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제철의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으로 떨어지면서 '트리거(trigger·방아쇠)' 조항에 따라 채권자 요구 시 조기 상환해야 하는 차입금이 약 9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동부제철의 전체 금융권 차입규모 약 2조3000억원의 약 40%다. 동부제철 외에 동부건설, 동부CNI 등은 트리거 조항이 있는 차입금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동부제철의 차입금 중 신디케이트론(2개 이상의 금융사가 차관단을 형성해 중장기 자금을 융자하는 집단대출) 7300억원, 자산담보부 기업어음(ABCP) 1400억원 등 총 8700억원은 트리거 조항이 설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트리거 조항이란 동부제철의 신용등급이 일정 등급 이하로 떨어지면 채권자가 만기 이전이라도 돈을 상환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한국기업평가(한기평)는 동부그룹의 구조조정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날 동부제철과 동부CNI, 동부건설(005960), 동부메탈 등 동부그룹 계열사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투기등급으로 떨어뜨렸다. 또 한국신용평가도 이날 동부CNI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BBB―'에서 'BB'로 낮추고 'BBB―'이던 동부메탈과 동부건설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각각 'BB'와 'BB+'로 낮췄다.
동부제철의 신디케이트론은 대부분 1금융권이라 바로 조기상환을 요청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금융당국은 보고 있다. 그러나 ABCP는 기관 투자자와 일부 개인들이 들고 있어 조기상환을 요구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신디케이트론은 대부분 은행들이라 (동부그룹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산업은행과 협조가 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ABCP는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ABCP 투자자들이 조기상환을 요구하면 동부제철의 자금난이 더 심해질 수 있다.
한편 동부제철 회사채 차환발행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신용보증기금은 산업은행이나 동부그룹이 구조조정 차질에 따른 불확실성을 해소해줄 방안을 내놓지 않으면 차환발행이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동부제철은 다음달 7일 회사채 700억원 만기가 돌아오는데 차환발행이 이뤄져야 채권단 공동관리인 자율협약을 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신보는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당진발전 패키지 매각이 무산되면서 동부그룹 재무구조개선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차환발행 지원에 신중한 모습이다.
차환발행이 이뤄지지 않으면 동부그룹은 자율협약이 아닌 워크아웃(재무구조 개선작업)이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해야 한다. 산업은행과 신보 등은 당초 이날 동부제철 회사채 차환발행 지원 여부를 심사할 계획이었으나 다음주로 연기했다. 동부제철 회사채를 차환발행하려면 다음달 3일이나 4일까지는 차환발행에 대한 결론이 나야 한다. 신보 관계자는 "산업은행이나 동부가 추가적인 매각이나 구조조정 방안을 수립해 오면 (지원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