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에 연상되는 기억은 오래가기 마련입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나오는 "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 에브리 모닝 유 그리트 미" 하고 따라 불렀던 노래 때문에 에델바이스는 만년설 속에서 피는 꽃으로 우리에게 잘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국에서 자라는 솜다리와 비교되면서 에델바이스에 대한 오해가 생겨나고, 그 오해가 진실로 둔갑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인터넷에서 백과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되는 내용들은 누가 취합해서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무턱대고 취합한 내용을 내놓다 보니 오류가 심각한 편입니다.

솜다리(평강식물원에서 촬영)

몇 자 안 되는 에델바이스에 관한 내용도 엉터리에 가깝습니다. 에델바이스는 일단 우리나라에는 없는 식물입니다. 유럽의 알프스 지역을 원산지로 하는 고산식물이 지구 반대편인 우리나라의 높은 산에서 자생하는 것과 같을 확률은 매우 희박합니다. 에델바이스의 정확한 학명을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 검색하면 Leontopodium alpinum이라고 나옵니다. 이는 솜다리의 학명 Leontopodium coreanum과 다르고, 국내 자생 식물이 아니기에 재배식물이라고 나옵니다.

에델바이스가 국내에도 있다는 잘못된 인식은 ‘솜다리’라는 이름이 붙은 식물들을 ‘한국의 에델바이스’라고 부르기 시작한 데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표현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 표현을 접한 사람들이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익숙해진 에델바이스를 떠올리면서 ‘한국의’를 빼고 그대로 에델바이스로 받아들이게 된 것 같습니다.

산솜다리

솜다리라는 이름의 유래는 사실 미상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유추는 해볼 수 있습니다. 백과라는 이름을 단 인터넷 정보 중에는 ‘하얀 솜털이 나 있는 다리라는 뜻에서 솜다리가 되었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또한 어이가 없어 한숨이 나오는 정보입니다. 솜다리의 다리는 그 다리가 아닙니다. 식물에는 다리가 없습니다. 줄기라면 모를까! ‘솜’은 솜다리 전체에 달린 부숭한 솜털을 말하는 것일 테고요, ‘달리다’의 어간인 ‘달’에다가 명사형 접미사인 ‘이’가 붙어 ‘다리’로 변했을 겁니다. 즉, ‘솜털이 달리는 식물’이라는 정도의 뜻인 ‘솜+달+이’가 변해 솜다리가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솜다리에 대한 오해가 생기는 과정에는 또 다른 이유가 존재합니다. 예전에는 설악산에서 자라는 것을 금강산에서 자라는 솜다리와 같은 것으로 인식했습니다. 하지만 설악산에서 자라는 것이 금강산의 솜다리와 다르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산솜다리로 분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나라의 산악 관련 단체에서 로고로 사용하는 것도 모두 솜다리가 아니라 산솜다리입니다.

산솜다리의 꽃

솜다리는 금강산을 비롯해 평안북도와 함경도에서 자라는 한국특산식물로, 남한에는 분포하지 않는 종입니다. 솜다리에 비해 산솜다리는 포엽의 크기가 서로 달라 별 모양을 이루지 않고 꽃차례가 조밀하게 붙지 않는 점이 다른 점으로 구분합니다.

식물분류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에게는 어렵게 느껴질 내용일 겁니다. 그러니 ‘산’자를 뺀 채 그냥 솜다리라고 부르고, ‘솜다리=에델바이스’라는 등식을 머릿속에 지닌 분들은 설악산에 에델바이스가 자라는 줄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내국인이 에델바이스 또는 솜다리라고 해서 올려놓은 사진을 보면 대부분은 산솜다리입니다. 그래서 에델바이스와 솜다리가 다른 줄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한탄하는 글을 쓴 분이 그 글 속에서 솜다리와 산솜다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벼랑에서 자라는 산솜다리

산솜다리와 비슷한 종으로 ‘왜솜다리’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자꾸 ‘외솜다리’라고 잘못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꾸 잘못 쓴다는 건 오타가 아니라 애초에 잘못 알고 있다는 뜻일 겁니다. 왜솜다리의 왜(倭)는 일본을 뜻하는 말로, 왜솜다리는 일본에서 자라는 솜다리 종류라는 뜻의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외’자를 써서는 안 됩니다.

왜솜다리

머리 아픈 이야기를 한 가지만 더 할까요? 2012년 학회지에는 ‘설악솜다리’라는 신종이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발표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면 ‘산솜다리와 유사하나 포 아랫면에 털이 밀생하며, 포편의 모양과 길이가 거의 같으며, 내외포편의 위쪽에 선모가 거의 없는 점에 의해 구분된다.’입니다. 지나치게 현미경적인 분류에 저 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됩니다만 이런 경우 장소로 구분하면 편합니다. 설악솜다리의 경우 설악산의 안산이라는 곳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니 그곳의 것은 무조건 설악솜다리라고 보면 되는 것입니다.

설악솜다리

워낙 출중하신 박사님들의 공동 저작 논문이라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우나, 제 생각에 설악솜다리는 솜다리와 산솜다리의 중간형으로 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럴 경우 좀 더 면밀한 연구를 통해 솜다리부터 설악솜다리와 산솜다리의 변이가 연속적이라는 결과가 나온다면 모두 솜다리 하나로 통합될 수도 있습니다.

한라산 정상 주변에는 ‘한라솜다리’라고 하는 것이 자랍니다. 그것 역시 약간의 차이(꽃과 포엽이 엉성한 점 등등)를 들어 한국특산식물로 분류합니다. 출입금지구역에서 자라는 귀하신 몸이라 선택된 사람들(?)만이 들어가 알현할 수 있기에 저처럼 미천한 신분의 동호인은 아직 실물을 접할 기회가 없어서 사진으로만 보았습니다. 사진상으로만 보건대 작은 차이는 느껴지지만 큰 차이가 눈에 띄는 건 아닙니다. 어쨌든 솜다리건 산솜다리건 한라솜다리건 모두들 에델바이스하고는 다르지만 ‘한국의 에델바이스’라고 뭉뚱그려 표현하면 틀리지 않습니다.

설악산의 산솜다리

태풍 너구리가 북상하던 날, 바람꽃 군락을 보러 동호회 분들과 설악산 등정길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1박 예정이었던 중청대피소에 햇반 재고가 없다는 충격적인 안내문을 발견하고는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비는 계속 그칠 줄 몰랐습니다.
할 수 없이 일정을 바꾸어야 했는데, 이왕이면 바람꽃도 좀 있고 산솜다리도 볼 수 있는 곳으로 가자고 해서 참으로 오랜만에 바람꽃은 물론이고 산솜다리와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바람꽃

비록 끝물이었지만 온갖 수난으로 사라져가는 줄로만 알았던 산솜다리의 개체수가 적잖이 불어난 모습을 보고 마음이 얼마나 흡족했는지 모릅니다. 후대에도 계속 남아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보여주며 ‘사운드 오브 뮤직’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