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속에는 잔인한 처형의 기록도 있습니다. 정쟁의 상대방을 처참하게 죽였고, 종교나 철학의 신념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도 목을 자르고 팔다리를 찢어 죽이기도 했습니다.
서울에는 그 참혹하면서도 성스러운 현장이 곳곳에 있습니다.
이번 서울여행은 천주교 순교 성지와 사육신묘를 찾아가는 '순교성지여행' 입니다. 마침 이 코스는 서울의 시장발달사와도 연결되어 부가적인 즐거움이 있습니다.

코스: 종각~서울시의회~선원전터~서소문공원 순교성지~약현성당~청파동 배다리터~용산 당고개 순교성지~새남터 순교성지~한강대교~사육신묘~노량진 수산시장

천주교 순교성지 묵상길 코스도. 약 14킬로미터 정도되는 긴 거리로 4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종각~정동 구러시아 공사관터~서소문 공원 순교성지~약현성당

종각을 출발하여 청계천 방향으로 갑니다. 청계천과 만나는 광교를 건너지 않고 청계천 상류쪽으로 걸어가 광교와 이웃한 다리인 광통교를 건넙니다. 광통교는 원래 광교 자리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청계천 복원공사를 하면서 광통교 보존문제가 대두되어 현 위치로 옮기고, 교통량이 많은 원래 자리에는 지금의 광교를 새로 놓았습니다.

광통교. 청계천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청계천 복원 공사 때 발견된 광통교 옛 석재가 사용되었다.

교각에 쓰인 석재는 조선 태조 임금의 부인이자 조선 첫 왕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묘인 정릉에 있었던 석물입니다. 현재 다리 난간에 있는 일부 석재가 정릉에 있었던 것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광통교 아래 교각에 있는 석물을 못 보신 분들은 꼭 한번 다리 아래로 내려가 볼 것을 권합니다.

광통교 교각 아래 석축. 덕수궁 근처에 있던 정릉의 석물을 가져와 다리 공사에 썼다.

광통교 건너 한국관광공사 옆길로 다동 무교동으로 접어듭니다. 서울 중심부에 있지만 아직 60~80년대 추억과 기억을 간직한 건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교동 골목길을 빠져나와 서울시청 뒷길을 따라 가다 한국언론재단 앞 지하도를 건넙니다. 지하도에서 나오면 서울시의회 건물이 보입니다. 서울시 등록문화재 입니다.

서울시의회 건물. 일제시대 부민관으로 지어졌다. 서울시 등록문화재다

서울시의회 앞길로 성공회서울교구, 조선일보사 지나 동화면세점 뒷길로 해서 덕수궁의 선원전터로 갑니다. 이 일대 언덕을 황토현이라고 불렀습니다.
선원전은 덕수궁의 부속건물로 선대 임금들의 초상화인 어진을 모셨던 곳입니다. 이곳에는 경기여고가 강남으로 이사가기 전까지 있었는데, 지금은 선원전 복원을 위해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정면에 보이는 축대 위 공간이 선원전터다. 지금은 문화재 조사 작업을 하고 있다.

선원전터를 지나 200여미터 가면 높은 축대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이곳으로 가야 옛 러시아 공사관터가 있습니다. 옛 러시아 공사관터에는 공사관 본관 건물은 파괴되어 없고, 3층의 전망탑만 있습니다. 이 전망탑도 서울시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옛 러시아 공사관터를 지나 정동으로 나와 서대문 방향으로 길을 잡습니다. 예전에 서대문이 있었던 정동사거리에서 농협 본사 건물 앞으로 간 다음 이화여고 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 갑니다.
이 길은 금화터널 인근에서 발원하여 적십자병원 앞을 지나 이화여고 앞, 서소문공원, 청파동, 새남터로 흘러 한강으로 가는 무악천 물길을 복개한 길입니다. 아직도 이 물길은 도로 아래에서 살아 있습니다. 우리는 이 물길을 따라 갈 것입니다.
이 물길을 따라 가다 경찰청 앞 횡단보도를 건너 서대문 아파트 앞으로 갑니다. 옛 물길 위에 만들어진 길을 따라 걸으며 옛 사람들도 이 물길 둑을 따라 걸었을 것을 상상하면 긴 역사의 한 점에 서 있는 자신을 느끼게 됩니다.

서대문 아파트 앞 도로. 이 길은 무학천이 흐르던 물길을 복개하면 만든 것이어서 자연스럽게 휘어져 있다.

