지면서 일사량(日射量)도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올 9월 들어‘낮은 여름, 밤은 겨울’과 같은 일교차(日較差) 큰 날씨가 이어지면서 같은 매장에서 여름옷과 겨울옷이 동시에 팔리는 기현상(奇現象)이 나타나고 있다. 29일 서울 중구 봉래동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고객이 옷을 고르고 있다.

이런 변덕스러운 날씨 덕에 대형마트·백화점 등에서는 여름 상품인 선글라스, 반소매 티, 샌들과 겨울 상품인 오리털 점퍼, 온수매트, 핫팩을 동시에 판매하는 이례적인 모습이 잦아지고 있다.

선글라스는 많아진 일조량 덕을 톡톡히 봤다. 현대백화점은 8월엔 선글라스 매출이 작년보다 1% 정도 줄었으나 이달 들어 28일까지 24%나 급증했다. 지난해 9월 성장률(4.7%)과 비교해서도 큰 폭이다.

현대백화점은 8월 말까지 운영하던 선글라스 매장을 올해는 수도권 8개 점에서 계속 운영 중이다. 올여름 히트 상품인 '냉장고 바지'의 경우도 6월보다 9월 매출이 더 많다. 인터넷쇼핑몰 AK몰 관계자는 "9월 들어 판매액이 3000만원으로 이미 8월 전체 매출을 넘어섰다"며 "여름을 앞둔 6월 매출의 1.6배 수준"이라고 말했다.

아침·저녁으로 추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오리털 점퍼 매출도 늘고 있다. 인터넷쇼핑몰 11번가에서 오리털 점퍼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0% 늘었다. 이 회사 평균 매출 증가율 10%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이마트는 대표적인 겨울 상품인 전기요와 온수매트를 작년보다 2주가량 이른 9월 중순부터 매장에서 팔기 시작했다.

이종훈 이마트 마케팅 팀장은 "일교차가 커지면서 난방용품 판매 시기는 평소보다 앞당겨졌지만 낮 더위 때문에 모기약 판매도 1주일 이상 길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올 가을·겨울 날씨는?…난감한 유통기업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업체들은 난감해하고 있다. 여름 상품과 겨울 상품을 동시에 원하는 소비자 수요를 무시할 수 없지만 겨울이 다가오는 마당에 여름 상품을 마냥 늘리기도 곤란하기 때문이다. 송영민 BGF리테일 팀장은 "여름 상품 재고를 충분히 확보하면서 기온변화에 맞춰 가을·겨울 상품 주문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는 3~4년 만에 처음 가을 날씨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때문에 유통기업들은 트렌치코트 같은 가을 상품 매출을 늘릴 수 있지만, 매출 비중이 더 큰 주력 겨울 상품 판매가 영향받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 백화점 임원은 "지난겨울 패딩 판매가 호조를 보여 패딩 점퍼 등 겨울 용품 주문을 크게 늘렸는데, 자칫 가을이 길어지면 재고를 잔뜩 안을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