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사들이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해외 문을 두드리고 있다. 제약산업 규모나 기술면에서 한국에 뒤처지는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수출 계약에 힘쓰는 한편 해외법인을 세워 직접 영업에 뛰어들고 있다.

◆ 남미·중동 수출 늘고 법인 설립 붐

국내 제약사들의 해외시장 공략은 연초부터 잇따르고 있다. 대웅제약(069620)은 올해 1월 아르헨티나와 미간주름 개선제 '나보타'를 7년간 240억원어치 수출하기로 계약했다. 4월에는 이란과 256억원 상당의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이매티닙' 수출계약을 체결했다.

종근당(185750)은 올해 5월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바이오코리아 팜페어에서 코스타리카, 아랍에미레이트(UAE) 등과 2760만달러(약 283억원)의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면역억제제 '타크로벨'과 '마이렙트', 항암제 '루키벡' 등이 수출길에 올랐다.

보령제약은 자사 매출의 일등 공신인 고혈압제 '카나브'의 해외 발매에 주력하고 있다. 2011년 10월 멕시코 스텐달사와 중남미 13개국에 대한 라이선스 아웃 게약을 체결한 데 이어, 올해 5월엔 멕시코 연방보건안전보호위원회(COFEPRIS)로부터 시판 허가를 받았다. 보령제약 관계자는 "미국와 스위스 등 제약선진국 시장은 진입이 어려워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활로를 개척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법인 설립을 통한 시장 공략도 활발하다. 녹십자(006280)캐나다법인은 캐나다 퀘백주에 혈액제제 공장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올해 4월 퀘백투자청으로부터 2500만 캐나다달러(약 250억원)의 재정 지원과 세제 혜택을 약속 받았다.

한미약품(128940)은 지난해 중국에 어린이용 정장제, 기침가래약, 항생제 등 20여개 제품을 판매해 9억6000만위안(약 171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JW홀딩스(096760)도 이달 22일 필리핀 마닐라에 현지법인 'JW헬스케어 필리핀'을 세웠다. 동아ST는 인도네시아 제약사 컴비파와 제휴를 맺고 1500만달러를 투자해 바이오 의약품 생산 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동아ST는 인도네시아를 주변 동남아시아 진출의 교두보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에는 몽골에 현지 공장설립을 추진하는 한편 브라질 법인을 통해 중남미권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조선일보DB

◆ 정부 규제 강화, 시장은 포화상태

제약사들이 해외시장 진출에 집중하는 이유는 시장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 제약시장 규모는 약 13조6220억원으로, 2012년과 비교해 0.1% 성장하는데 그쳤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특허 만료 의약품이 많이 나와 제네릭(복제약)을 취급하는 국내 제약사들의 성장세가 두드러졌지만 현재는 시장이 포화된 상태다.

정부의 규제 강화 움직임도 제약사의 해외 진출에 속도를 더하고 있다. 사용량 약가 연동제는 제약사들의 고민을 더하는 대표적인 규제로 손꼽히고 있다. 사용량 약가 연동제는 약 사용량이 예상치보다 늘어나면 가격을 낮추는 제도다. 약품이 잘 팔려 제약사 수익이 늘면 건강보험 재정도 증가하기 때문에 정부가 '부담완화' 장치를 마련해둔 것이다.

국내 제약사의 한 관계자는 "사용량 약가 연동제 상태에선 약이 잘 팔려도 고민"이라며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하기 위해 제약사만 잡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여기에 덧붙여 이달 2일부터 건강보험법 개정안에 따라 '리베이트 투아웃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 제도는 리베이트 제공 사실이 두 차례 적발되면 해당 약품을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약품이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기 때문에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된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리베이트는 대부분의 제약사가 진작부터 안하는 분위기라서 제도시행 자체가 가져올 여파는 미미하다"면서도 "정부의 규제강화 의지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시장 분위기가 더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DB

◆ 중국·인도 저가 공세…해외시장 진출전략 신중해야

하지만 업계에선 제약사의 해외 진출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제네릭에 치중해온 국내 제약업체들이 과연 싼 인건비를 경쟁력으로 갖고 있는 중국, 인도 등의 저가 공세를 감당할 수 있겠냐는 분석이다. 성분이 엇비슷한 복제약 틈바구니에서 유일한 경쟁력은 '싼 가격'뿐이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맞붙을 경쟁국가의 성장세도 무섭다. 전문가들은 중국 제약시장이 2017년까지 세계 2위권인 1900억달러(약 195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 지방에 난립한 소형 제약사들을 구조조정하는 등 대대적인 체질개선에 나섰다. 2011년 11월 7886개에 이르는 제약사는 2년 뒤 7071개까지 줄었다. 같은 기간 적자 제약사도 1232개에서 876개로 감소했다.

이준영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제약업계는 지속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부실 제약사를 퇴출시키고 대형화를 추진하고 있다"며 "중국을 포함한 해외 진출에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한양행(000100)관계자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을 대상으로 '의약품 생산대행 전문기업(CMO)' 사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외진출 전략을 세웠다"며 "제네릭 역시 중국, 인도에 밀린다는 점을 감안해 신약원료시장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