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돈을 돌게 하겠다면서 기업유보금이 배당으로 가게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단기 부양책은 필요하지만 장기적인 산업 육성책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금융 위기는 끝이 났고 당분간은 걱정없다고 볼 상황이 아니다. 규제를 풀었다가 위기를 만나면 문제가 커진다. 주의해야 한다.”

장하준 교수는 국내외 경제 현안에 대해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28일 기자 간담회에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도 규제는 제대로 이행된 게 없는데 미국 주식시장에 거품이 엄청나게 끼었다”면서 “그밖에도 불안 요인이 많아 금융 위기 재발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현재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신간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출간에 맞춰 방한, 이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자들과 마주했다. 장 교수는 인사말에서 새롭게 책을 쓴 취지를 설명한 데 이어, 기자들과 폭넓게 문답을 주고받았다. 책에 대한 내용 이외에도 다양한 국내외 경제 현안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졌고, 장 교수는 금융위기 재발 위험에 대한 경고부터 박근혜 정부의 경기부양책에 대한 비판까지 자신의 견해를 제시했다.

◆장하준 “지금 경제학은 직장 문앞에서 끝난다”

”사실 엄두를 못 내고 있던 책인데, 영국 펭귄출판사에서 제안했다. 펭귄출판사에는 30~40년대부터 몇 천 권을 펴낸 펠리칸 페이퍼백 시리즈가 있는데 대중을 위한 입문 시리즈다. 개미·경제학·디자인·동양철학 등 안 나온 분야가 없었는데 90년대 들어 동면에 들어갔다가 다시 부활시키려고 한다면서 내게 경제학 입문서 집필을 부탁했다. 그렇지 않아도 쓰고 싶었는데 해 보겠다 말했다. 책을 쓰는데 2년 반이 걸렸다. 대학입시 때보다 더 열심히 했다. 목표는 '읽기에 부담 없고 재미있지만, 독자들을 진지하게 대하는 책'을 쓰자는 것이었다. 자본주의 역사부터 경제학의 정의, 경제학파들의 논쟁들, 경제와 정치를 분리하는 것이 가능한가 같은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했다. 어렵게 쓴 것이 아니라 관심있는 독자들은 쉽게 이해하도록 썼다. '이것이 답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논쟁이 있고, 사실이 있고, 견해들이 있다'라고 말해 독자 스스로 무엇이 맞고 틀리는지 판단하도록 하고 싶었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What to think' 가 아닌 'How to think'를 설명하고 싶었다. 어떤 이슈에 어떤 견해가 있고, 그 견해들이 다른 결론을 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가령, 같은 자유시장주의지만 신고전파와 고전파는 경제를 개념화하는 것이 다르다. 고전파는 개인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노동자와 자본가, 지주 세 계급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 경제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얘기한다. 신고전파에서 얘기하는 소비자 주권이나 개인의 선택은 거의 없다. 내 생각도 표현했지만 독자 스스로 판단해보라는 논지로 썼다. 경제학자들은 너무 어렵게 얘기 하고 입문서를 쓴다고 하면 논쟁도 없고 너무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어떻게 하면 경제학이 굉장히 재미있는 학문이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전할까를 생각하면서 책을 썼다. 앞서 낸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와 '나쁜 사마리아인' 같은 책은 이슈 중심이다. '나쁜 사마리아인'은 세계화 속에서 후진국이 경제발전을 어떻게 이뤘는지를 설명하는 책이고,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는 23가지를 이슈를 집어서 다룬 책이다.

반면 이 책은 경제학과 경제 현실에 대한 조감도를 제공하는 것이다. 어떤 학파가 있고 어떤 논쟁이 있는지 현실이 어떤지 광범위하게 그러나 피상적이지 않게 전달하려고 했다. 다른 책에 없는 내용이 많다. 경제학 입문서는 보통 경제사에 대한 설명이 별로 없지만 내 책에서는 다뤘다. 다른 경제학파에 대한 소개도 많이 다뤘다. 지금 경제학의 본류가 되어있는 신고전파 경제학은 경제를 교환 관계로 보고 주체를 개인으로 본다. 그러다 보니 생산에 대한 얘기를 안한다. 공장 얘기를 안 한다. 가계, 사무실 얘기는 안 한다. 경제학이 말하자면 직장 문앞에서 끝난다. 그 안에서 하는 일은 경영학자·사회학자가 하는 얘기라고 여긴다. 특히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복지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렇게 되니 경제 정책도 노동 문제를 배제하는 쪽으로 가게 된다.

