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시대와 함께 무패경영으로 불리던 병원계에도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일부 병원들은 임직원들의 명예퇴직을 신청받거나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심지어 월급도 주지 못한 병원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 중대형 병원 경영난 심각 수준

20일 의료계에 따르면 백병원이 최근 직원들을 대상으로 명예퇴직을 신청받았다.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직원들은 추가 퇴직금 산정에 계산기를 두드려본 것으로 전해졌다. 성장이 한계를 겪으면서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진행한 것이다.

상당수 대학병원들은 인건비 부담이 45~50%에 이를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국립대병원 임직원들은 공무원법에 따라야 하며, 사립대병원도 사립대 교직원 규정에 의거해 정년을 58~65세 등으로 보장하고 있다. 한 대학병원장은 "병원은 평생 직장이다 보니 인력이 적체되고 끊임없이 인건비 비율이 상승한다"며 "일반 기업의 인건비 비율이 25~30%인데 반해 병원은 50%에 육박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병원 노조는 병원이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시도하는 여러가지 영리 추구 활동을 반대하면서 갈등을 빚고 있다. 서울대병원 노조는 지난달 “서울대병원은 공공병원임에도 SK텔레콤과 영리 자회사인 헬스커넥트를 설립하고, 원격의료와 의료관광 등 정부의 의료영리화 추진에 앞장서고 있다”며 파업을 단행했다.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장은 “병원은 비영리기관이라는 사회적인 인식이 강해 영리 활동이 어렵다”며 “영리활동을 못하면서 임금을 인상해야 하는 이중고를 안고 있다”고 털어놨다.

대학병원 중에서 유독 어렵다는 소문이 나 있는 한양대의료원의 지난해 실적을 보면 2999억원의 매출액을 올렸으면서도 78억1458만원의 적자와 63억7553만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수익성이 좋지 않은 현재로선 비용 절감 외에는 마땅한 전략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양대병원 관계자는 “인건비 비중이 지나치게 높지만 노조의 반대로 섣불리 명예퇴직이나 구조조정을 쉽게 단행할 수 없다”며 “병원이 수익을 내는 방법이 너무 제한돼 있어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중소병원의 경영난은 더욱 심각하다. 청담 우리들병원은 최근 조직을 축소하고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대표적인 재활병원으로 손꼽히던 보바스 기념병원은 최근 수개월새 월급을 주지 못했다. 우리들병원 관계자는 "우리들병원 분원 외에도 전국적으로 척추전문병원이 너무 많이 생겨서 더는 규모를 키울 수 없게 됐다"며 "일부 직원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보바스병원 관계자는 "성장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고자 건물에 투자하면서 몇 달 간 어려움이 있었다"며 "가만히 있으면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 이제는 지속가능한 경영이 화두

고령화 시대에 진입하면서 환자가 늘어나고 있는데도 병원들의 경영 상태가 이처럼 악화된 까닭은 무엇일까. 병원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정부가 진료비를 통제하고 있어 수익이 나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대한병원협회에 따르면 2012년 의료수익 대비 이익률은 중증 질환을 진료하는 상급종합병원이 2.8%에 불과했다. 300병상 이상 병원은 0.7%, 160~299병상 병원은 1.5%, 160병상 미만은 -5.7%으로 나타나 간신히 이익을 내거나 적자를 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이익률이 계속해서 저조할 경우 망하는 병원이 생길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용균 한국병원경영연구원 연구실장은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면서 병원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동안 늘기만 하던 환자가 2010년 이후 감소세로 돌아섰다"며 "8월부터 선택진료비가 평균 35% 줄어든데 이어 9월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일반병상이 6인실에서 4인실로 바뀌면 더욱 실적이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들이 이제는 '생존'이 주요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병원 관계자들은 "병원은 어떤 산업보다 정부의 가격 통제가 심하지만, 병원의 경영위기에 대한 정부 관심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위기 극복 나서지만 '의료영리화'에 막혀 첩첩산중

끝을 보이지 않는 ‘의료영리화’ 논쟁도 병원들의 시름을 더 하고 있다. 병원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법인 자법인 허용과 해외진출 지원을 환영하고 있지만, 의료영리화 논쟁에 갖혀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보바스병원과 한라병원, 세종병원 등 해외 진출에 적극적인 병원은 ‘의료영리화의 대표 주자’라는 이유로 다음달 열리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됐다. 고성범 보바스병원장은 “병원이 독단적으로 해외 진출을 하다 보면 이중과세 등의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며 “의료영리화가 아니라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한 하나의 탈출구이자, 대한민국 의료의 세계화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경서 세종병원 대외협력본부장도 “병원의 경쟁력 강화와 해외 진출은 영리화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며 “진료비 인상이 이뤄지지 않으면서도 규제 개선마저도 불가능한 게 지금의 현실”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