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학 교수

“걱정해야 할 것은 내 책이 아니라 불평등의 심화입니다. 이 책이 불평등을 낳은 원인은 아니잖아요.”

43세 동안(童顔)의 스타 경제학자의 답변에서는 여유가 묻어났다. ‘21세기 자본’이라는 묵직한 제목의 책 한 권으로 단번에 글로벌 담론의 중심을 점령한 신데렐라. 한국어판 출간에 맞춰 방한한 저자 토마 피케티 파리 경제대학 교수는 “국내 일부 보수층은 당신이 책에서 제시한 과세 해법이 투자를 위축시킬까 우려한다”는 기자의 말에 재치있게 응수했다.

어느새 세계 만방에 ‘부의 불평등’을 소리 높여 외치는 선지자가 된 그는 19일 조선비즈·조선일보와의 공동 단독 인터뷰에서 “불평등은 경제 성장에 꼭 필요하지만 어느 선을 넘어서면 성장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규제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한 프랑스 억양의 영어에 귀를 한껏 집중해야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할 말은 조목조목 다 했다. 질문자가 답변을 자르고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40분 정해진 시간에 준비해간 질문을 못다 했을 정도로 답이 길었다. 한글 번역서로만 820쪽에 이르는 대작은 알고 보니 그의 언변을 반영한 것이었다.

바로 전날 오후 한국에 도착한 후 이날 아침부터 이어진 빡빡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청바지, 노타이 흰색 셔츠에 짙은 회색 자켓을 걸친 채 마주한 그는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사이사이에도 어린아이 같은 웃음을 자주 웃었다.

그는 “한국의 경우에도 상위소득층에 대한 누진과세를 통해 얻은 세수로 공교육과 국민건강에 투자하는 것이 불평등 감소는 물론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외에 ‘21세기 자본’ 집필 동기에서부터 책이 촉발한 여러가지 쟁점에 대해 조목조목 답했다. 다음은 일문 일답.

-책 한 권으로 신데렐라가 됐다. 뉴욕타임스는 ‘록스타 이코노미스트’라고도 불렀다. 열띤 반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책을 쓸 때, 부의 불평등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되 전문적인 경제학서가 아니라, 가능한 한 실감나고 잘 읽히게 쓰려고 노력했다. 불평등 문제는 누구나 관심을 갖는 문제다. 책에 대한 반응이 좋은 이유도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이 많고 이 책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가끔은 내가 록스타라 불리고 미디어의 뜨거운 조명을 받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 내 책을 펴 보지도 않고 의견을 내놓는 경우를 종종 본다. 하지만 내 책을 읽어보고 쓴 경우에는 덜 비판적이다. 왜냐면 책 내용을 보면 생각보다 균형잡힌 것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개의치 않는다. 이 문제에 관한 토론과 논쟁이 일어나는 것으로도 성공이니까. 좋게 생각한다.”

-요즘 매일같이 이메일이 밀려들겠다. 얼마나 많이 받나?

“그것만큼은 문제다. 왜냐하면 내가 답신을 보내는 데 점점 더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직접 답신을 보내려고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게 어려울 정도가 됐다.”

-책 출간 후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나라를 다녔나?

“번역서가 나오는 국가 수는 조만간 38개국이 된다. 한국은 아주 빠른 편이다. 맨 처음 프랑스에서 출간된 후 영어판, 2주 전 이탈리아어판 다음으로 한국어판이 네 번째였다. 그 다음으로 독일, 스페인, 중국, 일본, 브라질에서 나온다. 10~12월 사이에 많은 나라에서 번역서가 나올 예정이다. 12월까지 방문 계획도 많이 잡혀있다.여러 나라를 방문할 계획이다. 11월에 중국, 내년 1월에 일본 방문이 잡혀있다. 출간 후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첫 방문국이다.”

-지금까지 외국 학자가 책으로 한국에서 빅 스타가 된 것은 두 차례다. 이전에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에 이어 당신이 두번째다.

