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팔 앞으로, 뛰어, 내려가, 멀리 피해."
1일 서울 공항동 대한항공(003490)본사 객실훈련원 1층에 들어서자 30여명의 승무원들이 목청껏 외쳤다. 실제 비상 상황을 대비해 기내 탈출 훈련을 하고 있었다. 훈련원 곳곳에는 A380 기종과 보잉 747-400 기종 출입구 모양의 훈련 시설이 있었다. 비상 착륙 상황을 가정해 문을 여닫는 연습부터 미끄럼틀 모양의 슬라이드를 이용해 탈출하는 훈련이 한창이었다.
지하 2층은 실내 수영장으로 이뤄졌다. 비행기가 바다와 강에 착수했을 때의 상황을 연습하기 위해서다. 아파트 2층 높이의 대피용 미끄럼틀인 슬라이드래프트는 승객을 대피시키는 통로로 이용된다. 슬라이드래프트에 공기를 주입하면 5~8초 뒤에 펼쳐진다. 객실의 모든 인원이 탈출하면 비행기와 슬라이드래프트를 분리해 보트로 활용한다. 승무원과 승객은 보트에 올라 타 팔로 노를 저어 육지로 대피하면 된다. 이 밖에도 심폐소생술과 응급 환자 대응 요령, 화재진압 방법 등 운항 중 벌어질 수 있는 각종 비상 상황에 맞춘 훈련이 진행됐다.
신입 승무원들은 한 달간 안전 훈련을 받게 된다. 평가를 통해 자격 요건을 넘지 못할 경우 회사는 승무원 자격을 박탈한다. 기성 승무원들은 1년에 한 번 반드시 정기 안전 교육을 받아야 한다. 기성 승무원들도 이수 교육 시간을 채우지 못하면 승무원 자격이 정지된다. 그만큼 승무원들에게 안전 훈련은 승무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문용주 객실훈련원 상무는 "평생 한 번 일어날지 모르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가족과 친구를 대피시키겠다는 각오로 훈련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1999년 런던사고를 끝으로 15년간 무사고 항공사란 기록을 세웠다. 1997년 괌사고를 시작해 잇달아 터진 5건의 대형사고를 계기로 회사 안전 관련 규정을 전면 수정했다.
미국 델타 항공사로부터 항공안전 관련 컨설팅을 받아 비행감시시스템을 도입했다. 승무원 평가를 외국인에게만 맡기는 등 안전 규정과 훈련 프로그램을 개선했다. 2000년에는 부사장급의 외국인 안전 담당 임원을 영입해 안전 업무에 대한 독립·전문성을 강화했다. 2009년 10월에는 웹 기반의 정보기술(IT) 시스템 '세이프넷'을 개발해 안전 업무를 통합 관리 방식으로 전환했다. 기존에는 부문별로 나눠 관리했다.
대한항공의 안전·보안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안전보안실은 80여명의 전문 인력으로 구성됐다. 안전보안실에서는 항공기의 각종 위험요소를 점검하는 예방안전 프로그램인 비행자료분석(FOQA)을 운영하고 있다. 자체 개발한 3차원 비행 영상시스템을 이용해 항공기가 표준 절차에 따라 운항하는지 모니터링 한다. 항공기 예방 정비와 연료 관리에도 활용되고 있다.
안전보안실이 개발한 각종 시스템은 본사 A동 8층에 있는 통제센터에서 운영한다. '잠들지 않는 지상의 조종실'로 불리는 통제센터는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간다. 운항과 탑재, 기상 등 항공기 운항 관련 전문가 140여명이 항공기의 운항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점검한다.
통제센터에 들어서면 오른쪽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스크린이 눈에 들어온다. 이륙한 비행기가 착륙할 때까지 운항 노선이 점선으로 표시된다. 기상 데이터와 각종 운항 정보를 이용해 비행기가 안전 운항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점검한다. 착륙 시 현지 공항 상황을 확인해 관련 정보를 기장에게 알린다.
최초 운항 계획과 차이가 발생할 경우 자동 경보를 발령해 안전 운항에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기상 악화 등 정상적인 운행이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각 분야 전문가들은 최적의 운항 방법을 결정한다. 항공기 지연과 결항 등 운항 여부를 결정하고 항공 일정을 조정하는 것도 통제센터의 역할이다.
대한항공은 항공 운항뿐 아니라 정비 분야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연간 총 투자 비용 11조원 가운데 정비 분야에만 1조원을 투입하고 있다. 대한항공 측은 정비 능력을 향상한 결과, 세계 항공사 평균 운항정시율(98.91%)보다 높은 99.86%의 운항정시율을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운항정시율은 항공기 장비 결함에 따른 지연·결항 없이 계획된 시간대로 항공기를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국제지표다.
항공기 정비가 이뤄지는 본사 정비 격납고에는 보잉 737-900 기종을 점검하고 있었다. 2만2000시간을 운행한 이 기종은 앞으로 15일에 걸쳐 정기 점검을 받게 된다. 기내 모든 좌석을 들어내 각종 결함 요소를 찾아 보강할 방침이다.
축구 경기장 2개 크기의 격납고에는 대형 항공기 3대(B747 2대와 A330 1대)를 수용할 수 있다. 대한항공은 비행 전·후 점검과 운항 정비, 1개월~6년 주기의 정시점검, 항공기 개조·페인팅 등을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3400여명의 정비 인력이 김포·인천·부산 등 5개의 정비 격납고에서 항공기 상태를 관리·점검한다.
대한항공은 안전 부문에 매년 1000억원 이상의 예산을 들이고 있다. 항공기 운항과 관련한 전 부문에 걸쳐 직원 교육을 강화하고 최신 장비 구입, 안전 관련 해외 세미나 참석 등에 관련 예산을 사용한다. 지난해에는 예년 수준보다 높은 1300억원을 투입해 안전 관련 시설을 강화했다.
지창훈 대한항공 사장은 "대한항공은 1990년대 이후 승무원들의 안전 의식을 바꾸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며 "기장이 최적의 상황을 판단해 안전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연구 개발과 투자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