이번 책에서 한 가지 독특하게 시도한 것으로 ‘실제 숫자’라고 하는 난이 있다. 경제학 하면 숫자를 많이 다루는 학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경제학과를 나온 전공자들은 우리나라 GDP가 중국 GDP와 대비해서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른다. 현실에 대한 숫자는 잘 안 배우고 통계치로 다루는 경향이 크다. 실제 경제에 대한 감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숫자를 알면 뭐하냐, 굳이 알 필요 있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모르면 굉장히 잘못된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가령,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는다’고 얘기하면서 흔히 구매력 기준으로 삼는데, 구매력은 생활 수준이지 세계 경제에서의 비중이 아니다. 비교할 게 아니다. 구매력 기준과 정상 가격의 차이가 나는 것은 후진국의 서비스가 싸기 때문이다. 서비스는 교역이 안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국제환율은 교역되는 제품인 휴대전화나 원유 같은 것의 가격에 의해 결정된다. 국제시장 환율을 기준으로 평가하면 선진국 생활 수준은 저평가된 것이다. 하지만 경제력을 비교할 때는 구매력을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 그 기준으로 보면 중국 경제 규모는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 미국은 23%다. 중국은 예전 세계 경제 대비 비중이 1.5%이었지만 엄청나게 성장했다. 정확한 숫자를 알아야 한다.

또 하나 좋은 예가 유로존이다. 15개 유럽 국가들에게 경제 위기가 났는데 가장 문제가 된 것이 그리스다. 독일과 네덜란드는 그리스가 게을러서 그렇게 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리스는 가장 부지런한 나라 중 하나다. 책에서도 얘기하지만 OECD가입국인 멕시코는 노동 시간이 가장 길다. 멕시코를 빼면 선진국 중 한국 노동 시간이 가장 길다. 그 다음이 그리스다. 독일에 비해 노동시간이 30% ,네덜란드에 비해 40% 길다. 게을러서 그런 게 아니다. 생산성이 낮은 것이다. 게으름의 문제로 보니까 복지예산을 깎고 잘못된 처방이 나온다. 실제 숫자를 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 숫자를 다 알 필요는 없지만 될 수 있으면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독자들이 세계경제가 이렇게 생겼고 후진국은 이런 수준의 생활 수준이고, 선진국은 이런 비중을 차지하고 하는 것을 최대한 많이 전달하려 했다. 책 소개는 이 정도에서 마치겠다.”

◆일문일답
-주말 동안 열심히 읽었다. 두 군데 오탈자가 있고, 한 군데 사실관계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97년 외환위기 발생부터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닥치는 대로 읽었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의문점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 학자에서 사상가의 입지로 올라서는 것 같다.(웃음)

“금융의 과다 발전에 대해서는 책 8장에서 자세히 숫자를 들어 설명했다. 엄청난 과다 발전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예전에 비해 세계 GDP와 금융자산을 비교하면 70년대까지 1.2:1 이었는데 이제는 추산에 따라 4:1, 5:1에 이른다. 건물의 기초는 똑같은데 건물이 네배 다섯배 높아진 것이다. 이것 때문에 문제가 많이 생겼다. 그래서 2008년 금융위기가 된 것이다. 그런데도 그 뒤에 이뤄진 개혁은 엄청나게 미진하다. 그나마 조금 이뤄진 것이 은행 자본비율 강화 같은 것이다. 이 비율 자체도 일부 전문가들은 너무 낮다고 말한다. 유예 기간으로 7년이 주어진 것도 강제법이 아니다. BIS 추천국 중 어떤 나라가 안한다면 제재를 가할 수도 없다. 발표 후에 가디언지에 은퇴한 미국은행가가 기고한 게 있다. 1930년대 글래스스티걸법을 도입했을 때도 투자-상업은행 분리 기간을 1년밖에 주지 않았는데 지금은 자기자본비율 올리는 데 7년이나 주느냐고 반문했다. 그때 문제를 일으켰던 파생상품에 대해서도 새로 도입된 것이 거의 없다. 지금 다시 또 파생상품들이 고개들고 있다. 신용평가기관에 대해서도 엄청난 비판이 있었다. 미국 청문회 때 밝혀진 얘기가, 어느 신용평가기관에서는 서로 이메일 하면서 돈만 주면 소가 만든 상품도 우리는 트리플에이를 준다고 했다. 그에 대해 기껏 도입된 것이 유럽연합에서 같은 신용평가기관을 3년 이상 하면 규제하는 정도다.”

