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3대 신용평가사들이 그 동안 평가대상 기업들을 상대로 신평업무를 수주하고 높은 등급을 유지시켜주는 이른바 '등급장사'를 해 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내 신용평가 시장과 기업들의 자금조달 방법이 큰 변화를 맞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 동안 신용등급을 낮추는데 인색했던 신평사들이 앞으로 기업들의 신용등급을 더욱 까다롭게 평가해 등급이 내려가는 기업들이 크게 증가하고, 등급이 내려간 기업들은 공모 회사채 대신 다른 자금조달 방법을 모색하면서 사모사채나 유동화증권 발행 등이 늘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다.

1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한국기업평가와 한국신용평가, 나이스신용평가 등 3대 신평사들은 그 동안 평가대상 기업들의 요청을 받고 등급 하향 조정을 미루거나, 높은 신용등급을 미끼로 업무를 수주하는 등 자본시장법 위반 행위를 저질러 온 것으로 드러났다.

해외 평가사들과 달리 국내 신평사들이 평가대상 기업들의 눈치를 보느라 정확한 신용등급 평가를 내리지 않고 있다는 지적은 이번부터 여러 차례 제기돼 왔다. 특히 지난해 STX그룹과 웅진그룹, 동양그룹 등 재무구조가 악화된 대기업들이 잇따라 쓰러지는 동안 신평사들은 이들 부실 대기업의 상황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아 투자자들에게 혼란을 미쳤다는 비난이 제기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금감원의 조치로 신평사들의 신용등급 평가가 더욱 까다롭고 세밀하게 이뤄지면서 앞으로 신용등급이 하락하는 기업들이 크게 늘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금감원 감사가 진행된 이후 최근 신평사들은 이전과 달리 기업들의 신용등급 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11일에는 한기평이 20년간 최고 등급인 'AAA'를 유지하던 포스코의 등급을 'AA+'로 한 단계 낮췄고, 이어 13일에는 한신평과 나이스가 KT(030200)의 등급전망을 '부정적'으로 조정했다. 17일에는 나이스가 대한항공(003490)의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강등하기도 했다.

김세용 신영증권 연구원은 "등급장사 파문으로 신용평가사들에 대한 '신용'도 크게 떨어진 상황"이라며 "신평사들이 떨어진 대외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그 동안 후하게 평가했던 기업들의 신용을 더욱 면밀히 체크하면서 올 하반기에는 등급 하향조정 기업들의 수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상훈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등급이 하락하는 기업들이 늘수록 앞으로 기업들의 자금조달에서 공모 회사채 대신 사모사채나 자산유동화증권(ABS), 신종자본증권 등 대체수단이 차지하는 비중이 계속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용등급이 하락할 경우 채권 발행금리가 상승해 자금조달 과정에서 기업들의 비용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웅진그룹과 STX그룹, 동양그룹 등이 잇따라 경영난을 겪고 조선과 철강 등의 업황이 악화되면서 이러한 대체수단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사모사채의 경우 지난 2012년 회사채 발행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5%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12.3%로 크게 늘어나기도 했다.

김 연구원은 "신용등급이 내려가는 기업들이 늘고, 대체 자금조달 방법도 다양해지는 것은 국내 회사채 시장이 정상화되고 있는 단계로 봐야 한다"며 "이 때문에 회사채 시장 자체가 위축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