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소프트웨어 강화 전략이 장벽에 부딪히며 위기를 맞고 있다. 스마트폰·태블릿PC·스마트워치 등 기기를 구동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의 공급사인 구글이 소프트웨어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구글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제조사들이 안드로이드 OS를 폭넓게 수정해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 왔다. 하지만 최근 자동차·TV·스마트워치 등으로 안드로이드 OS 적용 폭을 넓히며 직접 통제에 나섰다. 제조사가 자기 색깔을 넣어 소프트웨어를 개조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구글의 변심…"SW 직접 통제한다"
구글은 지난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한 개발자 대회 '구글I/O'에서 자동차·스마트워치·TV 등에서 작동하는 안드로이드 OS를 선보였다. 구글의 자동차용 안드로이드 '안드로이드 오토' 담당 데이비드 버크 이사는 "자동차나 TV에서 작동하는 안드로이드는 제조사가 아니라 구글이 통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어떤 회사에서 만든 제품이라도 사용자가 "구글 소프트웨어구나"라고 느낄 수 있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구글의 계획은 스마트워치에서 이미 드러났다. 지난주 공개된 안드로이드 스마트워치 '기어 라이브'(삼성전자)와 'G워치'(LG전자)는 소프트웨어가 완전히 동일하다. 시계 숫자판의 디자인만 약간 차이가 난다. 구글이 공급한 것을 그대로 넣었기 때문에 두 제품의 소프트웨어 사용 감각은 동일하다. 겉모습만 다를 뿐이다.
구글의 과거 소프트웨어 전략은 '반제품'을 공급하는 것이었다. 핵심 부분을 공급하되, 디자인과 부가 기능은 각 제조사가 마음껏 바꿀 수 있게 했다. 삼성전자는 구글이 제공한 반제품을 적극적으로 개조했다. 다른 제조사와 차별화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넣고, 이를 마케팅 수단으로 삼아왔다. 때로는 구글이 제공하는 기능과 겹치는 것도 자체적으로 만들어 넣었다. 다국어 동시 번역 앱 'S번역기'나 음성 비서 앱 'S보이스' 등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구글이 소프트웨어 통제를 강화함에 따라, 자동차·스마트워치·TV 등 새로운 스마트 기기에서는 그동안 삼성전자가 추구해온 소프트웨어 차별화 전략은 난관에 봉착하게 될 전망이다.
◇구글 횡포 심해지지만 대응책 없어
삼성전자는 이미 구글의 요구에 따라 스마트폰에서 자체 소프트웨어를 덜어낸 바 있다. '삼성 허브'란 이름으로 앱·동영상·음악 등을 직접 판매하는 전략을 추진해 왔지만, 올 초부터 사업을 축소했다. 구글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구글의 횡포는 점점 심해지고 있지만 삼성전자는 대응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수년째 인텔과 손잡고 개발 중인 스마트폰 OS '타이젠'은 아직 제품을 출시하지도 못했다.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타이젠 스마트폰을 만들더라도 소프트웨어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는 "삼성전자는 '구글 지도'(지도 및 길 안내), '지메일'(이메일), '구글 드라이브'(클라우드 파일 저장 및 문서 작성) 등 구글이 제공하는 핵심 서비스를 대체할 능력이 없다"며 "돈을 더 많이 쓴다 해도 하드웨어 중심의 삼성전자 조직 문화 속에서 이런 서비스를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조직 내부 갈등설까지 제기되고 있다. 2011년 이후로 사내에서 소프트웨어 부문이 급성장하면서 유사한 기능을 가진 조직이 여럿 생겼고, 이 조직들이 협업하지 않고 상호 견제에 열을 올린다는 것이다.
예컨대 국내에서 콘텐츠 서비스와 소프트웨어 개발을 담당하는 미디어솔루션센터(MSC)와 미국에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오픈이노베이션센터(OIC)는 거의 협업을 하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MSC는 올 4월 '밀크'란 음악 서비스를 출시했는데, OIC가 인수한 회사의 기술 대신 외부 업체 기술을 사용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소프트웨어 개발 부문의 한 직원은 "소프트웨어 개발 부서끼리 견제가 점점 더 심해지는 분위기"라며 "다른 부서에서 뭘 하는지 몰라 서로 비슷한 것을 만드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