-80년대 이후 양극화가 심해지는데, 금융의 과도한 힘의 집중 때문인 것 같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융 개혁이 미진하다고 책에 썼다. 세계 금융 개혁이 어느 정도 진행됐고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예전의 일이 반복되고 있다. 미국 주식시장이 유례없는 거품을 보이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직전에 비해 주가지수는 20%가 높지만, 미국 경제 성장률은 1~2% 밖에 안된다. 2008년보다 더 큰 거품이 있다. 또 다시 2008년 같은 위기가 재발할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타이밍을 맞추기는 어렵다. 내년이 될지 내후년이 될지 모른다. 금융 시장이 민감해서.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서구 갈등이 촉발할 수도 있고,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하거나, 러시아가 보복을 하기 위해 천연가스 수출 안 한다면 유럽 경제는 박살이 난다. 여러 불안 요인들이 있다. 중국도 겉으로는 잘 굴러가는 것 같으나 내부에서는 갈등이 있다. 어떤 것이 뇌관이 되어 촉발될지는 모르지만 금융위기가 올 것이다.”

-금융위기가 올 징후가 있다고 생각하나. 가능성이 몇%나 되나. 징후가 어디에 있고 우리 정부가 대응하려면 어떻게 바꿔야하는가.

“가능성이 몇%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나중에 망신당할 수 있다.(웃음) 예전에 갤브레이스 교수는 위트가 있기로 유명했는데, 경제 예측의 임무는 점성술을 더 좋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 적이 있다. 미국 주식시장이나 영국도 거품이 많다. 영국은 부동산 거품이 엄청나게 일었다. 런던은 집값이 지난해 20% 올랐다. 중국도 내부에서는 부실금융기관이 있어도 정부가 통제 못하는 펀드도 많다. 징후는 사방에 있다. 과도한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한 자본시장 규제 도입이 필요하다. 이런 금융 거품, 부동산 거품을 통해 경기를 살려볼까 하는 것을 삼가해야 한다. 규제를 강화해야 금융 충격이 와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2008년 금융위기 때 다른 나라보다 부동산이 그나마 나았던 것이 다행이었는데, 부동산 대출 규제 때문인 측면이 있다. 금융 위기는 끝이 났고 당분간은 걱정없다는 상황이 아니다. 언제 문제가 될지 모른다. 풀었다가 위기를 만나면 문제가 커진다. 주의해야 한다.”

-최근 중국에서 브릭스투자은행을 만들었다. 미국의 금융 패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갑론을박이 많다. 중국의 금융 세계시장 진출이 어떻게 될지 말해달라.

“브릭스 투자은행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영향력이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우 예전에는 세계은행이나 IMF에서 말하면 찍소리도 못했는데 이제는 중국이 돈을 많이 대주니까 튕긴다. 그런 식으로 박대하면 중국 가서 돈 타 쓰겠다는 식이다. 하지만 자본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어떻게 영업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밝혀진 것이 없어서 정확히 얘기하기 힘들다. 기본적으로는 세계은행이나 IMF를 누를 정도는 아닐 것이다. 출자를 얼마나 할지 모른다. 지금 브릭스 경제 규모를 다 합쳐도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직 16~17%밖에 안된다. 선진국이 많이 줄었다고 해도 70% 가까이 된다. 경제력에 맞는 만큼 돈을 내놔 승부를 한다면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브릭스가 자기 경제 규모의 2~3배를 내놓지는 않을 것이다. 상당히 영향력이 있겠지만 대체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반이다. 2기 경제팀이 출범했다. 지난 1년 반 경제 정책에 대한 평가는.

“박근혜 정부가 처음 양극화 해소나 복지에 대해 약속한 것을 어긴 게 너무 많다. 일을 하다 보면 약속을 못 지키기도 한다. 경제 사정도 변하고 외부 요인도 변했다. 하지만 너무 약속을 가볍게 깼다고 생각한다. 바꾸더라도 국민들을 설득하고 설명해서 한 것이 아니어서 문제가 많다고 본다.”

-최경환 부총리 취임 이후 여러 경제부양책을 내놨다. 어느 정도라고 보나.

“박근혜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대부분 정부들이 우리 경제에 새로운 산업의 육성을 통해 도약하는 것이 부족하다.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고 기술 투자하고 인력 키우고 시장 개척해야 한다. 단기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보니 자꾸 뒤로 미룬다. 그 문제에 대해 이번 경제팀이나 앞으로 들어올 경제팀이나 다같이 진지하게 생각을 해봐야 한다. 자세한 내용을 코멘트할 수는 없고, 간략히 말하자면 단기적인 경기부양이 필요하나 장기적으로 어떻게 길을 뚫어야 할지 고민을 하고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기업이 보유한 자금을 정부가 민간으로 돌리기 위해 과세를 얘기하고, 기업에서는 선진국에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반박한다. 실제 선진국 사례는?

