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회장.

현대자동차그룹이 18일 서울 삼성동 한전 본사 부지 인수에 예상을 뛰어넘는 금액(10조5500억원)을 적어내 낙찰을 받는 데 성공하며, '인수합병의 귀재'로 불리는 정몽구 회장의 승부수가 재계에서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1998년 기아자동차를 인수하고 현대·기아차 회장에 오른 정몽구 회장은 2001년 다이너스카드(현대카드)와 한국철도차량(현대로템)을 인수해 몸집을 키웠다. 3년 후인 2004년에는 INI스틸(현대제철)이 한보철강 당진공장을 인수하며 일관제철소의 꿈을 이뤘다. 쇳물부터 자동차까지 연결되는 종합 자동차 그룹으로 발돋움했다.

정 회장은 이어 2008년에는 신흥증권(HMC 투자증권)을, 2011년에는 현대건설을 각각 인수하며 현대자동차그룹을 재계서열 2위로 성장시켰다.

대규모 기업 인수를 할 때마다 과도한 투자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인수한 기업 대부분이 우량 기업으로 거듭나며 정 회장의 선견지명은 일단 옳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차는 기아차를 인수하며 부품 공동 사용 등으로 원가를 크게 낮출 수 있었고, 세계 5위권의 자동차 전문그룹으로 도약했다. 당시 인수 금액은 1조1781억원. 기아차는 지난해 28조원의 매출과 1조48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이어 1695억원을 들여 인수한 현대카드는 인수 당시(2001년)만 해도 업계 최하위권의 소규모 업체였지만, 현재 삼성카드 등과 2위권을 다투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기아차 구매본부장을 맡던 정몽구 회장의 사위 정태영 사장이 현대카드로 옮겨 현대카드를 이끌고 있다.

2004년 인수한 한보철강 당진공장은 오늘날 현대차그룹이 '쇳물부터 자동차까지'라는 정몽구 회장의 꿈을 실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보철강의 부도 이후 녹이 잔뜩 슬어 있는 공장을 인수한 현대제철은 2010년 1고로를 완공하며 일관제철소의 꿈을 이뤘다. 한보철강 인수에는 8771억원, 현재 3고로까지 고로를 짓는 데 투자한 돈은 9조8845억원에 달한다.

지난 2010년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열린 1고로 화입식에서 정몽구 회장이 고로에 불을 지피고 있다.

2006년 현대차그룹이 민간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일관제철소를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할 당시만 해도 과도한 투자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현대제철은 오늘날 세계 5위 자동차 업체로 성장한 현대·기아차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2004년 5조원이었던 매출액은 지난해 12조8000억원으로 뛰었고, 철강업계 순위도 세계 20위 안에 들어갔다.

정몽구 회장은 2011년 4조9601억원을 들여 현대건설을 인수하는 과감한 도전을 감행했다. 역시 옛 현대가 기업 인수라는 명분 때문에 과도한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내ㆍ외부의 우려가 컸던 상황. 하지만 현대차그룹에 인수된 이후 현대건설은 2011년 7226억원, 2012년 7604억원, 지난해 7928억원의 흑자를 이어가는 저력을 보였다.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1247억1000만원으로 업계에서 가장 많다.
2012년에는 해외수주 105억3000만 달러 및 연간 매출 10조원 이상을 달성했다. 올해 초에는 이라크에서 단일 플랜트 공사로는 역대 최대 규모인 6조4000억원 규모의 공사를 다른 건설사와 공동 수주하기도 했다.

정 회장의 통 큰 배팅이 기업 인수에서만 빛을 발한 것은 아니다. 그룹 내 투자에서도 위험을 무릅쓴 적이 많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에 지은 자동차 공장이다.

정 회장은 2000년대 초 미국 공장 건설을 결심하고 이를 추진했다. 선진국에 현지 공장을 짓는 것에 대해 내부에서도 위험하다는 것이 중론이었지만, 정 회장은 사운을 걸고 11억 달러(약 1조1500억원)의 투자를 결심했다. 2005년 완공한 앨라배마 공장에서는 현재 쏘나타와 아반떼 등 핵심 차종이 생산되며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지난 2005년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 준공식에서 정몽구 회장이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왼쪽 첫번째)이 지켜보는 가운데 첫 생산된 쏘나타에 사인을 하고 있다.

2004년 41만여대에 불과했던 현대차의 미국 판매량은 지난해 72만여대로 늘었다. 시장점유율도 2.5%에서 4.6%로 높아졌다. 앨라배마 공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성과다.

이번 현대차그룹의 삼성동 한전 본사 부지 입찰 역시 과도한 투자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감정평가액(3조3346억원)의 3배가 넘는 10조5500억원을 들여 땅을 사는 것이 개발 이익을 감안해서 볼 때 손해가 나는 구조라는 것.

하지만 현대차그룹에서는 "투자 목적이 아닌 실제 사용 목적으로 땅을 산 것이기 때문에 손익을 계산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면서 "100년을 쓸 사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무형의 가치가 더 크다고 판단한다"는 입장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금액으로만 보면 무리한 투자라는 평가가 많지만, 현대차그룹이 지금처럼 성장을 이어간다면 사옥의 유·무형 가치는 더 높아질 것"이라면서 "특히 과거와는 달리 현대차그룹의 자금이 풍부하기 때문에 재무구조에 큰 부담이 안 되는 상황이라 정 회장이 자신 있게 베팅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