“샌델 교수는 나도 잘 안다. ‘정의란 무엇인가’도 전체를 다 읽지는 않았지만 일부를 읽었다. 한국에서 크게 성공했다니 흥미롭다.”

-샌델 교수 책의 주제가 정의였고, 당신 책은 불평등이다.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하나?

"한국 사정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한국에서도 최근 수십년 사이 불평등이 증가한 사실 때문에 정의나 불평등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일 수 있다. 최근 자료를 보면, 한국에서 최상층부와 하위층 사이의 소득 격차가 20년 전에 비해 꽤 큰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프랑스 수준이고 유럽이나 일본보다는 높게 나왔다."

-'21세기 자본'이 당신이 15년 연구한 결실이라고 했다. 박사 논문 주제도 불평등이었다. 이 문제에 일찍부터 오래 관심 가져온 개인적인 이유나 사연이라도 있나?

“개인적인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사실 소득과 부의 분배 문제는 정치경제학에서 중심 이슈였다. 19세기에 많은 경제학자들이 불평등 문제에 관심이 있었다. 20세기에 와서도 미국의 사이먼 쿠츠네츠가 불평등에 대해 연구했다. 나도 아주 오랜 정치경제학 전통을 따른 것이다. 다만 최근 수십년 사이에 분배 문제에 큰 관심이 없었다. 아마도 불평등에 관한 역사적 자료를 사용한 연구가 경제학자들이 보기에는 너무 역사학적이고, 역사학자들이 보기엔 너무 경제학적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경제학이 스스로 과학을 추구하면서 사회학자와 역사학자와 멀어진 것도 경제학자들의 연구를 소박하게 만든 한 가지 이유다. 나는 분배 문제를 정치경제학의 중심으로 다시 끌어올리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경제학을 역사학적이고 사회학적인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책이 출간된 후 숱한 논의가 있었다. 어떤 비판이 가장 아팠나?

“당신 생각에는 어떤 비판이 그렇다고 보나?”

-처방으로 제시한 글로벌 자본세 과세 같은 경우 너무 나간 것 아닌가 하는 지적이 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오해가 많다. 나도 80%의 글로벌 자본세가 현실에 조만간 적용될 수 없을 거라는 비판에 동의한다. 글로벌 정부나 글로벌 과세가 최소한 가까운 미래에는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방면으로 국제 공조를 강화하는 것은 가능하다. 가령 국제적 조세피난지를 차단하기 위한 국가 간 공조나 은행 정보 자동 공유 시스템 같은 것도 있다. 국제적으로 통일된 조세 제도는 아니더라도 국가 간 자금 이동에 대한 규제 감독은 가능하다. 이미 이 방향으로 진전이 있어왔다. 가령 유럽의 경우 수년 전까지만 해도 난공불락으로 보였던 스위스 은행의 비밀주의가 최근 깨졌다. 나는 글로벌 금융 자산 신고제 같은 것도 국가 간 조율을 통해 공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동 기자간담회에서도 나온 질문이지만, 국내 일부 보수파들은 당신이 제시한 자본에 대한 과세를 통한 문제 해법이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보수파들이 걱정해야 하는 것은 내 책이 아니라 늘어나고 있는 불평등이라고 생각한다. 내 책이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원인은 아니지 않나.(웃음) 나는 언제나 어떤 문제에 대한 최선의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정보를 접하고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저 부정하는 것은 좋은 전략이 아니다. 과거를 돌아보면서 역사적 경험을 놓고 차분한 논쟁을 벌이는 게 중요하다. 한국 경제는 전통적으로 미국식 모델을 따랐고 미국에 가깝다. 미국은 과거 아주 오랫동안 상위 부자들에게 아주 높은 누진 소득세를 적용한 적이 있다. 1930~50년대 미국의 평균 소득세율은 82%였다. 소련이 아니라 미국이 그랬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 자본주의가 붕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1950~70년대 성장률이 지금보다 높았다. 오히려 지난 1990~2010년 사이 30년 동안 불평등이 더 늘어났고 성장률은 이전보다 더 떨어졌다. 내가 보수파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데올로기는 잊고, 사실을 들여다 보자’는 것이다. 내가 말한 여러 문제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지나온 역사적 추이에서 보이는 사실에 대해서는 우리가 함께 인정할 필요가 있다. 고율의 누진세가 반드시 자본주의 종말이라든가 성장의 종언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역사적 증거를 보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당신은 과거를 분석했다. 문제는 앞으로의 성장이다. 불평등의 심화 여부도 성장이 변수다. 선진국이나 신흥국의 성장 전망은 어떻게 보나?

