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

“사람 잘라서 이익 늘리는 사람을 어떻게 경영자라고 할 수 있나.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직원들을 데리고 어려울 때도 잘 이겨나가는 것이 제대로 된 경영자다. 일 시킬 때는 같이 열심히 하자하고 경영이 어려워지면 고용 유지 못 한다며 나가라는 건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사람 자르는 건 회사가 망할 때나 할 수 없이 하는 거다.”

21일 조선비즈가 단독으로 입수한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초본에서 김 전 회장은 IMF 위기 당시 ‘경영의 달인’으로 추앙받던 잭 웰치 GE 회장의 경영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웰치 회장은 매년 하위 10% 직원은 잘라내고 상위 20% 직원에게는 스톡옵션 등으로 인센티브를 더 주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GE의 시가총액은 웰치 회장이 부임한 1981년 140억 달러에서 2004년 4100억 달러로 30배 가까이 뛰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IMF 직후 대기업들이 대규모 정리 해고를 하고 경쟁력 강화를 위해 웰치식 경영을 받아들인 바 있다.

대우차 정리해고 반대 집회 모습

김 회장은 이를 전면 반박했다. 그는 “직원들이 잘릴 게 무서워서라도 열심히 일하도록 하겠다는 건 비인간적이다. 직원들을 인간 취급하지 않는 것”이라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업 이익만 늘리겠다고 하면 그런 식으로 할 수 있지만, 고용을 줄이지 않고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지 먼저 잘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노력이 선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아무리 불황이어도 성장하는 분야나 성장하는 지역이 있다”며 “가장 큰 상생과 복지는 기업이 고용을 유지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근로 시간을 줄이고 일자리 셰어링(공유)을 먼저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우중과의 대화 회고록 중 일부

김 회장은 “직원을 막 잘라서는 국가 경제도 좋을 수가 없다”며 “고용도 유지 못 하고 억울하게 직장 잃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사회에 불만을 갖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주가 올리는 것을 경영 목표로 세워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IMF 때 구조조정을 한다면서 주식 투자자 위주로 시스템을 만들어 대주주들이 (장기 기술개발) 투자를 제대로 못 하고 있다”며 “처음부터 주가만 쳐다보는 경영은 기업을 제대로 키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단기 이익을 원하는 주식 투자자들은 투기꾼이다. 주식을 오래 들고 그 회사를 내 것이라고 살피는 사람이라야 주인으로 대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경영자들에게도 일갈했다. 그는 “명예를 위해 일하는냐 돈을 위해 일하느냐 여기에서 차이가 난다”며 “돈을 벌기 위해 (향락, 부동산 투기, 중소기업 영역 침범 등) 모든 것을 하겠다고 하면 문제가 생긴다. 어느 정도 되면 돈은 언제든 벌 수 있다. 그 시기가 빨리 오면 그 후 명예 지키는 시간이 길어진다”고 말했다.

김우중과의 대화 회고록 중 일부

한편 김 회장은 과거 대우의 세계 경영과 관련해 우리나라가 가진 경쟁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미국 등 선진국 회사들 가보면 1년에 절반밖에 일하지 않고 하루에 8시간만 일하고 정신적으로 해이해져 있다”며 “일이 너무 분리돼 있어 연구하는 사람은 연구만 하고 현장에 적용하는데 시간이 한참 걸리고 결재라인이 단계마다 있다 보니 밑에 사람들은 책임지고 일하려 하지 않고 위에다 올려서 책임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많았다”고 말했다.

김우중과의 대화 책

그는 “GM도 엉성한 게 많다. 차 하나 만드는데 3~5년씩 걸리고 디자인 하나만 붙잡고 그렇게 오랜 시간 보낼 필요가 있나”라며 “㈜대우는 대리에게 2000만불(약 205억원)까지 계약할 수 있는 자율권을 줬다. 본인들도 책임의식을 갖고 일이 빨리 처리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기업과의 경쟁 문제에 대해서는 우선 국익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리비아 같은데 우리가 먼저 해외건설을 개척해서 나가면 그 후에 로비해서 뚫고 들어오는 회사들이 있었다”며 “다른 데서 우리 대기업 간에 덤핑하는 것도 문제였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그런 일이 있으면 대우가 웬만하면 양보했다. 한국 기업들이 해외에 많이 진출하고 같이 잘되면 나라에 좋은 거라고 실무자들을 설득했다”며 “해외에 나가서도 국익에 대한 개념을 갖고 사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우중 회장은 IMF 이후 정부 경제정책이 산업계 등 실물경제 논리와 거리를 두고 금융시장의 논리대로 실행된 것이 최근의 양극화 등을 불러일으켰다고 주장했다. 금융과 산업의 균형이 파괴됐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과거 정부가 조직 개편을 잘못했다. 예전에는 상공부에서 산업발전에 관한 목소리를 내고 재무부가 금융 쪽 목소리를 내고 경제기획원이 균형을 맞춰줬다”며 “하지만 YS(김영삼 전 대통령) 때부터 재정경제원에 권한을 다 주니 은행들 좋은 방향으로만 정책이 만들어졌고 은행들이 원하는 대로 가계대출, 카드대출, 주택담보대출을 많이 늘려 중산층이 몰락했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경제 한다면서 실제로 한 것은 금융기관들 좋은 쪽으로 한거다”며 “경제 기획원처럼 경제 정책을 전체적으로 총괄하는 부서를 만들어 산업 쪽과 금융 쪽 이야기를 같이 듣고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