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박근혜 대통령이 금융권의 '보신(保身)주의' 관행을 질타한 뒤 금융당국까지 압박에 나서자 은행권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담보 위주의 대출 관행에서 벗어나 기술력과 미래 성장 가능성을 보고 돈을 빌려주라는 주문에 영업 전략을 짜내느라 고심하는 것이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은행들은 잇따라 중소기업 전용 대출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가장 정부의 주문에 들어맞는 상품을 내놓은 곳은 신한은행이다. 신한은행은 기술신용평가기관(TCB)으로부터 기술 경쟁력을 인정받은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기술평가 우수 기업대출'을 출시했다. 'TCB 기술신용등급' B+ 이상, '신한은행 내부 신용등급 평가' BB이상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5000만~10억원까지 운전자금이나 시설자금을 빌려주는 상품이다.

하나은행은 기술력은 있지만 자금이 부족한 영세 중소법인과 개인사업자에게 담보가액의 1.6배까지 돈을 빌려주는 '하나 중소기업 행복나눔대출'을 5000억원 한도로 운영하기로 했다. TCB의 기술신용평가서를 바탕으로 한 대출 취급도 더 활성화할 방침이다. 하나금융은 SK텔레콤, 성장사다리펀드와 함께 조성한 420억원 규모의 상생벤처펀드를 활용해 벤처기업 투자에 나선다.

농협은행도 지난달 말 산업단지 안에 있는 중소기업을 위한 공장 담보대출인 'NH산업단지대출'을 출시했다. 그 밖에 국민은행은 박근혜 정부 2기 경제팀의 정책방향에 맞춘 은행 본부별 과제 발굴을 위해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다.

은행권이 정부 정책에 호응하기 위해 진땀을 흘리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기술력을 갖춘 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단순히 은행에 대출을 확대하라는 압력만 가해서는 원하는 효과는 얻지 못하고 부실만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재 중소기업 가운데 은행권 대출을 받지 못해 어렵다는 곳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대출을 지나치게 많이 받아 한도가 모자라거나 미래 가치를 확신하기 어려운 곳"이라며 "기술력 평가에 대한 인프라와 노하우가 부족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대출만 늘리면 부실과 도덕적 해이만 키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고객 예금을 받아 운영해 다른 업권보다 건전성 관리가 중요한 은행업의 속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남의 돈으로 영업을 하는 은행의 대출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성격이 될 수밖에 없고, 금융당국에서도 건전성 감독을 소홀히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은행만 독려하기보다 정부의 정책 자금 지원을 늘리는 등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