“법적으로 직접적으로 (기업의 유보금을) 푼 예는 아는 것이 없는데, 지배구조 자체를 다르게 만들어 놓으면 이런 식으로 돈을 모아서 쌓아놓는 일이 줄어들 수 있다. 예를 들어, 과거 일본과 독일이 영미식의 주주자본주의와 단기 경영 쪽으로 안 갔던 이유가 지배구조를 다르게 만들어 단기 주주의 압력을 줄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독일의 경우 공동결정제를 만들어 기업의 인수합병이나 이런 데 대해서 노동자 동의를 받도록 했다. 인수합병이 어렵고, 경영자들은 위험을 신경쓰지 않고 경영하도록 만들었다. 일본은 법제 자체는 2차대전 끝나고 미국식 상법을 도입했지만, 자신들이 약한 것을 알고 OECD에 가입하고 64년 자본시장 확대하면서 우호지분 확대를 통해 압력을 줄였다. 그런 식의 규제는 허다하다. 하지만 남들이 안 한다고 못할 것은 없다. 이번 조치에서 하나 걱정되는 것은 기업이 모인 돈으로 배당을 하면 봐준다는 것인데 원래 정책 취지와 맞지 않다. 돈이 돌도록 하자는게 목적인데, 배당금으로 주면 30%는 외국인이 소유해서 외국으로 나갈 것이다. 가계 투자자들은 10%밖에 안되고 기관투자자에게만 돈이 들어가게 된다. 가뜩이나 외국 투자자 중심으로 배당 압력이 높아지는데 그것을 더 장려를 하면 우리 경제에 좋은 것인지 모르겠다. 정책 자체를 왜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말하자면 제조업체가 현금을 쌓아 두는 거나, 배당을 받은 부자들이 현금을 쥐고 있는 거나 효과는 똑같다. 진짜 돈을 굴리겠다면 임금을 올리든지 투자를 하게 해야 한다. 배당이 왜 끼었들어갔는지 잘 이해를 못하겠다.”

-경제를 발전하기 위한 장기 전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전에 한미FTA에 반대했다. 지금은 어떻게 평가하나. 중국에서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가입하라고 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TP) 얘기도 나온다. 우리 경제가 세계 경제와 어떤 관계로 가는 것이 맞을까.

“한미FTA와 한-EU FTA 반대할 때 내세운 논리는 ‘자유무역은 양측 수준이 비슷하면 자극이 돼 좋다’는 것이었다. 수준 차가 많이 나면 후진국한테 손해다. 단기적으로는 무역이 확대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고부가가치 산업을 발전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아주 극단적으로는 1960년대 무역을 완전히 개방했다면 현대자동차 · 삼성전자 · 포스코 아무 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때 비하면 지금은 많이 발전했지만, 소득수준이나 생산성을 최고 수준인 스위스 같은 선진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50~60% 수준이다. 내 판단으로는 어렵기 때문에 반대를 했다. 한미, 한-EU FTA는 장기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과연 20~30년 후에 우리나라가 현재 그런 나라가 갖고 있는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산업인 부품 · 제약 · 화학· 나노 · 생명공학 산업을 따라잡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런 각도에서 보면 20~30년 후에는 한미 ·한-EU FTA를 후회할 것이다. 여러 가지 지역 묶음 가입은 정치적 문제가 됐다. 중국, 미국 어느 그룹에 가입할지 문제가 됐다. 우리나라는 어느 한쪽에도 쏠려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정말 조심해야 한다. 중국은 TPP를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으로 본다. 미국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중국이 말하는 것만큼 포위 전략은 아니더라도 그런 면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중국에 붙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미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나라 같은 나라는 다자간 무역 질서를 주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잘 생각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가 100일 지났다. 경제학자로서 보는 시각은.

“세월호는 자식 가진 부모로서 말하기도 가슴 아픈 주제다. 경제학자 입장에서는 무분별한 규제 완화와 그나마 있던 규제마저 제대로 집행하지 않은 데서 생긴 문제라고 본다. 화물 과적, 이런 짓 안 했으면 이런 정도까진 안됐을 것이다. 이것을 계기로 최소한 안전 문제 강화는 사회 합의가 되는 것 같은데. 참사를 일으킬 수 있는 안전 문제뿐만 아니라 금융 문제도 마찬가지다. 직접 사람이 죽는 것은 아니지만 금융위기가 닥치고 실업자가 나오고 생계가 곤란해지고 하면 그것도 규제 완화를 잘못해서 사람이 죽는 것에 해당한다. 물리적 안전뿐만 아니라 경제적 안전도 중요하다. 한 발 더 나아가 배나 비행기에 대한 규제뿐 아니라 우리 먹거리 규제나 금융 안정 같은 다른 경제 문제도 규제가 너무 풀린 데는 없는지 점검해야 한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20여년 규제는 무조건 푸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왔다. 이번 계기로 달리 생각해야 한다.”

