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일본 의료진이 노인성 황반변성증을 앓는 70대 여성 환자에게 세계 최초로 유도만능줄기세포(iPS세포)를 배양해 만든 망막세포를 이식했다.

노인성 황반변성증은 나이가 들면서 시세포를 받치는 망막색소상피세포가 손상돼 시력이 저하되고 심하면 실명(失明)에까지 이르는 병이다. 50대 이상 인구 중 1%가 걸리는 질병이지만 근본적인 치료제가 없는 실정이다.

빛을 감지하는 망막세포가 손상돼 시력을 상실한 환자가 미국 세컨드 사이트사의 인공 망막 '아르구스2'를 착용한 모습. 안경에 장착된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은 전기신호로 바뀌어 망막에 이식한 칩을 통해 바로 시신경으로 전달된다. 최근 망막세포가 손상된 환자를 위한 새로운 치료법 개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줄기세포, 미국과 유럽은 유전자 치료와 인공 망막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앞서 국내 차병원도 같은 병을 앓는 환자 3명에게 역시 세계 최초로 배아줄기세포로 만든 망막세포를 이식했다. 미국에서는 망막세포를 만드는 유전자를 주입해 망막세포를 되살리는 연구를 하고 있다. 실명을 막기 위한 세계 각국의 치열한 연구 경쟁이 시작된 것. 과연 누가 먼저 환자에게 빛을 되돌려줄까.

줄기세포 임상시험은 한국이 앞서

노인성 황반변성은 미국에서만 환자가 1000만명 이상이다. 망막색소상피세포가 파괴되는 것은 나이가 들면서 망막에 혈관이 과도하게 자라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현재로선 혈관 생성을 억제하는 약이 유일한 치료제이지만 이미 손상된 망막세포는 되살릴 수 없다. 세계 각국이 줄기세포와 유전자 치료에 매달리는 것은 바로 망막세포를 다시 만들 수 있는 근본 치료법이기 때문이다.

기존 치료제 시장은 4조원대 규모이다. 그보다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한 줄기세포나 유전자 치료가 상용화되면 그보다 몇배나 큰 시장이 창출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차병원 줄기세포연구소 이동률 부소장(오른쪽)과 안과 송원경 교수가 배아줄기세포 배양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차병원은 세계 최초로 노인성 황반변성증 환자에게 배아줄기세포로 만든 망막세포를 이식했다.

가장 앞선 쪽은 차병원이다. 차병원은 현재 미국과 한국에서 망막세포가 손상돼 발생하는 스타가르트병과 노인성 황반변성증 환자를 대상으로 배아줄기세포 치료를 하고 있다. 스타가르트병은 소아에서 나타나는 황반변성이다. 차병원은 미국에서 ACT사와 합작한 회사를 통해 노인성 황반변성증 환자 12명과 스타가르트병 환자 9명에게 배아줄기세포로 만든 망막세포를 이식했다. 국내에서는 두 병에 걸린 환자를 각각 3명씩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배아줄기세포는 수정란에서 인체의 200가지 세포로 자라나는 세포를 말한다. 정자와 난자가 만난 지 5일쯤 된 배아(수정란)에서 만들어지는 일종의 원시(原始) 세포다.

차병원은 지난 2년 동안 불임 치료 과정에서 폐기된 수정란에서 배아줄기세포를 추출한 다음 이를 망막색소상피세포로 자라게 해서 환자에게 이식했다. 배아줄기세포 치료제로는 세계 최초의 임상시험이다. 임상시험을 진행한 분당차병원 송원경 교수는 "임상시험이 성공하면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상시험에서는 시력 검사표에서 글자 하나만 볼 수 있던 환자가 13개 글자까지 볼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이 향상된 것으로 알려졌다. 차병원은 곧 임상시험 결과를 국제 학술지에 발표할 계획이다.

