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확장적인 재정·통화 정책으로 경기 부진에 대응하겠다고 밝히면서 통화 당국인 한국은행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최 후보자는 "통화정책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고유권한"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한은도 경기가 좋지 않다는데 동의할 것"이라며 미묘한 압박성 발언도 곁들였다.
오는 10일 열리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란 전망이 여전히 우세하다. 그러나 재정 당국이 강력한 경기부양 의지를 공식적으로 밝힌 만큼 분위기 변화가 감지될 수 있다는 관측이 높다. 일단 13개월간 이어진 '만장일치 동결'이 깨질지 관심이 집중된다. 금리 인하를 주장하는 소수 의견이 등장한다면 앞으로 금리 인하 기대감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은으로서는 이러한 압박이 달가울 리 없다. 그러나 지난해처럼 '기준금리 실기론' 비판을 받는 것보다는 경제팀의 일원으로서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바람직하지 않겠느냐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또 실제로 경기 회복세가 예상에 못 미치는 점은 한은의 금리 정상화(인상)에 제동을 거는 요소다.
◆ 최경환 "한은도 하방 리스크 확대에 동의하지 않겠나…재정-통화 확장적 대응"
최 후보자는 지난 8일 인사청문회에서 "한국은행의 바람직한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박명재 새누리당 의원의 질문에 대해 "경제 부처와 경제를 보는 인식의 간극은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좁혀나갈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또 "한은도 지금 경제 상황에 하방 리스크가 많이 생겼다는 데 동의를 하지 않겠나"라도 덧붙였다.
박 의원이 또 "경제 전문가들이 새 경제팀의 최우선 과제인 내수 진작을 위해 규제 개혁, 금리 인하, 추경 편성 등이 필요하다고 꼽았는데 동의하는가"라고 질문했을 때에도 짤막하나마 "대체로 동의한다"고 답변했다.
이날 13시간에 걸쳐 진행된 인사청문회 막판에는 좀 더 명확한 윤곽이 드러났다. 야당 의원들이 최 후보자에게 경제 철학을 구체적으로 밝혀달라는 질문이 거세지자 그는 "하방 리스크가 크다는 데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하기 때문에 재정, 통화 정책을 확장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동의하기 때문에'라는 전제를 붙이는 등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향후 확장적 재정과 통화 정책의 조합을 예고한 셈이다.
◆ 힘 받는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
한은은 이번주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14개월 연속 동결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금리는 인상 쪽이 타당하다(5월 금통위)"고 말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인하 쪽으로 급격한 변침을 시도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 후보자의 청문회 이후 한은이 연내 금리를 내릴 수 있다는 관측도 힘을 얻어가는 분위기다. 신동준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새로운 경제팀이 강력한 경기 활성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상징적으로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높아졌다"며 "오는 8월 한 차례 기준금리 인하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유진투자증권은 "이번 금통위에서 경기전망을 하향 조정하고, 하반기 경기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거둬들인다면 금리 인하 가능성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은 이번주 기준금리 결정과 함께 발표하는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4.0%에서 3.8%로 0.2%포인트가량 하향조정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번 금통위가 금리를 동결하더라도 '내용'에는 변화가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지난 13개월 동안 이어진 기준금리 '만장일치 동결'이 깨지면서 금리 인하 기대가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다. 윤여삼 대우증권 연구원은 "2분기 내수 부진과 구조적인 성장둔화 우려가 부각되면서 비둘기파 금통위원의 인하 소수의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실기론 비판 처하느니 동참하는 게 나아"
정부가 한은을 압박하는 모양새가 되고 있지만 한은 내부에서도 지난해처럼 금리를 실기했다는 비판을 답습하지 않으려면 경기 부양에 동참하는 게 낫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은은 김중수 전 총재 재임 시절인 지난해 5월 초까지만 해도 금리 인하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다가 갑자기 같은 달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전격 인하했다. 한 달 전인 4월 정부가 사상 두 번째 규모인 19조원의 추경예산을 편성한 이후였음에도 한은은 금리 인하를 보류, 재정 당국과 불필요한 엇박자를 낸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은 관계자는 "당시 외부 압력에 저항했지만, 결과적으로 버텨내지 못한데다, 기준금리를 제때 내리지도 못했다는 비판에 휩싸이게 됐다"며 "일단 정부가 강력한 경기 부양 의지를 보인 이상 한은이 이를 감안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미 금통위 내부에서의 금리 정상화 기류도 예전 같지 않다. 지난 6월 금통위 의사록에서 한 금통위원은 "지난 4월 경제전망에서 GDP갭이 올해 말 또는 내년에 0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전망의 불확실성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실질성장률에서 잠재성장률을 뺀 'GDP 갭'은 기준금리 조정의 중요한 변수로, 지금처럼 음(-)의 영역을 지속하는 것은 경제가 잠재 수준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경우 인상을 유보하거나 경기 부양에 나서는 근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