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 경제와 주식시장을 이끌어 온 전(電)·차(車) 군단이 흔들리고 있다. 한때 한국 증시 시가총액의 25%, 당기순이익의 50%를 차지하던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각기 다른 요인으로 증시에서 연일 신저가(新低價)를 기록하며 위기 조짐을 보이자 전체 주식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두 기업의 주가 부진은 직간접적으로 전 국민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두 기업의 주식을 직접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우리 국민 대부분은 펀드·변액보험·국민연금 같은 공적연금 등의 형태로 두 기업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국민의 노후생활 보장 수단인 국민연금의 경우 두 회사의 주가 하락으로 1년 전에 비해 5조원가량 자산이 증발했다.
◇흔들리는 투톱 체제
24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전날보다 1% 하락하며 지난 2012년 이후 최저가를 다시 고쳐 썼다. 삼성전자에 부품을 공급하는 삼성SDI·삼성전기 등의 계열사도 동반 하락세를 보였다. 3분기 실적에 대한 우려로 8월 이후 내리막을 타던 삼성전자의 주가 하락에 기름을 부은 것은 지난 22일 삼성증권이 내놓은 보고서다.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이 5조원을 밑도는 4조7000억원에 그칠 것이라는 이 증권사의 보고서 이후 비관적인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24일 동양증권은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을 증권사 중 최초로 3조원대(3조9500억원)로 예상하는 보고서를 냈다.
현대차는 일본차의 공세와 원화 강세라는 외부적 요인에다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 고가 낙찰이 직접적인 악재로 작용했다. 올해 내내 안정적인 20만원대를 유지하던 현대차 주가는 한전 부지 낙찰이 결정된 지난 18일 9% 넘게 급락하며 20만원 선이 무너진 이후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현대차 주가는 24일에도 0.26% 반등하는 데 그쳤다.
두 회사의 주가가 동반 하락하면서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줄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4일 현재 두 회사가 유가증권 시장 전체 시가총액(주식 수와 주가를 곱한 것)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6%로 최근 3년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주가 하락으로 증발한 금액도 천문학적이다.
52주 고가와 비교할 때 사라진 시가총액은 삼성전자가 51조원, 현대차가 16조원에 이른다. 한국 증시의 투톱 체제가 급격히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현대차의 투톱 체제는 2010년 무렵 형성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현대차가 공격적인 경영과 세계시장 점유율 확대에 힘입어 포스코를 밀어내고 시가총액 2위에 오르면서다.
이후 전(電)·차(車) 군단은 한국 증시를 떠받치는 버팀목 역할을 해왔지만, 한편으로는 두 회사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는 부작용도 낳았다.
◇증시 박스권 벗어나기 힘들 듯
일부에서는 투톱의 위기가 증시의 쏠림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김형렬 교보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시가총액 1·2위 기업이 52주 신저가를 기록하는데도 코스피는 1년 전과 비교해 연중 최고치 수준"이라며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IT와 자동차의 부진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파급이 제한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대신할 교체선수가 없다는 점에서 두 기업의 부진은 한국 경제와 증시에 상당한 부담이 될 전망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상무는 "현대차의 주가 하락은 일시적인 요인이 큰 반면 삼성전자는 글로벌 경쟁력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문제가 더 심각하다"며 "증시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두 회사가 반등하지 않는 한 한국 증시가 박스권을 뚫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