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성 경제부장

"걸어보세요. 어이구, 엉치뼈가 뒤틀렸네요. (엉치뼈)구들장부터 다시 놔야겠어요"
도인의 눈빛을 지닌 그를 만날 때마다 비명을 질러대야했다. 목뼈부터 엉치뼈까지 왕복달리기를 하는 괴물 같은 안마기에 누워 어금니를 꽉 깨물고 한참을 끙끙거렸다. 그러고 나면 철봉 같은 '거꾸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몰라도 허리가 불편해 엉거주춤 걷는 사람이 원숭이 처럼 거꾸로 매달리는 것은 고문이나 다름없다. 본게임은 그 다음 차례였다. 도인의 주특기는 꺾기와 비틀기였다.

그로부터 한달 반이 지나니 안마기와 거꾸리는 더 이상 괴물이 아니었다. 안마기가 등 뒤를 지날 때마다 악소리가 났던 통증은 어느새 쾌감으로 변했다. 척추뼈 마디마디를 펴주는 거꾸리는 오랜 친구 같았다. 석달쯤 되자 땀을 뻘뻘흘리며 꺾기 요술을 부리던 도인이 말했다. "새 구들장을 다 놨으니 하산해도 좋아요" 119 구급차에 몇차례 실려 병원에 갔을 정도로 심각했던 나의 허리병은 그렇게 나았다.

구원투수로 나선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비상등이 켜진 우리 경제에 새 구들장을 놓을 태세다. 친박계 실세 정치인 답게 전임자는 엄두도 못냈던 화끈한 전방위 경기부양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의 발언을 종합해 보면 3대 축이 근간이다. 첫째는 정부재정과 정책금융으로 돈을 확 풀고, 둘째는 주택금융 규제인 LTV(담보인정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를 완화해 부동산경기 활성화에 나서는 것이다. 셋째는 기업이 쌓아둔 과도한 현금을 임금과 배당을 통해 가계로 흐르도록 하고, 저임금에 고통받는 600만명 비정규직 문제를 해소해 소비진작을 꾀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런 최경환식 구들장 놓기의 총론은 대체로 옳바른 방향이다. 더 늦기 전에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경제주체를 정신차리라고 흔들어 깨워야 할 시점이었는데, 그의 발상은 시의적절하다. 최 부총리가 말했듯이 우리 경제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연상시킬 정도로 축소 균형의 덫에 걸려 있다. 경제가 활력을 잃고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기업은 현금을 곳간에 과도하게 쟁여놓고 있고 가계는 실질소득이 늘지 않아 소비가 부진했던 게 우리 경제가 구조적인 저성장 국면에 빠진 이유라는 그의 인식도 맞다.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사회 초년 비정규직이 IMF 외환위기 이후 양산된 게 기업과 가계간 소득 불균형을 잉태한 시발점이었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우려되는 대목이 적지 않다. 가계부채와 내수 부진을 해결하려면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늘려주는 게 맞지만 그 해법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기업이 배당을 늘려도 외국인, 대주주, 기관를 빼면 개인투자자 몫은 20~30%에 불과하다. 개념 자체가 애매모호한 기업의 사내유보금 과세 방안이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기업이 과도하게 쌓아둔 현금을 저소득층 가계의 소득으로 이전하는 게 목적이라면 차라리 법인세를 올리면 간단하고 효과적이다. 야당도 적극 찬성하는 방안이라 국회 통과도 쉽다. 임기내 증세를 하지 않겠다는 박근혜 정권 DNA 때문에 비효율적인 우회전략을 택했다면 글쎄올시다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법인세 최고 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춘 이후 지난 5년동안 기업 부담이 덜어진 법인세 금액은 28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뿐만 아니라 가계의 가처분소득 확대를 위해 더 중요한 축은 사교육 주거비 등의 고비용 구조 해소여야 하는데, 최 부총리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세계 경제 구조가 저성장 저소비 등을 특징으로 하는 ‘뉴 노멀(New Normal)’ 국면에 진입했다. 가계소득을 늘리기 쉽지 않은 환경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비용 절감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또다른 이유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0년 기준 가계지출에서 사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20.5%로 식료품(23.2%)에 이어 두번째로 컸다. 한창 공부할 자녀를 둔 시기인 40대의 사교육비 비중은 무려 39.3%에 달했다. 30대의 비중도 27.1%로 높았다. 물론 고비용 사교육이 자리잡게 된 일차적인 책임은 자녀에 대한 부모들의 과도한 기대에 있다. 하지만 중산층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끝없이 확대 재생산중인 사교육시장은 이미 괴물로 변해 버렸다. 고비용의 병리현상은 '에듀푸어'를 양산하는 사교육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푸어(Poor)' 현상은 하우스푸어·렌트푸어·실버푸어 등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다.

우울증상을 보이고 있는 우리 경제를 붐업하기 위해 빚내서 집사기를 권하고 재정건전성을 한발 양보하는 것에 대해 우선 순위상 어쩔 수 없다며 용인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다. ‘양날의 칼’과 같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주택 금융 규제를 풀면 10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는 더 불어날 수 밖에 없고, 특히 가계대출의 상당부분이 실수요가 아닌 생활과 창업을 위한 대출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경제체질 개선을 위한 진정한 새 구들장 놓기는 잠재성장률 끌어올리기여야 한다. 잠재성장률은 그 사회의 물적 인적 요인을 충분히 활용해 인플레이션을 일으키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의 개념이다. 설비투자 등 자본, 취업자수 등 노동력, 그 사회의 총요소 생산성이 주요 결정 변수다. 개발 연대와 비교하기에는 그렇지만 1980년대 7%후반, 1990년대 6%중반 수준이었던 잠재성장률은 현재 3%중후반으로 뚝 떨어져 있다. 뿐만 아니라 실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에 못미치는 경기침체 상황이 장기화되고 있다.

잠재성장률에 대한 연구 결과마다 차이는 있긴 하지만 대체로 총요소생산성이 잠재성장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온다. 우리 사회의 생산성을 제약하는 정부 규제와 약탈적 갑을 관계, 부정부패, 노사관계 등의 문제를 풀어야 하는 이유다. 그 다음이 노동력이다. 심각한 저출산 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양질의 노동력을 해외에서 들여오는 이민정책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고민해야 할 시점인지도 모른다. 최 부총리가 꼭 찾아야할 ‘안마기’와 ‘거꾸리’는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