"무엇보다 우선, 5% 성장률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최선의 정책을 편다고 해도 그렇다. 대부분의 선진국의 증거 자료들을 보면 장기적으로 성장률을 5%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은 앞으로 5년이나 10년 더 5%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 성장 과정을 보면 그 이후에는 계속될 수 없다. 그렇다면 가능한 한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한 최선의 정책은 무엇인가. 교육과 건강에 대한 투자다. 투자하려면 세수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공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사교육은 개인의 비용이 많이 들고 비효율적이다. 이런 경우 재능있는 어린이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날 경우 사회적으로 비효율이 된다. 세수를 늘려 교육에 대한 공공 투자를 강화해야 한다. 공교육 투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어떤 세제가 필요한가. 상위층에 대한 과세를 늘리면 가능하다. 한국과 유럽, 미국의 경험적 증거를 보면, 경영자들에게 수백억원대 보수를 주는 식의 고임금은 비효율이다. 이런 계층에 대한 세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 고액 연봉자들의 수입은 줄겠지만 이것이 성장을 저해하지는 않는다. 부가 중산층이나 그 이하로 더 많이 분산될 뿐이다. 지금 한국의 상황에서는 상층부에 대한 세금을 더 올려 공교육에 투자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

-당신 분석은 자본 축적이 오래된 선진국 사례를 토대로 한 것으로, 자본 축적이 더 필요한 신흥국에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있다.

“자본 축적이 더 필요한 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프랑스, 다른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어디나 자본 축적은 필요하다. 나는 자본 축적을 지지하는 사람이다. 자본을 아주 좋아한다. 자본은 성장을 위해 아주 유용하다. 자본은 더 많아야 한다. 하지만 그 부는 중산층에서 나와야 한다. 중산층과 하층에 의해 자본이 축적되야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자본 축적을 위해 부의 불평등이 극단까지 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최근 수십년 사이 최상층 억만장자 부자의 부가 더 늘었다. 선진국뿐만 아니라 신흥국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심각한 이슈가 되고 있다. 부자 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같은 나라도 그렇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러시아 같은 경우(중국도 어느 정도는 그런데), 부의 불평등이 심해지는 것을 그냥 뒀다가 어느날 갑자기 올리가르키나 신흥부자들을 부정축재나 부패 같은 이유로 갑자기 재산을 몰수하고 감옥에 넣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효율적이지 않다. 그보다는 부에 대해 과세를 통한 분배 방식이 낫다. 예측 가능하고 법치주의에 따른 것이다. 동시에 정부로서는 부에 관한 통계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과세야말로 부의 평등 문제를 다루는 가장 평화로운 방법이다. 누진 과세가 내가 보기에는 가장 민주적이고 문명화된 불평등 규제 방안이다.”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는 ‘위대한 탈출(The Great Escape)’에서 불평등은 성장을 위해 필요하다고 했다.

“나도 동의한다. 문제는 어느 정도의 불평등이냐는 거다. 불평등은 어느 정도까지는 아주 유용하지만 넘어서면 과도해진다. 더 이상 유용하지 않고 오히려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 가령 최고경영자에게 수백억원대 보수를 주는 것이다. 지금 관련 데이터를 모으고 있는 중이다.”

