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최대 수출 기지는 경북 구미 공장이 아닌 베트남 하노이 북동쪽 박닌성에 있는 옌퐁 공장이다. 구미 공장에서는 국내용 제품을 주로 만들고 수출용은 대부분 베트남 공장에서 생산한다. 삼성전자가 2008년 완공한 옌퐁 공장은 47만㎡ 규모로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이 50개 정도 들어설 수 있다. 삼성전자는 옌퐁 근교에 46만㎡ 크기의 타이응우옌 공장도 추가 건설 중이다.

베트남에 삼성전자와 동반 진출한 중소 협력기업은 70여 개사. 여기에 올 연말까지 100여 개사가 베트남으로 추가로 옮길 예정이다. 스마트폰 케이스를 생산하는 중견기업 A사의 경우, 베트남을 포함한 해외설비 투자액(장부가액 기준)이 1600억원 규모로 이 국내 공장 투자분 200억원의 8배 정도 된다. 대기업이 해외에 생산 거점을 만들자 관련 계열사와 부품 업체들까지 함께 가는 '선단식(船團式) 해외 진출'이 가속화하고 있다. 수십조원의 현금을 쌓아놓고 있는 대기업들의 국내 투자 기피(忌避) 현상이 제조업 공동화(空洞化)와 일자리 감소를 낳아 한국 경제와 산업계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 투자 감소로 새 일자리 急減

대기업의 해외 투자 확대는 전(全) 산업 분야에서 대·중소기업을 막론한 채 광범위하다. 현대차가 유럽·미국·중국·러시아·터키 등에 공장을 지으면서 같이 진출한 1·2차 협력사는 작년 말 기준으로 599개사다. 이 가운데 중국 베이징(北京) 1·2·3 공장 주변에만 1차 협력사 121개사와 2차 협력사 296개사가 포진해 있다. 이들 협력사는 한국 내 공장 증설을 중단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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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차 공장이 있는 미국 조지아주·앨라배마주 등 남동부에도 한국 기업들의 투자가 최근 활발하다. 올해에만 한국타이어·금호타이어·LG하우시스의 공장 기공·준공식이 열렸다. SK그룹 주력사인 SK이노베이션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빅과 손잡고 폴리에틸렌 신설 공장을 사우디에 짓기로 결정했다. 효성그룹은 베트남에 스판덱스 공장을 짓고 있다. LG전자 역시 3억달러(약 3090억원)를 들여 베트남에 가전(家電) 공장을 건설 중이다. 모두 외국 땅에서다.

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이 짓거나 새로 지을 예정인 전기차용 2차 전지(電池) 공장 부지도 모두 중국에 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국내 투자는 갈수록 줄고 있다. 2011년 131조8000억원이던 국내 설비 투자액은 지난해 130조1000억원으로 계속 쪼그라들고 있다.

그 결과 국내에서 고용 성장도 초라하다.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 포함)의 경우, 2010년 이후 총 고용 순증(純增) 인원이 국내에서는 2만1000여명(10만1649명→12만2760명)에 불과하다. 해외에서 11만여명(9만4802명→20만4486명)이 급증한 것과 5배 넘게 차이 난다. 같은 기간 현대차는 한국에서 6400여명(5만6461명→6만2893명)을 늘린 반면, 해외에서는 1만8000여명(2만3724명→4만1838명)을 새로 고용했다.

◇국내 투자 활성화 誘引 노력 절실

대기업들의 현금성 자산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마땅한 신성장 사업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상당수 대기업이 재무 안정성 중심의 관리 경영을 최우선시하면서 현금이 쌓이는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기업정보 사이트 '재벌닷컴'과 본지가 공동분석한 올 3월 말 기준 총매출액 상위 한국 100대 기업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92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작년 12월 말 이후 3개월 만에 7조8000억원이 늘어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내수(內需) 부흥을 통해 침체된 경기(景氣)를 살리려면 대기업의 국내 투자 확대가 필수적이지만 정부나 대기업 모두 이를 위한 진지한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기업들은 수년 전만 해도 "투자로 사회에 이바지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최근엔 그런 '입에 발린 말'조차 사라졌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과)는 "기업은 항상 최고의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 기회를 노린다"며 "대기업들이 국내에 활발하게 투자해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생길 수 있도록 정부가 다양한 인센티브를 내놓고, 국내 투자를 방해하는 규제를 과감하게 철폐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