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록(위)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문책경고' 중징계를 받은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4일 사의를 표명했다. 금융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징계가 확정되는 임영록 KB금융 회장은 아직 거취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퇴진이 불가피하지 않느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KB금융은 최대 위기에 몰렸다.

이 행장은 이날 금감원의 중징계가 발표된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은행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다. 내 행동에 대한 판단은 감독당국에서 적절하게 판단하신 것으로 안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최수현 금감원장은 이날 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 내분에 대한 제재를 최종적으로 확정하면서 임 회장과 이 행장에 대해 모두 '문책경고' 중징계를 내렸다. 지난달 21일 제재심의위원회가 내린 '주의적 경고'의 경징계를 뒤엎은 조치다.

임 회장의 중징계는 이르면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쯤 확정된다. 금감원, 금융위 실무진들이 오는 19일이나 26일쯤 금융위 상임·비상임위원들에게 합동보고회를 하면 그 다음 주 수요일에 열리는 전체회의에서 최종 결정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임 회장이 의결 전에 진술하겠다고 하면 일정은 더 늦어질 수 있다"며 "아직 금융위 회의 일정은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 금감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통해 "KB금융지주 임영록 회장과 KB국민은행 이건호 행장은 직무상의 감독의무를 현저히 태만히 해 심각한 내부통제 위반행위를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금융기관의 건전한 경영을 크게 저해했다"며 이들에 대한 중징계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제재심의위원회 종료 후 지난 2주간 심의과정에서 규명된 사실 관계 및 해당 법규 등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주전산기 전환 검토과정에서 은행 IT본부장을 교체하고 전산시스템 성능을 검증하는 자료를 이사회에 허위 보고한 행태는 금융인에게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위법행위다"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국민은행이 주전산기 교체와 관련해 총체적인 내부통제 부실로 중대한 위법·부당행위가 발생했고 사회적 물의를 크게 야기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이 올 5월 19일부터 6월 5일까지 국민은행 주전산기 전환사업과 관련해 부문 검사를 시행한 결과, 국민은행은 주전산기 관련 컨설팅보고서가 유닉스에 유리하게 작성되도록 보고서 작성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했고 주전산기 교체에 따른 위험은 축소하는 한편 유닉스에 유리한 내용을 과장하도록 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민은행은 전산기의 성능검증 결과 중앙처리장치(CPU) 과부하 시 안정성 등에 대해 아예 검증조차 실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능검증 결과 문제가 없다고 이사회에 허위 보고했다. 또 유닉스 전환에 소요되는 비용이 3055억원으로 당초 이사회에 보고한 예산(2064억원)을 크게 초과하자, 시중은행에서 사용된 전례가 없고 성능도 검증되지 않은 기종의 가격을 마치 성능이 검증된 것처럼 왜곡하는 등 부당한 방법으로 견적금액을 1898억원 축소해 이사회 알렸다.

또 금융지주회사는 자회사에 대한 영향력을 이용해 자회사가 금융 관련 법령이나 그 법령에 따른 명령을 위반하게 해서는 안 되는데, KB금융지주 경영진은 국민은행 주전산기의 유닉스 전환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유닉스 전환 시 발생할 수 있는 심각한 시스템 위험을 은폐해 이사회에 보고하도록 국민은행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임영록 회장은 국민은행 주전산기 전환사업과 그에 따른 위험에 대해 수차례 보고받았으면서도 위법·부당행위에 대한 직무상 감독의무 이행을 태만히 해 금융기관의 건전한 운영을 저해했다고 금감원은 판단했다. 금감원은 또 임 회장이 국민은행의 주전산기를 유닉스로 전환하는 사업을 강행하려는 의도로 자회사 임원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밝혔다.

금융사 임원의 징계는 크게 해임권고, 직무정지, 문책경고, 주의적 경고, 주의로 나뉘는데 문책경고를 이상을 받은 임원은 임기 종료 이후 3~5년간 금융권 재취업이 제한된다.

한편 최 원장이 제재심의위원회의 결정을 뒤집으면서 '제재심의위원회 무용론' 논란도 불거질 전망이다. 현행 규정상 금감원장은 제재심의위원회를 '거쳐' 조치하도록 돼 있어 제재심의 결정 내용을 의무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 금감원장은 제재심의 결정 내용을 존중해 그대로 수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결국 원장 생각대로 결정하는 것이면 굳이 제재심의위원회 절차를 거칠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