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형 기자

한국은행은 보수적인 조직이다. 진중하며 사려깊고 경거망동하지 않는다. 허나 '보수적'이라는 말은 긍정적 의미도 있지만 부정적 의미도 있다. '보수 꼴통'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잘 변화하려 하지 않고 사고가 유연하지 않다는 의미다.

한은이 최근 이런 '보수 꼴통' 이미지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한은의 엉터리 물가전망에 대한 얘기다.

한은은 2012년 말부터 물가전망치를 계속 하향조정했다. 아주 일관적으로. 물가가 당초 예상만큼 높게 나오지 않자 계속 물가전망치를 낮춰간 것이다. 특히 작년 4월에는 지난해 물가상승률을 2.3%로 예상했다가 3개월만인 7월에 1.7%로 0.6%포인트나 하향조정했다. 10월에는 다시 1.2%로 0.5%포인트나 낮춰 잡았다. 작년 4월은 김중수 전 총재가 정부와 여당의 기준금리 인하 요구를 묵살하면서 금리를 동결했던 때다.

올해 물가에 대한 전망도 마찬가지다. 한은은 올해 물가전망치를 작년 7월 2.9%에서 계속 하향조정해 올해 7월에는 1.9%까지 내렸다. 2.7%인 내년 물가전망치는 또 얼마나 낮춰질지 모르겠다.

2014년 상반기 물가상승률은 1.4% (자료: 한국은행)

물가 전망이 중요한 것은 성장률 전망과 함께 기준금리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물가안정은 한은의 제1 목표다. 기준금리 결정은 경제전망을 한 뒤 그 전망치를 토대로 행해진다. 그러나 시중에서는 김 전 총재가 자신의 금리 동결 입장을 뒷받침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물가 전망치를 높게 잡았다는 얘기가 돌았다. 물가전망이 그렇게 틀리면서도 김 전 총재가 계속 했던 말은 "앞으로 경기회복으로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질 것이다", "기대인플레이션은 3% 수준으로 여전히 높다"였다. 그 지겨운 말을 1년 동안이나 들었다.

한두번은 물가전망이 틀릴 수도 있지만 2012년말부터 약 2년간 물가전망을 계속 잘못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지난 10일 열린 금통위 7월 정례회의에서는 이같은 엉터리 물가전망에 대한 한은 금통위원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금통위원 중 한은 총재와 부총재를 제외한 5명 전원이 한은의 물가전망에 불만을 터뜨렸다.

한 금통위원은 "물가상승을 억압하는 요인으로는 내수위축, 특히 인구구조의 변화, 가계부채 증가, 부동산 시장의 침체, 중산층 감소, 소득양극화 심화 등에 따른 소비위축을 들 수 있다"며 "이런 점을 감안해 저물가 문제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야 될 시점"이라고 말했다. 물가와 관련해 구조적인 변화 요인이 있으니 이를 반영해야 하는데, 한은이 경기사이클 상으로 기존에 해오던 대로 기계적인 전망을 했다고 비판한 것이다.

다른 금통위원은 "전망오차 발생 원인이 회고적 편향 때문인지 과신 때문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했고, 또 다른 금통위원은 "물가전망치의 하향조정이 반복되다 보면 정책의도를 가지고 전망치를 높게 잡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은의 변명처럼 온화한 기후에 따른 농산물 가격 안정 때문에 물가 예측이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은이 작년 10월 전망에서 올해 물가를 2.5%로 예상했을 당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로 전망했다. 작년 말은 경기회복세가 너무 지지부진하고 물가는 매우 낮은 상황이니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던 시기다. 수요 부족, 원자재 가격 안정, 환율 절상 등으로 저물가 현상이 사상 유례없이 장기화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한은은 이런 지적들을 '저잣거리 얘기' 정도로 치부한 것 같다.

경제전망을 하는 한은 조사국 인원은 100명 정도 된다. KDI에서 경제전망을 하는 거시경제연구부 인원은 말단 연구원까지 해서 30명 정도다. 그렇게 많은 인원으로 전망을 그 정도밖에 못하느냐는 비아냥이 나온다.

한은 관계자는 "전임 김중수 총재가 지나치게 금리 동결만을 의식하면서 물가가 앞으로 오를 것이라는 시각을 고수했다"며 "김중수 총재 체제에서는 한은 직원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총재의 시각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고 토로했다.

어찌됐든 한은은 창피한 줄 알아야 한다. 총재 한 명의 입김에 따라 엉터리 전망을 했다면 '무책임'한 것이고, 양심을 걸고 제대로 전망한 결과가 이렇다면 '무능'한 것이다. 어느 쪽이든 일국의 중앙은행으로서 '자격 미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