-전반적인 기조를 감안하면, 세월호와 관련해 주류경제학자들도 책임이 있다고 볼 수도 있나.

“책에서도 말했지만 신고전파=자유시장 경제학자는 아니다. 신고전파 이론에도 시장실패론이 있고, 규제를 정당화할 수 있다. 같은 신고전파라도 크루그먼이나 스티글리츠는 규제를 많이 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30년 동안 신고전파 내에서도 말하자면 자유시장 분파인 시카고학파가 득세했기 때문에 '신고전파=자유시장학파'로 인식된 것인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신고전파의 특정 분파의 문제지 신고전파의 문제는 아니다.”

-책에는 여러 학파가 설명돼 있다. 국내 학계 지형은 어떤가. 주류가 물론 있겠지만 영국에 비해 쏠림 현상이 심하진 않은지.

“영미와 비교해서 크게 차이가 나는 건 아니다. 영미 둘 다 신고전파가 절대 다수다. 특히 시카고 학파 식의 자유시장주의가 절대 다수다. 95%다. 나라에 따라 달라 브라질이나 이탈리아는 고전학파, 슘페터학파, 케인즈학파 연구자들이 굉장히 많다. 우리나라는 특히 미국 성향을 따라가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쏠림 현상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절대반지'는 없다는 것이다. 모든 이론에 장단점이 있다. 도덕적 판단이 다 다르다. 그것(도덕적 판단)에 동의하지 않으면 이론에 동의할 수 없다. 오스트리아학파 같은 경우 개인의 재산권을 중시하는데, 하이에크는 공식적으로 피노체 군부독재 정권을 찬양했다. 그 사람의 도덕적 기준에는 맞다.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헤치는 것을 막는 것이 진정한 자유사회라고 생각했다. 하이에크도 이론적으로는 훌륭한 사람이다. 통찰력이 있다. (이론이 아무리 좋아도 정치적으로는 100% 싫어하지만) 자유시장에 대한 옹호는 하이에크가 대표하는 오스트리아 학파가 신고전파보다 낫다. 신고전파는 시장에 관심이 많다. 슘페터학파나 마르크스학파는 생산 단위 공장과 기업에 관심이 많다. 신고전파 이론은 생산 자체 분석에는 관심이 없다. 자연독점 기업의 규제에 대해서는 신고전파 분석이 필요하다. 모든 학파의 장단점을 배워서 생각해야 더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있다. 모든 학파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류경제학을 많이 비판했다. 그런 점에서 토마 피케티의 책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공통점이 있다고 보나.

“피케티 책은 안 읽었다. (피케티가 다룬) 소득 분배는 내 전공 분야가 아니라서. 책을 쓰느라 못 봤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는 말하기 어렵다. 주류경제학을 비판했다는 측면은 있지만 주류경제학이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여러 경제학파를 봐야 한다는 말이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신고전학파는 틀렸다는 얘기가 아니다. 오해하지 말라. 읽어 보면 안다.”

-정치경제서라는 느낌을 받았다. 김수행 교수나, 영향 받은 분 있나.

“경제학은 정치경제학이라고 해야 한다.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에서도 누누이 강조했지만 정치와 경제는 분리가 어렵다. 시장의 경제라는 것이 정치적으로 결정된다. 경제학이 원래 이름 자체가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이다. 신고전파의 아버지라고 하는 윌리엄 제본스의 책 이름도 정치경제학이었다. 원래 경제와 정치는 뗄 수 없다고 생각했다. 20세기 신고전파학파들이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때 이름 자체를 바꿨다. 이름을 바꿨지만 정치 문제는 피할 수 없다. 피하는 척하는 것보다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을 책에서 강조했다. 한국에서 정치경제학이라고 하면 70~80년대 반공법이 있을때 마르크스 경제학을 얘기 못하니까 ‘정치경제학=마르크스 경제학’으로 이해했는데, 맞는 등식은 아니다. 김수행 교수는 학부 때 강의도 들었고 계속 스승으로 모시는 분이어서 그분이 하신 말은 많은 영향을 끼쳤다. 케인스학파 영향도 많이 받았다. 정운찬 교수, 제도학파라 할 수 있는 임종철 교수, 박우희 교수 영향도 받았고. 옛날부터 잡식성이라, 좋은 말이면 학파에 관련없이 다 듣고 공부했다. 이런 책도 그런 맥락으로 봐 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