일본은 윤리 논란 없는 줄기세포에 주력

일본은 iPS세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배아줄기세포를 얻으려면 수정란을 파괴할 수밖에 없어 윤리적 논란이 있다. iPS세포는 환자의 피부 세포를 이용해 배아줄기세포와 같은 상태로 만든 것이어서 그런 문제가 없다. iPS세포는 2006년 일본 교토대의 야마나카 신야 교수가 처음 개발했다. 야마나카 교수는 이 공로로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일본 정부는 주도권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10년 동안 매년 110억엔(약 1050억원)을 iPS세포 연구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기로 했다.

일본 이화학연구소는 노인성 황반변성증 환자의 팔에서 피부 세포를 떼 iPS세포로 만들고서 이를 1.3㎜×3.0㎜ 크기의 망막색소상피세포 조직으로 분화시켜 눈에 이식했다. 앞서 원숭이 실험에서 iPS세포로 만든 망막색소상피세포는 면역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았으며, 암세포로 자라는 문제도 없었다. 연구진은 앞으로 1년 동안 이식된 세포가 문제없이 자라는지 알아볼 계획이다. 미국 연구진은 2017년쯤 iPS세포를 이용한 황반변성증 치료 임상시험을 시작할 계획이다.

배아줄기세포와 iPS세포의 임상시험이 실명 환자에게 가장 먼저 시행되는 것은 눈이 외부에 노출된 기관이라 치료 효과를 쉽게 확인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기관과 달리 면역 거부 반응이 덜 하다는 장점도 있다. 병세가 조금만 호전돼도 삶의 질이 획기적으로 바뀌는 점도 큰 매력이다.

◇미국 유럽에서는 유전자 치료 활발

미국과 유럽에서는 유전자 치료에 집중하고 있다. 올 초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맥락막 결막이라는 희귀 유전병에 걸린 실명 환자의 눈에 유전자를 주입해 처음으로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게 하는 데 성공했다. 이 병은 X염색체에 있는 CHM이라는 유전자가 결핍돼 일어나는데, 미 국립보건원(NIH)에 따르면 실명 환자의 4%가 여기에 해당한다. 연구진은 독성이 없는 바이러스에 이 유전자를 집어넣고 눈에 주입했다. 망막에 이식된 유전자는 망막세포를 새로 만들어 시력을 회복시켰다.

배양 용기에 들어 있는 줄기세포. 줄기세포는 실명 환자에게 빛을 줄 수 있는 치료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미국 벤처기업 스파크 테라퓨틱스(Spark Therapeutics) 연구진은 같은 방식의 유전자 치료로 레버선천성흑암시(LCA)라는 유전병에 걸린 실명 환자의 시력을 호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스파크사는 임상시험이 계획대로 진행되면 2016년쯤 환자 시술에 대한 승인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의 세컨드 사이트(Second Sight)는 손상된 망막세포를 되살리는 대신 아예 인공 망막을 이식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작년 말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아르구스(Argus)2'가 그것이다. 아르구스2는 망막색소변성증을 앓는 환자가 대상이다. 망막색소변성증은 빛을 감지해 전기신호로 바꾸어 시신경에 전달하는 세포 기능이 망가져 끝내는 시력을 잃는 질환이다. 하지만 시신경 자체의 기능은 살아 있다. 아르구스2는 선글라스에 장착된 카메라가 찍은 영상을 휴대용 컴퓨터로 전기신호로 바꾼다. 망막에 이식한 칩은 이 신호를 받아 시신경에 전달한다. 가격은 14만4000달러(약 1억5000만원)이다.

FDA는 인공 망막 시술 대상을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은 25세 이상의 망막색소변성증(RP) 환자로 제한했다. 하지만 조만간 노화에 따른 시력 감퇴에도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세컨드 사이트사는 망막에 이식하는 칩의 전극 수를 늘리고 소프트웨어를 개선해 곧 노인성 황반변성증 환자에게도 임상시험을 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