-그 기준점을 어떻게 알 수 있나.

“내 책을 봐라. 책 장사를 하려는 게 아니다. 거기에는 특정한 수학 공식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 역사적 증거를 비교해 봄으로써 알 수 있다. 가령 1차 대전 직전까지 유럽에 나타난 부의 불평등은 더 이상 성장에 유용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1, 2차 대전이라는 엄청난 충격이 있었고 그 후에 복지국가가 등장했다. 그 뒤 1950~70년 사이 불평등은 감소되었고 그때는 성장률도 높았다. 19세기의 극단적인 불평등은 성장에 유용하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다. 내 책의 교훈은 우리가 19세기에 겪었던 것과 같은 불평등은 21세기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확한 수학 공식은 아니지만 얼마간의 정보를 준다”

-불평등이 과도한지 여부에 관한 기준도 민주적 논의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고 쓴 것으로 이해한다. 맞나?

"그렇다. 민주 기구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역사적 증거와 같은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한 토론이 있어야 한다. 소득과 부에 관한 통계 자료 조사가 따라야 한다. 부에 대한 투명한 과세가 중요한 이유도 민주적 토론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부와 소득에 대한 누진세를 적용하려면 낮은 세율에서부터 출발해서 평가해 봐야 한다. 한국의 경우 누진세를 아주 낮은 세율에서 시작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의 구간에 따른 수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소득 구간에 따른 수가 얼마나 되는지. 이게 한국에 줄 수 있는 내 제안이다."

-결국 불평등이라는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인데, 정책 결정 과정이 부의 힘에 의해 굴절되기도 한다. 금권정치 문제 말이다.

"바로 그 점이 우리가 불평등 심화를 우려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평등이 극심해지면 첫째, 성장에 더 이상 유용하지 않고 비효율적 분배에 의해 오히려 성장을 악화시킬 수 있다. 그 다음으로 불평등 심화는 민주 제도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 1차 대전 이전 유럽에서 높아져가는 불평등 문제에 대처하지 못했던 이유 중 일부는 불평등이 너무 극심해져 정치 제도가 경제 엘리트에 의해 포획됐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경우 민주 공화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적으로 작동하지 못했고 결국 재정에 필요한 소득세를 두는 데 실패했다. 어떤 나라도 그런 극단적인 불평등 상황으로 가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은 책에서 젊은 시절 공산권 붕괴를 목격하며 자란 세대로서, 반(反)자본주의 레토릭에는 면역이 돼있다고 했다. 이제 사회주의는 끝났다고 보나.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대안 가능성은 없나?

"100% 국가나 공동 소유제 형태의 사회주의는 끝났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규제하는 또 다른 다양한 방식들이 많이 있다. 어떤 분야의 경우에는 공동 소유 방식이 여전히 유용하다. 가령 교육이나 공공 인프라 분야가 그렇다. 철도를 민간 소유에 맡길 경우 미국과 영국에서 보는 것처럼 좋은 서비스를 누릴 수 없다. 영역에 따라 사적 소유와 공공 소유가 적절히 안배되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강력한 민주 제도와 높은 투명성이 민영 자본주의가 공동의 이익에 봉사하도록 만든다. 민주적 자본주의는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의 노예가 되는 체제다."

-책에서 발자크와 제인 오스틴, 헨리 제임스 같은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속 이야기를 많이 인용했다. 원래 문학청년이어서 그런가, 일부러 이야기 서술의 방법론으로 택한 것인가?

“본래 문학책 읽는 것 좋아한다. 그 속에 등장하는 불평등 문제를 많이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학부 때 수학 전공이었다. 그 후에 문학 작품을 많이 읽긴 했지만.”

-다음 책 계획은?

“한국을 비롯해, 중국과 남미, 아시아 등 신흥국들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업데이트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