서소문 철길 건널목을 지나 서소문공원으로 들어갑니다. 서소문 공원은 신유박해(1801년) 때 정약종, 기해박해(1839년) 때 정약종의 아들 정하상 등 많은 천주교인들이 참수를 당한 곳으로 천주교에서는 순교성지로 여기고 있습니다. 서소문 밖 서소문 공원일대는 무학동천이 굽이쳐 흘러 이 주변에 넓은 모래밭이 형성되어 있었고, 남대문 밖 칠패시장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라 죄인들의 처형장으로 자주 이용되었습니다.

서소문공원 순교성지 기념탑. 여러 천주교 성지에 있는 순교기념탑은 참수되기 전 목에 찼던 칼을 상징으로 쓰고 있다.

또 서소문공원 일대는 일제시대인 1939년 경성중앙도매시장이 만들어져 서울주변 물류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해방이후 서울 중앙도매시장이 되었다가 수산부문이 1971년 노량진으로 이전하여 현재의 노량진수산시장이 되었습니다.
서소문공원을 빠져 나와 중림동 삼거리에서 약현성당으로 갑니다. 약현성당은 아담한 규모와 성당 내부의 안온한 분위기 때문에 드라마 촬영지로도 자주 이용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때 남대문을 나와 마포로 가려면 만리재(만리동고개)를 넘어 가는 것이 가장 짧은 길입니다. 그러나 만리재는 고개가 높아 지금의 충정로 방향에서 마포로 가는 아현(애오개)으로 많이 오갔습니다. 남대문에서 아현으로 가는 중간에 있는 고개가 약현 입니다. 약현 위에 세워진 약현성당은 조선말 남대문이나 서소문을 통해 도성을 나온 사람들의 눈 앞에 확 띄었을 것입니다.

약현성당

약현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벽돌식 성당으로 명동성당 보다 앞선 1893년에 준공되었습니다. 약현성당 주변에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기 전에는 약현성당에서 서소문 순교성지와 남대문이 바로 보였을 것입니다.

약현성당~청파로~청파동 배다리터~용산 당고개 순교성지~새남터 순교성지

약현성당에서 나와서는 다시 정면의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이 좋습니다. 삼거리 안전지대에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 기념탑이 있습니다. 김정호 선생이 약현에 살며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중림동 삼거리 횡단보도 안전지대에 있는 고산자 김정호 기념비.

횡단보도를 건넌 후 서울역 서부역 방면으로 길을 잡습니다. 머리 위로 만리동 고개와 남대문 회현동을 이어주는 서울역 고가도로가 지납니다. 서부역 앞 청파로 횡단보도를 건너 길을 따라 용산방향으로 갑니다. 청파로는 무악천을 복개한 길입니다. 얼마 안 가 빨간색 담장에 빨간색 건물이 들어차 있는 국립극단 연습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국립극장은 남산에 있지만 극단연습소는 이곳 서계동에 있습니다.

국립극단 연습소. 1950년 국립극단 창단 때부터 배우로 활동한 백성희 장민호의 이름을 붙인 소극장도 있다.

청파로를 계속 따라 가면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본부 건물 앞 청파로 삼거리에서 배다리터 표지석을 볼 수 있습니다. 청파로 배다리는 조선시대 무악천을 가로질러 놓여 있던 다리였습니다. 만초천이라 불렸던 무학천 하류는 잦은 범람으로 고정식 다리를 놓을 수 없어 배를 연결해 다리로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배다리터를 지나 남영역 사거리에서 길을 건너 오른쪽 원효로로 방향을 잡습니다. 곧이어 옛 용산구청이 있던 사거리를 건너면 철로를 옛 경의선 철도를 지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철로를 걷어내고 공원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찻길이 아닌 공원으로 만드는 것이 다행입니다.

당고개 순교성지. 한옥건물은 기념품을 파는 곳이고, 기념관은 언덕 지하에 있다.

용산 당고개 순교성지는 앞에 보이는 e편한세상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가야 갈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문배산이라는 작은 산이 있었습니다. 문배산의 작은 고개에 무당집이 있어 당고개라 붙여진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기해박해(1839년) 때 김대건 신부에 이어 우리나라 두 번째 신부가 된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 이성례와 후에 '성인'으로 시성된 9명이 순교하였습니다.
당고개 순교성지 기념관은 언덕에 반지하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싼 고층 아파트와 대비되어 겸손한 성자의 모습으로 비쳐졌습니다.

당고개 순교성지 기념관 입구.

당고개 순교성지의 정문 쪽으로 나오면 용산 전자상가 길로 접어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전자상가 입니다. 용산전자상가는 1987년 서울시의 도시계획에 따라 청계천에 몰려있던 전자용품 판매점들을 이전하면서 형성되었습니다. 서소문공원에 있던 중앙도매시장의 청과부가 옮겨와 용산청과시장이 있던 용산역 서쪽 지역에 일본 도쿄의 아키하바라와 같은 전자제품 집적단지를 조성했던 것입니다.

