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IT(정보기술) 기기 업체 화웨이가 1년 새 서유럽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을 4배 이상 끌어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선진국 시장에서 중국 업체가 5% 이상 점유율을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화웨이 성장세, 삼성전자 과거 보는 듯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직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서유럽 스마트폰 시장에서 화웨이의 점유율은 6.5%에 달했다. 2012년 2분기 1.3%, 2013년 2분기 1.5%였던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만한 성적이다. 서유럽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고급형 스마트폰 시장이다. 보다폰, 도이체텔레콤, 오렌지 등 이동통신사의 영향력이 막강해 제조업체 단독으로 점유율을 늘리기 쉽지 않다.
화웨이는 2011~2012년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미국 시장에서 3%가 넘는 점유율을 기록하며 선전했으나, 미국 소비자의 '반(反) 화웨이' 정서에 부딪혀 시장점유율이 급락했다. 화웨이는 대신 서유럽을 핵심 공략 대상으로 삼고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데 집중해왔다. 영국 아스날, 이탈리아 AC밀란 등 각국 주요 프로축구 구단을 후원하며 스포츠 마케팅에 나선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네트워크 장비를 공급하면서 돈독한 관계를 구축한 통신사들을 상대로 스마트폰 판매를 적극적으로 요청하기도 했다.
오태윤 SA 수석연구원은 "판매량 증가뿐만 아니라 주력 제품의 고급화도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라며 "화웨이가 보다폰, O2, 텔레포니카 등 서유럽 주요 통신사를 통해 판매하는 고급형 스마트폰 모델 'P시리즈' 등의 대당 판매가격은 350달러 이상"이라고 말했다. 화웨이가 9월초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가전전시회(IFA)에서 공개한 6인치 스마트폰 '메이트7'의 판매 가격은 499유로(61만원)에 달한다.
화웨이는 이 밖에도 중동ㆍ아프리카 등 다른 지역에서 판매량을 크게 늘리고 있다. 2분기 중동ㆍ아프리카 지역 점유율은 12.0%로 전년동기 0.9%에서 11.1%포인트 늘었다. 글로벌 점유율은 전년동기 대비 2%포인트 증가한 6.8%다.
위청둥(余承東) 화웨이 최고경영자(CEO)는 "화웨이는 이제 세계 3위 스마트폰 업체"라며 "올해 8000만대 이상을 판매하겠다"고 말했다. 오 수석연구원은 "네트워크 장비 사업을 전개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현지 거점을 구축한 데다 통신사와 원만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어 안정적으로 판매량을 늘릴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러한 모습에 일각에선 과거 삼성전자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급 제품들을 내세워 품질 경쟁을 벌이고 ▲스포츠 마케팅 등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며 ▲휴대폰 외 다른 사업을 통해 구축한 해외 거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이 겹친다는 얘기다.
◆ ZTEㆍTCL-알카텔 등도 거센 공세
ZTE, TCL-알카텔, 레노버 등 다른 중국 휴대폰 업체들도 해외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ZTE은 2분기 미국 시장 점유율을 전년동기 3.8%에서 6.1%로 늘렸다. TCL-알카텔은 남미(9.7%)와 중동·아프리카(4.7%)에서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뒀다. 레노버도 낮은 가격을 앞세워 동유럽(9.3%)과 중동·아프리카(3.6%)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SA가 집계한 화웨이, 레노버, 샤오미, 쿨패드, ZTE, TCL-알카텔 등 중국 6개 업체의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2014년 상반기 현재 25.2%로 지난해 21.1%와 비교해 4.1%포인트 늘었다.
◆ 대만 부품 업체와의 연합전선, 韓ㆍ日 업체 밀어내나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의 배후에는 저렴한 가격으로 적당한 품질의 부품을 공급해주는 대만 업체들이 있다. 훠진지에(霍锦洁) IDC 중국 지사장은 "낮은 가격에 주요 부품을 조달받을 수 있는 공급망을 확보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업체가 대만의 반도체 설계 업체 미디어텍이다. 미디어텍은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전문으로 한다. 미국 퀄컴의 '스냅드래곤' AP와 비교해 가격이 30~50% 저렴할 뿐만 아니라 AP를 구동시키는 소프트웨어 역할을 하는 설계자산(IP)을 각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이 사용하기 쉬운 형태로 제공한다는 것이 강점이다. 미디어텍의 스마트폰용 반도체 매출 가운데 60~70%는 중국 업체를 상대로 거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LTE(롱텀에볼루션) 통신 시장 성장에 발맞춰 미디어텍이 LTE 통신 모뎀과 AP를 결합한 통합 칩 생산량을 늘리자, 퀄컴이 이례적으로 자사 제품 가격을 공격적으로 인하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 밖에도 디스플레이를 공급하는 AU옵트로닉스, 터치패널업체 윈텍, 스마트폰용 카메라업체 라간정밀 등도 중국 스마트폰 완제품 업체들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고 있다. 이들 업체의 품질 경쟁력이 일본 등의 경쟁업체와 대등한 수준으로 성장하면서 중국산 제품의 품질도 덩달아 높아지는 효과도 얻고 있다. 오-필름, 라이바오 하이테크 등 중국 현지 부품업체들도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업체들은 중간재 역할을 하는 '모듈' 단위 부품은 계열사에서 공급받고 각 모듈의 부품 중 다수를 무라타제작소, TDK, 알프스전기, 닛토덴코 등을 통해 확보하는 형태를 취해왔다. 중국과 대만 업체 간 분업이 한국과 일본 업체의 협력 관계를 밀어내고 있는 모양새이다.
물론 중국 업체들의 해외 진출이 녹록지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이익을 낼 수 있는 고급 모델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이 선진국 소비자들을 상대로 어느 정도 소구력을 가질 것이냐는 것이다. 글로벌 진출을 위해서는 각국 이동통신사와의 교섭 능력, 공급망 관리, 애프터서비스 망 구축 등 다각도의 기업 역량 구축이 필요하다.
대만 HTC가 삼성전자, LG전자 등에 밀려 판매량이 급락한 것처럼 한국 등의 선발 업체들과의 경쟁도 녹록지 않다. 훠 지사장은 "중국 업체들이 해외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뛰어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중국의 대두를 이야기하기는 아직 성급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