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탈(VC)이 창업한 지 14년이 넘은 기업에 대한 후기 투자를 크게 늘린 반면 창업 초·중기 투자의 증가 추세는 상대적으로 더딘 것으로 나타났다. VC업계 일각에서는 투자금이 창업 초기 기업보다 업력이 오래된 회사에 몰리면 ‘창업 투자’라는 VC 본래 취지가 퇴색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30일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창업한 지 7년이 넘은 기업에 대한 국내 VC들의 투자 금액은 전년 동기 대비 18.7% 증가한 3482억원에 달했다. 투자 건수도 106건에서 119건으로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특히 창업한 지 14년이 넘은 업체에 대한 투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 지난해 975억원에서 1694억원으로 73.7% 증가했으며, 투자받은 업체 수도 25개에서 47개로 크게 늘었다.

반면 창업 초기 투자와 중기 투자는 상대적으로 증가폭이 작거나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창업한 지 3년이 안 되는 초기 기업에 대한 올 상반기 투자 금액은 1689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1.6% 증가하는 데 그쳤다. 투자 건수는 200건에서 186건으로 감소했다. 창업한 지 5~7년이 된 중기 기업에 대한 투자금은 1586억원에서 1487억원으로 6.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추세는 실제로 2011년부터 계속돼 왔다. 업력이 3년 이하인 초기 기업에 대한 투자금액은 2011년 3722억원에서 2012년 3696억원으로 감소했다. 작년에는 3699억원으로 전년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렀다. 반면 창업한 지 7년이 넘은 회사들은 지난해 6887억원을 유치해, 전년 대비 25.2% 많은 돈을 끌어모았다.

일부 투자 업계 관계자들은 VC의 투자 성향이 초기 투자보다 중·후기 투자를 늘리는 쪽으로 가다 보면,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데 주안점을 둔 ‘벤처 투자’ 본연의 목적이 약해질 수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본래 벤처캐피탈의 설립 목적은 잠재력이 있지만 돈이 부족한 창업 초기 업체들을 지원하는 것인데, VC 입장에서는 ‘고위험 고수익’의 초기 투자에 뛰어들기보다 수익은 상대적으로 덜 나오더라도 안정적으로 엑시트(투자금 회수)할 수 있는 중·후기 투자를 선호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VC의 중·후기 투자가 증가세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단기적인 현상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 관계자는 “올 상반기 바이오 분야에 대한 몇 건의 큰 투자가 있었는데, 이들 업체 중 업력이 오래된 후기 기업이 많은 편”이라며 “VC들이 투자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해가는 과정에서 단기적인 증가·감소세는 충분히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올 연말까지 지켜봐야 한해동안 투자가 어떤 양상으로 이뤄졌는지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벤처캐피탈리스트는 “중·후기 기업의 경우 투자에 실패할 확률이 낮다는 장점이 있지만 투자자들끼리의 경쟁이 워낙 심해 투자 금액을 산정하는 데 있어 기업 측 입장을 많이 반영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어, 요즘 VC 업계에서는 초기 기업을 많이 들여다보고 투자하려고 하는 추세”라며 “올 상반기 VC의 투자가 중·후기 기업에 몰린 것처럼 보인 것은 착시 현상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