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저성장(低成長)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경영권 승계 문제가 불거져 대기업들이 투자에 적극 나서기 힘든 측면이 있습니다."

한 5대 그룹 고위 임원은 "본업(本業)인 새 유망 사업 발굴이 국내외 경기 부진으로 힘든 데다 많은 대기업이 지배구조 개편과 사업 재편, 회장 부재(不在)에 따른 위기 상황 등으로 '관리'에 더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20일 말했다.

후계자의 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한 상속세는 물론 복잡하게 얽힌 지배구조와 사업 재편에도 막대한 현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많은 대기업이 기업 본연의 투자 활동보다 '오너십 유지'에 큰 비용 부담과 신경을 쏟고 있다는 얘기다.

삼성그룹의 경우 올 5월 초 이건희 회장의 입원 전부터 수조(兆)원이 들어가는 계열사 사업 재편을 추진 중이다.

올 들어서만 제일모직(옛 에버랜드)·삼성SDI 상장(上場) 결정, 삼성SDI와 제일모직 소재 부문과의 합병 등이 이뤄졌다.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를 겨냥한 포석이란 관측이 많다. 해당 기업인 삼성전자·삼성물산·제일모직 등의 현금 보유액은 일제히 늘었다. 삼성 관계자는 "사업 재편 등을 하려면 언제든 동원할 수 있는 현금이 수중에 많아야 한다"고 했다.

현대차그룹은 정몽구(76) 회장의 외아들인 정의선(44) 부회장에 대한 경영권 승계 작업이 거의 진행되지 않아 향후 지배구조 개편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현대차의 4번째 중국 현지 공장과 기아차의 4번째 해외 현지 공장 같은 대형 프로젝트와 별도로 정의선 부회장이 대주주인 현대글로비스와 그룹 지주사 격인 현대모비스 등과의 합병 등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현금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롯데그룹도 신격호(92) 총괄회장에서 신동빈(59) 롯데 회장과 신동주(60) 일본롯데 부회장으로 경영권 승계가 완성되지 않았다. 효성도 조석래(79) 회장의 장남인 조현준 사장과 3남 조현상 부사장으로의 경영권 승계를 앞두고 있다.

상당수 오너가 유고(有故) 상태인 것도 한 요인이다. 오너가 구속 수감 중인 SK그룹(최태원 회장)과 CJ그룹(이재현 회장) 측은 오너 부재(不在) 상태에서 국내외에서 대규모 투자 단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태양광·금융 등 신사업 투자에 적극적이었던 김승연 한화 회장은 집행유예로 풀려났으나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