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 밴드로서 지난 10년간 사업을 잘해온 L사장이 있다. 홈쇼핑에 팔릴만한 농산물의 상품기획, 발굴, 방송 등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무난하게 사업을 해 왔다. 그런 L사장이 어느 날 내게 전화를 했다. 해도 너무한다 싶어서 전화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참았는데 이제는 도를 넘는 것 같아서 구명을 해 달라는 것은 아니나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다고 했다. 내용인즉 이렇다.
L사장이 전남, 경남, 강원도 등지로 돌면서 괜찮은 농산품을 발굴해서 모 홈쇼핑에 납품을 시작한다. 그런대로 잘 팔린다. 서너 번 방송 매진이 나면 그 방송사의 계열사인 K라는 기업이 그 농산품 생산자에게 가서 자기들과 거래를 하는 게 좋겠다 한다. 생산자는 처음에는 상 도의상 그럴 수 없다며 버티기도 한다. 그렇지만 K회사가 방송사 계열사인 자기들과 거래를 하는 것이 더 좋은 게 아니냐하면서 계속 권유하면 대체로 그쪽으로 기울고 만다는 것이다. L사장이 1~2년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상품개발을 잘 해 놓으면 계속 물건을 가로채 가니 정말 죽을 맛이라고 했다.
이것이 한두 번일 때는 그런대로 참고 넘어갔다. 하지만 너무나 상습적으로 하니 내게까지 읍소하게 되었다고 했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공정위에 신고를 하자니 이 업계에서 사업을 하기 어려울 것 같고, 참으로 답답할 노릇이었다.
어디 이러한 물건 가로채기가 이 뿐이겠는가? 모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면서 사업을 잘하는 N사장이 있었다. 그 부품이 혁신적이어서 국내외 특허도 출원했다. 순익도 높은 아이템이어서 상당히 기대감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노심초사했었다. 이 아이템이 언제 어디에서 거래가 뒤틀릴까봐 걱정하는 것이었다. 아이템이 좋을수록 탐내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결국 일은 터졌다. 이 역시 그 대기업의 계열사가 비슷한 아이템을 납품하게 되었던 것이다. N사장 입장에서는 내 아이템이 도난당한 것이라고 하고, 그 계열사는 자기들도 그런 제품을 만들고 있었다라고 주장한다. 누구 말이 옳은가? 필자가 7년전 공정위 하도급개선과장을 할 때에도 이러한 문제는 자주 제기 되었다.
중소기업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 중에 하나가 힘들게 개발한 상품을 빼앗기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일들이 도처에 일어나고 있다. 심지어 저 아프리카 초원지대에도 발생하고 있다. 사자는 배가 고프면 하늘을 쳐다본다. 독수리가 어디에서 맴돌고 있는지를 먼저 파악한다. 그 밑에 틀림없이 누가 사냥해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곳에 어슬렁거리며 가서 빼앗아 먹는다. 힘들게 사냥할 필요가 없다. 사냥해서 성공할 확률이 20%에 불과하니 말이다.
비즈니스 정글 속에서 이런 일들이 자주 발생하면 어찌될까? 이런 거래상의 리스크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민심은 천심이다. 민원이 있는 곳에 틀림없이 정부개입이 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일들을 예방하고, 문제가 될 경우에 대비해서 대책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일이 터지고 난 뒤에는 이미 늦다. 사전에 알아야 한다.
첫째, 상품개발을 하기 전에 계약서를 써 두고 시작해야 한다. 내가 기여하는 부분이 무엇이고, 생산자의 권리와 의무에 대하여 분명하게 적시한 계약서를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상 도의에 맡기면 처음에는 좋으나 나중에는 사람 잃고 돈 잃는다. 돈을 많이 벌면 사람 마음이 변하기 마련이다. 벌면 더 많이 벌고 싶은 유혹이 오면 넘어간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계약서라는 책임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계약서 없이 대충하다가는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계약서 없이는 거래를 하지 않는 게 좋다. 현재도 문제가 된 거래의 80%가 계약서가 없거나 제대로 보지도 않고 사인을 해서 발생한다.
둘째, 이런 피해를 당하면 상대방에게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이것도 문서로 말해야 한다. 6하 원칙에 의하여 그런 식의 횡포를 부리면 안된다고 이메일을 보내든지, 내용증명을 보내든지, 팩스라도 보내든지 해서 근거를 남겨두어야 한다. 즉 호락호락 넘어가는 인상을 주면 안 된다. 한번 당하면 분명하게 부당함을 전달해야 한다. 요즘은 감시하는 곳이 워낙 많기 때문에 이런 문서를 받으면 움찔할 수밖에 없다. 위에서 사례로 든 홈쇼핑사는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를 것이다. 어찌 보면 실무자선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 사실 요즘은 대기업 계열사에서 본사도 모르게 횡포를 많이 부린다고 한다. 계열사 사장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러니 부당한 일이 있으면 어떤 형태로든지 회사측에 알려야 한다.
셋째, 횡포사례를 잘 정리해 두라. 언제 어디서 무슨 짓을 했는지 잘 정리해 두어야 한다. 적자생존이다. 즉, 적는 자가 생존한다. 횡포가 있을 때 울분을 토하고, 마음 졸이고, 술로서 풀 일이 아니다. 그런 경위나 사례를 꼼꼼하게 노트에 적든지, 이메일, 문자나 카톡이라도 보내서 상대방에게 한 번씩 호소라도 하고 그것을 잘 보관해두어야 한다. 정리를 잘하는 자에게는 두려움을 느낀다. 세월이 2~3년 흘렀을 때는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또 그 기억을 더듬어 적더라도 신빙성이 적다. 부당성을 판단할 때에도 몇 년 전의 누렇게 변한 업무노트나 잘 정리된 파일에 기록된 사례를 보면 공정위나 법원에서도 감동하지 않겠는가?
넷째, 이런 일을 당하는 업체가 있으면 서로 뭉쳐야 한다. 잘 드러나지 않지만 업계에서는 소문이 나기 마련이다. 억울한 업체끼리 정보공유가 되어 있으면 유사시에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간의 횡포 사례를 합쳐서 잘 정리하면 엄청난 힘이 될 수 있다. 공동으로 대응할 때 곧바로 사용할 수 있다. 사건이 표면화되고 난 뒤에 힘을 모으기에는 늦다. 공공의 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의 눈에 눈물 흘리게 하면 나중에 내 눈에는 피눈물 난다"고 했다. 민심은 천심이다. 민원이 있는 곳에는 틀림없이 메아리가 있다. 공정거래협약, 동반성장 등의 분위기로 인해서 대기업 본사는 개선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하지만 계열사들의 불공정거래, 중간급 재벌들의 불공정거래가 어떤지를 잘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