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업계가 금융당국이 미지급 자살보험금 지급 권고에 따르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 자살보험금을 지급하기 시작하면 보험금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늘 것으로 예상돼 부정적 여론을 감수하고 시간을 끄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셈이다.

2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12개 생명보험사들은 30일 '미지급 자살보험금을 지급하긴 어렵다'는 결론을 금융감독원에 전달할 계획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생보사끼리 머리를 맞대본 결과 금감원에서 지도한 방침에 대해 결론을 쉽사리 내리긴 어렵다는 데 분위기가 모아졌다"며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분쟁위)로 올라가든 채무부존재(법적 근거의 적용 여부를 가리는 소송) 소송을 내든 추이를 좀 더 지켜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자살보험금을 지급하겠다'거나 '지급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닌 시간을 두고 지켜보겠다는 애매한 결론인 셈이다.

금감원의 지도에 따르지 않게 되면 관련 규정에 따라 금감원 내 분쟁조정위원회로 해당 안건이 상정된다. 분쟁위가 열리기 위해서 통상 2~3주가 걸리고, 결론이 나지 않으면 분쟁위가 2·3차로 연장될 수 있다. 생보업계 관계자는 "(분쟁위의) 최종 조정안이 나오기 전에는 결정을 해야 하니 시간을 두고 더 고민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이 지도한 해당 민원은 현재 39건에 불과하지만 미지급 자살보험금을 일단 지급하게 되면, 사실상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는 방향으로 결정하는 셈이 돼 최소 수천억원의 보험금 폭탄을 맞게 된다. 채무부존재 소송을 거는 방법도 있지만 당국과 정면으로 맞설 뿐만 아니라 여론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는 것이 불 보듯 뻔해 최종 판단을 금감원 분쟁위에 맡기고 시간을 벌기로 한 것이다.

생보사의 결정은 '자살보험금을 주지 않으려고 시간을 끈다'는 부정적 여론마저 감수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안이 분쟁위로 가게 되면 민원등급에서 페널티를 받게 되고, "고객과의 약속(약관)을 무시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생보업계 한 관계자는 "생보사별로 앞으로 지급해야 할 금액만 최소 수백억이고 보험사의 결정에 따라 보험금이 더 커질 수 있는 만큼 보험금 지급은 쉽게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앞서 금감원은 현재까지 접수된 39건의 미지급 자살보험금에 대해 '이달 말까지 재해사망 특약에 따른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라'는 취지의 지도공문을 보냈다. 금융당국이 지난달 같은 안건에 대해 ING생명을 제재하고 "560억원을 추가 지급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금감원은 ING생명을 제외한 나머지 생보사를 대상으로 특별검사를 진행해 미지급 자살보험금 현황을 들여다 볼 방침이다.

한편 금감원이 생보사로부터 보고받은 미지급 자살보험금 규모는 최소 2197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