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7일 미국 모바일 광고 회사 탭조이는 국내 벤처기업 파이브락스를 인수했다. 인수 금액은 약 500억원. 회사 설립 4년 만에 터진 '대박'이었다. 파이브락스의 성공 요인은 기술력. 이 회사는 스마트폰 게임 사용자들이 언제 어떻게 게임을 즐기고, 어디서 돈을 쓰고, 언제 멈추는지 등 사용자 행태를 분석하는 데 있어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2010년 창업 당시만 해도 파이브락스는 스마트폰 위치기반 앱(응용프로그램)을 만드는 회사였다. 3년 동안 내놓은 4~5개 앱이 줄줄이 시장에서 외면받자 2013년 그동안 쌓아온 분석 기술을 대상으로 기업용 서비스를 해보자고 방향을 튼 것이 지금의 성공으로 이어진 것이다.

올해 개봉한 3D(입체) 애니메이션 ‘넛잡’. 3D 모니터 제조로 쌓은 노하우를 활용해 넛잡 제작에 나선 ‘레드로버’는 올해 20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하회진(왼쪽 아래) 대표는 “영화 ‘아바타’를 보면서 우리 기술을 바탕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면 3D 영화의 품질을 대폭 향상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기존 사업에서 배운 것을 활용해 다른 영역으로 진출한다는 의미의 '피벗(pivot) 경영'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피벗은 미국의 벤처기업인 에릭 리스가 쓴 책 '린 스타트업'에서 나온 용어로, 농구에서 한쪽 발을 땅에 붙인 채 남은 한 발로 방향을 전환하는 데서 따온 것이다.

방향 전환 '피벗 경영'으로 성공

올해 개봉한 3D(입체) 애니메이션 '넛잡'도 피벗 경영으로 히트를 친 사례다. 이 애니메이션을 만든 레드로버는 원래 3D 모니터를 전문으로 만드는 하드웨어 업체였다. 2009~2010년만 하더라도 3D 모니터 수출로 연간 70억~80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그러나 삼성전자·LG전자 등 대기업이 3D 모니터 시장에 진출하면서 힘겨운 경쟁을 하게 됐다. 이때 하회진 레드로버 대표의 눈에 들어온 것이 세계적으로 흥행한 3D 영화 '아바타'였다. 그는 "3D 모니터를 만들면서 쌓은 소프트웨어 기술을 애니메이션에 접목하면 어지럼증도 없애고 저렴한 비용으로 3D 영화의 품질을 대폭 향상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부족한 애니메이션 제작 역량은 캐나다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와 공동으로 제작하는 방식으로 보완했다. 결과는 대성공. 넛잡은 올해 미국·유럽에서 2억달러(약 20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추정된다. 3D 모니터를 만들 때보다 25배 많은 매출을 영화 한 편으로 거둔 것이다. 피벗 경영의 장점은 실패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데 있다. 전혀 모르는 분야에 새로이 뛰어드는 게 아니라, 기존 영역에서 한 발만 옮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서비스 중에도 피벗을 통해 성공을 거둔 사례가 많다. 소셜네트워킹서비스 트위터가 대표적이다. 트위터 창업자 에반 윌리엄스는 원래 인터넷 라디오 서비스를 개발하다가 애플이 이와 비슷한 '팟캐스트'를 내놓자 방향을 틀었다. 회원들끼리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기능만 따로 뽑아내 시가총액 30조원짜리 서비스를 일궈낸 것이다. 페이스북에 10억달러(약 1조원)에 인수된 인스타그램도 처음에는 위치기반 서비스를 하다가 사진 공유 기능을 특화한 앱으로 '피벗'해 성공을 거뒀다.

철저한 분석과 변신이 관건

이창수 파이브락스 대표는 성공의 요건으로 '자기 분석'을 꼽았다. 피벗을 다룬 책 '린 스타트업'을 직접 번역해 국내에 소개하기도 한 이 대표는 "기업용 분석 서비스를 만들어 보니 기존에 해오던 소비자용 앱 제작보다 이쪽이 우리 회사에 더 맞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창업 멤버들의 성격상 톡톡 튀는 소비자용 서비스보다 데이터를 분석해 '서비스 운영업체를 돕는 업무'가 더 잘 맞았다는 얘기다.

또 다른 성공 요인은 철저한 변신이다. 파이브락스는 기업용 서비스를 시작하며 대표를 바꿨다. 소비자용 서비스 때 회사를 이끌었던 노정석 대표는 최고전략임원(CSO)을 맡아 2선으로 물러나고, 분석 사업을 제안한 이창수 당시 최고기술임원(CTO)이 최고경영자(CEO)로 나섰다. 회사 운영 체제도 기업용 서비스에 맞게 재편하고 기존 앱은 다른 기업에 매각해 정리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피벗을 유행처럼 따라 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구글·링크드인·야후 등에 투자한 유명 벤처 투자자 마이클 모리츠 세콰이어 캐피털 회장은 "피벗은 죽음에 가까운 경험"이라며 "새롭게 방향을 전환한 사업이 기존 팀에 맞는 분야가 아니라면 차라리 새로 창업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다음커뮤니케이션 공동 창업자 출신으로 벤처투자회사 프라이머를 운영하는 이택경 대표도 "제대로 된 제품 하나 못 내놓고 피벗만 몇 번이나 반복하는 곳도 많다"며 "피벗은 기존 사업을 하다가 배운 것을 바탕으로 방향 전환을 하는 것이지,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상태에서 하는 게 아니다"라고 충고했다.

☞피벗(pivot)경영

기업이 기존 사업 분야에서 학습한 것을 바탕으로 방향을 전환해 새로운 사업 분야로 진출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