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가 영업분할 등을 할 때는 신용정보법(신정법·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32조에 따른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감사원의 해석이 공식적으로 나오면서 임영록 KB금융(105560)지주 회장의 제재 수위가 어떻게 정해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국민카드가 국민은행에서 분사할 때 신정법에 따른 승인을 받지 않고 국민은행 고객 정보를 가져온 것은 잘못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렸고 금융감독원은 이를 근거로 임 회장에게 중징계를 사전 통보했는데 상급기관인 감사원이 징계의 주요 근거를 문제 삼은 것이다.

금감원은 KB금융이 국민카드 분사 당시 제출한 사업계획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점을 임 회장의 징계 사유에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제재 절차 중에 징계 사유를 바꾼 전례가 드물어 제재를 무리하게 강행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KB금융이 2011년 금융당국에 제출한 국민카드 분사 관련 사업계획서. KB금융은 국민은행 고객정보를 국민카드로 이관한 후 은행 부분을 제거하겠다고 적었다.


◆ 감사원 "신정법 적용 무리"…당국 "사업계획서 미이행도 잘못"

금융위와 금감원은 임 회장 제재 근거를 문제 삼은 감사원의 해석이 나오자 기존에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해 임 회장에게 통보한 내용으로는 사실상 제재가 어렵다고 보고 징계 사유를 바꾸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금감원은 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 과정에서 발생한 내부통제 미흡, 개인정보 유출 사고의 책임을 물어 각각의 사안으로 임 회장에게 중징계를 사전 통보한 상태다.

금감원은 애초에 국민카드가 신정법상 승인을 받지 않고 국민은행 정보를 가져간 것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감사원이 '국민카드가 국민은행 정보를 가져간 것은 신정법 승인 대상이 아니다'란 취지의 해석을 내리자 KB금융이 국민카드 분사 시 제출한 사업계획서 중 '데이터를 그대로 이관 후 은행 부분을 제거'한다는 내용을 지키지 않은 점을 근거로 제재를 추진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업계획서와 관련해 (KB그룹이) 규정을 위반했는지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카드는 국민은행에서 떨어져 나올 때 국민은행 고객정보를 통째로 들고 나왔는데 이후에 사업계획서 대로 국민카드를 사용하지 않은 국민은행 고객 정보를 제거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결과적으로 은행 고객정보가 대량 유출됐다는 것이다. 당국 관계자는 "금융지주회사법상 자회사들이 고객정보를 공유할 순 있지만 고객 정보를 아예 통째로 들고 가 다른 서버에 저장한 뒤 영구히 사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KB도 이런 점 때문에 은행 정보는 삭제하겠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지주회사 계열 은행에서 카드 부문이 분리된 곳은 KB 외에 하나SK카드와 우리카드가 있는데 하나SK카드와 우리카드는 분사 시 은행 고객정보는 가져오지 않고 카드 고객정보만 가져왔다.

국민은행은 국민카드에 고객정보를 넘길 때 여러 정보 중 '은행거래정보'만 제거하고 넘겼다. KB금융은 사업계획서에 제거하겠다고 밝힌 '은행 부분'은 은행거래정보로 제한된다고 설명했다.


◆ KB금융 "순수 은행거래정보는 제거…사업계획서 제대로 지켰다"

반면 KB금융은 사업계획서에 오해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 있지만 모두 이행했다고 주장했다. 사업계획서에 있는 '은행 부분' 정보는 수수료 면제 여부, 급여, 통장보유 여부 등 순수 은행거래정보를 뜻하는 것이지 고객명, 고객고유번호, 신용카드 등급 등 은행과 카드의 공통 정보까지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국민카드는 국민은행에서 고객정보를 넘겨받은 2011월 6월쯤 순수 은행 거래정보를 모두 삭제했다.

KB금융 관계자는 "국민은행과 국민카드는 2010년 3월에 고객정보를 모두 통합했기 때문에 분사를 할 때 은행 고객정보와 카드 고객정보를 분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며 "사업계획서의 전체 취지를 보면 은행 고객의 식별정보가 제거 대상이 아니라 순수 은행 거래정보만 대상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KB금융은 금융지주회사법에서 모든 고객정보의 공유를 허용하기 때문에 설령 고객정보를 모두 이전하더라도 위법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금융지주회사법 48조의2에 따르면 계열사끼리 영업상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KB금융 관계자는 "법에는 어떤 방식으로 제공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없는데 고객 정보를 이관한 지 3년이 지난 시점에서 제공 방법을 문제 삼는 것은 억울하다"고 말했다.

또 KB금융은 2011년 1월 5일 금감원에 제출한 '체크리스트'에 국민은행 고객 전체를 상대로 마케팅을 하겠다는 내용을 기재했고 국민카드는 2011년 3월 분사 당일부터 전체 은행고객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해왔다.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

◆ “죄목 바꿔서 제재하는 것은 가혹”…당국, 무리한 제재 논란

당국이 임영록 회장의 징계 사유를 추가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일각에서는 무리한 제재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금감원이 수개월간 검사를 진행한 상황에서 검사 종료 후에 새로운 문제점을 지적해 제재한 전례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해서는 금융위의 유권해석을 주요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정작 금융위 내부에서는 유권해석을 근거로 중징계를 사전 통보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위 관계자는 “법률 규정이 모호한 상황이라면 유권해석으로 과거 사건을 중징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유권해석은 일반적인 내용일 뿐 개별 제재 사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다 고려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금융지주회사 임직원의 중징계는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를 거쳐 금융위에서 최종 결정되기 때문에 금감원이 유권해석에만 의존해 중징계를 결정한다면 금융위에서 재검토를 지시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금감원은 유권해석을 배제한 상황에서 임 회장에게 책임을 묻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이 신정법 위반으로 임 회장을 처벌하려고 했는데 감사원 감사결과에 따라 이걸로 처벌하기 어려우니 다른 죄목을 찾는 것은 가혹한 측면이 있다”며 “금감원은 그동안 수 차례에 걸쳐 국민카드와 국민은행을 검사했는데 지금까지 사업계획서와 관련해서는 아무 말도 없다가 갑자기 문제 삼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