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사들이 1800억원 규모의 팬택 채권(매출채권)을 출자전환할 것인지를 놓고 '장고(長考)' 중이다. 약속한 기한이 지나서까지도 결단을 못 내리고 있다. 그만큼 팬택 출자전환 여부는 '뜨거운 감자'다.

1800억원. 적지 않은 돈이지만 팬택이 확실하게 살아날 것이라고 믿을 수만 있다면 도저히 출자전환하지 못할 규모는 아니다. 통신사들은 연간 영업이익이 수천억원대다. 업계 3위 LG유플러스도 지난해 5421억원의 흑자를 냈다. LG유플러스가 가진 팬택 채권은 200억원 정도다. SK텔레콤(017670)이 1000억원, 케이티가 600억원 정도다.

이통사들이 이토록 오래 고민하는 것은 팬택이 자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할 수는 없는 영업 환경이기 때문이다. 1800억원 때문에 한번 발목이 잡히면 손실폭이 더욱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 이통사들의 걱정이다.

◆ 팔수록 빚만 쌓여간다…아이러니한 팬택 폰

팬택의 독자 생존이 쉽지 않은 환경이라는 것은 팬택 매출채권의 '성질'을 이해하면 알 수 있다고 통신업계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팬택의 매출채권은 판매 장려금이다. 고객이 휴대폰을 살 때 지급되는 보조금이 이것이다. 그런데 팬택은 사실상 해외시장이 막혀 있고, 국내 통신사만 상대로 영업한다. 상대적으로 을(乙)의 위치인데다, 삼성, LG와 달리 '저가'라는 인식이 있어 더 많은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 오죽하면 일일이 대리점을 찾아다니며 별도로 보조금 정책을 펴기도 했다.

한 전문가는 "추가로 지불한 장려금이 통신사로부터 받아야 하는 대금을 오히려 뛰어넘은 것"이라며 "이런데도 각 통신사엔 엄청난 재고(약 70만대)가 쌓여 있다. 재고를 팔려면 또 다시 보조금을 대거 투입해야 하고, 고스란히 돌려받지 못하는 빚만 쌓인다. 이런 사정이기에 이동통신사가 출자전환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일부에서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보조금을 지급하지 못하게 하면서 팬택이 어려워졌다고 하는데, 이미 팬택은 보조금 없이는 휴대전화를 팔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자생은 결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통사 입장에서는 출자전환을 실시할 경우 추가로 빚이 늘어날 것이라는 점을 우려한다. 한번 주주가 되면 팬택을 계속 배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매출채권을 출자전환해봐야 다시 채권이 쌓이기 시작할 것"이라며 "차라리 1800억원 손해보는 것이 낫지, 계속 빚이 늘어나기만 한다면 한번 희생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 삼성·LG만 남으면 갑을 관계 뒤바뀔 수도

다만 문제는 팬택이 사라지면 국내 휴대폰 제조사는 삼성전자(005930), LG전자(066570)만 남게 된다는 점이다.

제조사는 국내에서 가장 큰 대기업 두곳만 남는 반면, 통신사는 알뜰폰시장이 성장하며 CJ헬로비전 등 강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팬택이 없어진다면 힘의 축이 한쪽으로 극명하게 치우칠 수 있다는 것이 이통사들의 우려 요인이다.

실제 통신사들이 점유율 경쟁을 펼칠 때면 팬택의 스마트폰이 꼭 불을 지폈다. 팬택의 주력 모델이 저가에 팔리기 시작하면 삼성, LG의 보급형 스마트폰이 따라오는 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통신사는 점유율을 높이며(대부분은 3사가 모두 뛰어들며 출혈만 하기 일쑤지만) 재미를 볼 수 있었다.

한 증권사 전문가는 "결국 이통사는 팬택을 살리는게 득인지, 없애는게 득인지 고민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만약 이통사의 출자전환이 실시되면 과거 팬택에 휴대폰 제조사업(스카이)를 매각했던 SK텔레콤은 뜻하지 않게 다시 제조사업에 관여하게 된다. 팬택의 현재 시가총액은 1162억원. SK텔레콤이 보유한 팬택 채권이 1000억원 가량이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는 주요주주로 떠오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