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에 암울한 소식이 또 터졌다. 이번에도 담합이다. 호남고속철도 건설공사 입찰에서 국내 대형 건설사들이 담합이 적발돼 4000억원대의 대규모 과징금이 부과됐다.

담합 방식도 낱낱이 드러났다. 매우 치밀하게 짜고 치는 입찰의 경우 혀를 내두를 정도다. 대우건설과 삼성물산을 제치고 대림산업이 공사권을 따낸 차량기지 공사의 경우 각 회사 관계자들이 모여 '사다리타기' 게임을 하며 합의하고 나서 입찰 당시 결정된 금액대로 투찰을 했다.

지난해 4대강 사업으로 이미 100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내게 된 데 이어 올해 들어서는 인천도시철도 2호선, 대구지하철 공사, 경인운하까지 입찰 담합 판정을 받으며 3000억원이 넘는 과징금이 추가로 부과됐다. 이번 과징금을 포함하면 2010년 이후 건설업계에 부과된 누적 과징금은 9453억원으로 1조원에 육박하게 된다.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건설사 사장들이 건설공사 입찰 담합에 대해 머리를 숙이고 있다.

건설사 사장들은 지난주 국회에서 열린 '건설공사 입찰담합 근절 및 경영위기 극복 방안' 토론회에서 고개를 숙였다. 연이은 입찰 담합 조사와 과징금, 손해배상 소송 등 악재가 겹치자 사장들이 선처를 요청했다. 또 이번 호남고속철도 담합 과징금 발표를 앞두고 서둘러 잘못을 시인한 것이다. 정상참작을 기대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벌써 건설업계에서는 엄살이 시작됐다. 건설사업 자체가 침체인데 과징금을 1조원씩 때리면 어떻게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올해 번 돈을 모두 과징금으로 내야 해 한해 장사를 망쳤다는 것이다.

또 외국 건설사들이 잇단 공정위의 담합 징계를 한국 업체에 대한 비방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며 우려했다. 대형건설사 한 관계자는 "과징금 부과가 해외 수주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며 "일부 프로젝트의 경우 국내에서 담합 문제가 불거지면서 발주처가 관련 내용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건설사들의 항변에 황당하다는 반응이 우세하다. 현재 건설업계 위기는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서 초래했기 때문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하는 관급공사는 서로 모여 담합해 돈을 벌기 바빴지만, 해외에서는 적자를 보며 공사를 했다. 실제 지난해 GS건설(006360), SK건설, 대림산업, 삼성엔지니어링등은 해외에서 저가수주로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그럼 왜 건설사들은 국내에서만 담합을 했을까. 해외에서 담합이 불가능한 이유는 기술력이 선진국 업체들보다 떨어져 발주처에 큰소리를 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규 진입 시장이라던가 당장 수주 실적을 끌어올려야 하는 경우 전략적으로 저가 수주를 택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또 국내 건설업계의 구조적인 문제도 관련이 있다. 국내 주택시장이 침체한 상황에서 부족한 실적을 메우기 위해서는 결국 해외건설 부문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무리한 수주 경쟁이 벌어졌다.

회계법인 한 관계자는 "해외에서 손실보고 국내에서 담합해 돈을 번 상황"이라며 "담합을 하고 사장들이 고개 한번 숙이면 과징금 규모가 줄어들 것이란 순진한 생각한 것이 황당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