전자상가를 벗어나 청파로를 따라 계속가면 길이 왼쪽으로 휘어지며 이촌로가 시작됩니다. 이촌로를 따라 가면 몇년전부터 문제가 되고 있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 부지가 보입니다. 철길을 건너가는 고가도로 전 한강쪽에 새남터 순교성지가 있습니다.

새남터 순교성지에 세워진 성당. 기차를 타고 용산을 지날 때 멀리서도 보이는 건물이다.

조선시대에 용산역 주변 새남터 지역은 만초천이 한강과 만나는 곳으로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새남터는 군인들의 훈련장으로도 쓰였고, 중죄인을 처형하는 장소이기도 하였습니다. 1456년 성삼문 등 사육신이 처형된 장소이고, 1801년 기해박해 때 외국인 신부 등 많은 천주교인들이 참수를 당한 곳이기도 합니다. 새남터에서 처형된 사육신의 시신은 맞은편 한강 건너 언덕 위로 모셔졌습니다. 새남터 순교성지에 있는 새남터성당 왼쪽 지하에 순교기념관이 있습니다.

새남터 순교성지~한강대교~사육신묘~노량진 수산시장

새남터 순교성지에서 한강쪽으로 가면 강변북로를 건너가는 육교를 통해 한강으로 접어들 수 있습니다. 이 주변에는 예전에 번성했던 용산 나루터가 있었습니다. 작은 배들은 만초천 무악천을 거슬러 서대문까지 오갔습니다.

새남터 순교성지에서 한강으로 접어드는 곳에서 본 한강철교. 한강에 최초로 세워진 다리다.

한강산책로를 따라 한강대교 방향으로 가면 다리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한강대교는 한강에 처음 만들어진 인도교 입니다. 그래서 제1 한강교라고도 불렸습니다. 6.25 전쟁 때 이승만 정권은 북한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다리를 폭파해 수많은 서울시민들이 피란을 가지 못했습니다. 가까이 보이는 한강철교는 한강에 최초로 만들어진 다리입니다.

한강대교 중간에 있는 노들섬. 시민들에게 텃밭으로 빌려주고 있다.

한강대교 중간에 있는 섬이 노들섬입니다. 시민들에게 주말농장으로 빌려주고 있어 작은 밭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한강대교 남쪽 끝 삼거리에서 길 건너편을 보면 노량진 교회 앞으로 정자가 보입니다. 용양봉저정 입니다. 정조 임금이 수원 화성으로 행차할 때 전국에서 소집된 배로 다리를 만들어 한강을 건넌 다음 쉬었던 정자 입니다.

소나무 사이로 용양봉저정이 보인다. 뒤쪽으로 보이는 종탑은 노량진교회 건물이다.

노량진 방향으로 조금 더 가면 오른쪽 언덕 위로 사육신 공원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강 건너 새남터에서 처형된 성삼문 등의 시신을 몰래 수습해 이곳에 묘를 만들었습니다. 대역죄인으로 처형되었기에 처음에는 묘비도 만들지 못했고, 후에도 성만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도 묘비에는 '성씨지묘(成氏之墓)' 와 같이 적혀 있습니다.

사육신묘. 대역죄인이라 시신을 몰래 수습해 묘비에 이름도 못밝히고 무덤을 썼다.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마저 기꺼이 던진 이들의 절개를 기리며 그 이름을 다시 한번 불러보고 싶습니다.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입니다. 그러나 사육신 묘에는 7기의 묘가 있습니다. 당시 함께 처형된 사람인 김문기의 묘도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사칠신이라고 해야겠지요.
사칠신을 모시는 사당인 의절사의 향로에 향불을 피우고 경건한 마음으로 묵념을 하고 다시 길을 나섭니다.

사육신 공원 입구. 실제로는 7개의 묘가 있다.

이제 이번 여행의 끝인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향합니다. 수산시장은 노량진역 입구 육교를 이용해 철길을 건너면 있습니다. 노량진 수산시장은 서소문공원에 있던 중앙도매시장 수산부가 1971년에 이곳으로 이전해 만들어졌습니다.

노량진 수산시장 내부. 활력 넘치고 볼거리가 많아 관광객도 많이 찾는 곳이다.

일반인들이 자주 찾는 노량진 수산시장은 소매시장 입니다. 도매시장이 옆에 있기에 해산물이 싸고 싱싱합니다. 시장다운 활기가 넘쳐 해산물 구매 목적 없이 그냥 관광으로 오는 내외국인들도 많습니다. 이곳에서는 가게에서 해산물을 산 다음 식당으로 들고가 먹을 수 있습니다. 긴 여행의 피로를 싱싱한 회를 먹으며 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