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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고(高)병원성 가축바이러스를 전문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실험시설이 백신 연구 등 필요한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방역 업무에 매달리고 있거나 연구에 대한 예산 확보조차 하지 못하고 있어 연구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8일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 관계자에 따르면 생물안전 3등급(BL3) 국가인증을 받아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 기초연구 자격을 얻은 실험시설은 전국에 46곳인 것으로 나타났다.

바이러스나 세균 연구를 하는 연구시설들은 1~4등급까지 나뉜 생물 안전 등급을 받게 된다. 이중 동물실험이 가능한 3등급 생물안전시설(BL3)에서는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뿐 아니라 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V), 웨스트나일 바이러스를 다룰 수 있다. BL3에 속하는 질병을 연구하려면 차폐시설 등이 갖춰진 실험시설을 구축한 뒤 질병관리본부로부터 국가인증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이 46개 시설 중 대학이나 전문연구기관에 속한 건 8곳뿐이라는 점이다. 나머지 38곳은 전국 각 지역에 있는 가축위생시험소 등이 차지한다. 물론 이곳에도 연구인력이 있긴 하지만 방역·감시 활동과 같은 잡무가 많아 연구에만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 관계자는 "지방 시험소 직원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예산과 인력 부족 등으로 연구에 한계가 있다"며 "보직 순환도 겹쳐 연구 연속성과 전문성을 갖기 힘든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한 대학 수의학과 교수는 "가축바이러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은데 정부는 심각성을 모르는 듯 하다"며 "상대적으로 방해를 덜 받고 기초연구와 백신 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대학이나 전문연구기관에 BL3 인증을 확대해야 연구 성과가 빨리 나타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학계에선 BL3 인증을 받은 8개 시설이라도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한국화학연구원의 경우 지난 3월 BL3 연구시설 인증을 획득하고 원내 바이러스시험연구동에서 현판식까지 열었다. 하지만 정부가 시설 건축비용 160억원만 지원했을 뿐 시설운영비는 따로 책정하지 않아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화학연 관계자는 "화학연이 지식경제부 소속일 때 건설이 결정된 시설인데, 미래부 산하로 이관되는 과정에서 운영예산 지원에 대한 합의는 누락된 듯 하다"며 "매년 발생하는 7억원 규모의 운영비가 지원되지 않으면 시설은 무용지물이 된다"고 말했다.

서울의 BL3 인증시설을 갖춘 한 대학 관계자는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해당 가축으로부터 떼어낸 조직 시료를 확보해야 의미있는 연구를 할 수 있는데 바이러스 유출 등을 염려해 거부당하고 있다"며 "현실적으로 제때 백신 개발이 이뤄지기 힘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