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융의 후진적인 경쟁력은 신흥국인 말레이시아와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다. 말레이시아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3030억달러(2012년 기준)로 한국의 26%에 불과하며, 1인당 GDP도 한국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금융산업의 경쟁력만큼은 지난 10여년 사이에 한국을 추월했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의 글로벌 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말레이시아는 '금융서비스 다양성' 부문에서 22위, '대출 접근성' 5위를 기록했지만 한국의 경우 각각 92위, 118위를 기록했다.

말레이시아의 CIMB은행과 국내 1위 은행인 신한은행을 비교해보면 이처럼 역전된 경쟁력이 잘 드러난다. CIMB는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작은 지역 은행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해 1조4324억원의 순이익을 올려 우리나라 1위 은행인 신한은행의 순이익 1조3391억원을 웃돌았다. 2008년 금융 위기 직전만 하더라도 신한은행의 순이익이 CIMB의 3배 이상이었음을 감안하면 5년 만에 이익 규모가 역전된 것이다.

이런 결과가 나온 데는 두 은행이 세운 목표의 수준이 현격한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은 '국내 1위'가 되겠다는 목표로 지난 15년간 영업했다. 반면 CIMB를 이끄는 나지라 라작 행장은 1999년 취임 후 이슬람 금융의 중심지가 되어 아세안 1위 은행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실제 인도네시아 니아가(2007년), 태국의 뱅크타이(09년) 등 10개가 넘는 금융회사를 인수했고, 세계 최대의 이슬람 채권을 발행하는 등 "전 세계 이슬람인들을 고객으로 삼겠다"는 목표를 차근차근 실천했다.

반면 신한은행은 같은 기간 LG카드 등 일부 국내 금융사를 인수하며 규모를 키웠지만, 국내시장에 안주했다. 현재 신한은행 매출의 90% 이상이 국내 시장에서 나오지만, CIMB는 해외 부문 매출이 전체 매출의 41%에 이른다. 국내 A시중은행 은행장은 "10년 전만 하더라도 중국 공상은행·중국은행 등이 먼저 초청해 우리의 영업과 경영 전략을 배워 갔지만, 이제는 우리가 먼저 연락해도 제때 답장을 주지 않을 정도"라며 "비참해진 국내 금융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