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 엔진과 4륜구동, 롱 휠베이스(차체를 늘여 실내 공간을 넓힌 차) 모델 등 과거에는 자동차 시장에서 크게 주목 받지 못하던 사양이 최근 대세로 떠오르며, 최고급 세단 시장에까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각 사의 최고급 세단 중 최다 판매 모델을 이런 특징을 가진 차들이 휩쓸고 있는 것.

기존 최고급 세단에서는 가솔린 엔진에 후륜구동 방식을 갖추는 것이 일종의 공식이었다. 이런 차의 오너들은 주로 운전기사를 두고 뒷좌석에 타는 쇼퍼드리븐이고, 정숙성과 승차감을 중요한 요소로 고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가솔린 엔진과 후륜구동을 장착한 모델의 판매 비중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자동차 회사들은 변화한 소비자의 취향에 대응하기 위해 상품 구성까지 바꾸고 있다.

아우디의 최고급 세단인 A8 중 가장 많이 팔린 '3.0 TDI 콰트로 LWB'.

◆ 가솔린시대 가고 디젤이 대세, "높은 연비에 정숙성도 안 뒤져…"

17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가솔린 엔진이 휩쓸던 최고급 세단 시장은 최근 디젤 엔진이 우세한 상황이 됐다. 과거 디젤 엔진은 진동이 커서 승차감이 좋지 않는데다 소음이 크다는 이유로 최고급 세단에서만큼은 외면을 받았다. 최근에는 기술 발전으로 이런 단점이 상당 부분 개선된데다 오히려 연비와 가속력이 좋다는 점이 장점으로 부각되며 최고급 세단에 넣어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우디의 최고급 세단인 A8의 판매량 변화를 보면 이런 추세를 쉽게 알 수 있다. A8은 지난 2011년만해도 가솔린 모델이 1231대 팔리는 동안 디젤 모델은 186대밖에 팔리질 않았다. 가솔린 비중이 87%에 달했다. 하지만 올 들어 5월까지 판매된 573대의 A8 중 디젤 모델은 478대로 83%를 차지했다. 3년만에 전세가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다른 회사의 추세도 변한 건 마찬가지다.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 S350도 2011년에는 가솔린 모델 비중이 73%에 달했다. 하지만 2013년부터 디젤 모델이 더 많이 팔리기 시작하더니, 지난해 말 출시한 신형 S350에서는 아예 가솔린 모델이 빠졌다. 벤츠 관계자는 "S350의 경우 본사에서 가솔린 모델을 내놓지 않고 있다"면서 "디젤 모델이 훨씬 많이 팔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BMW의 7시리즈 역시 2011년 34%이던 디젤 모델 비중은 올해 67%로 높아졌다.

◆ "4륜구동 인기 국산 고급차까지 번져"

S 350 블루텍 4매틱 LWB.

그런가 하면 후륜구동이 지배하던 트렌드도 최근 4륜구동 위주로 바뀌었다. 눈이 많이 오는 우리나라 여건상 후륜구동은 겨울에 불편한데다, 4륜구동이 이제는 승차감 면에서도 뒤쳐지지 않으면서 주행 안정감은 오히려 좋다는 점이 알려지기 시작한 덕분이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S500은 2011년만 해도 후륜구동 비중이 63%에 달했다. 하지만 올 들어 이런 현상은 처음으로 역전되기 시작했다. 5월까지 4륜구동 판매량은 493대로 후륜구동(454대)을 앞지르고 있다. BMW도 4륜구동의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다. BMW 7시리즈의 4륜구동 비중은 지난 2011년 4%에서 올 들어 54%로 늘며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아우디는 아예 A8의 후륜구동 모델을 팔지 않는다.

4륜구동이 잘 팔리는 것은 국산차 시장으로도 번지고 있다. 쌍용자동차의 체어맨을 보면 지난 2011년 56%였던 4륜구동 비중이 올해 5월에는 62%까지 높아졌다. 지난해 말 출시된 현대차 제네시스는 4륜구동을 내놓자마자 잘 된 경우다. 지난달까지 1만8000여대가 판매된 제네시스의 4륜구동 비중은 64%에 이른다. 현대차 관계자는 "4륜구동을 주문하면 더 오래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향후 에쿠스의 후속 모델에도 적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 숏보다는 롱, "이왕이면 조금 더 내고 큰 차 사자"

여기에 또 하나 주목할 변화는 휠베이스(앞·뒤 바퀴간 거리)를 늘인 롱 휠베이스 모델의 인기다. 뒷좌석 승객이 다리를 꼬고 앉아 신문을 봐도 될 만큼 넓은 실내 공간을 구현한 롱 휠베이스 차량이 기본 모델의 판매를 앞서기 시작한 것.

최고급 세단이 고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롱 휠베이스 모델에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데다, 자동차 회사들이 경쟁적으로 뒷좌석을 고급화하며 롱 휠베이스 모델에 사활을 거는 것도 이런 변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재규어의 3.0L 디젤 모델을 예로 들면 기본 모델이 1억2600만원, 롱 휠베이스 모델은 1억4100만원으로 약 12%밖에 차이가 안 난다.

아우디 A8의 경우 지난 2011년까지만 해도 기본 모델(765대)이 롱 휠베이스 모델(551대)보다 더 많이 팔렸다. 하지만 2012년부터 롱 휠베이스모델이 앞서기 시작했고, 올해도 5월까지 판매된 455대 중 84%에 해당하는 383대가 롱 휠베이스 모델이다.

재규어 XJ 롱휠베이스(LWB) 모델의 뒷좌석. 넓은 테이블이 있어 움직이는 사무실이라고 불린다.

지난해 말 출시된 메르세데스 벤츠의 신형 S클래스는 아예 롱 휠베이스 모델 위주로 나오고 있다. S500의 경우 롱 휠베이스 모델만 나오고 있고, S350도 롱 휠베이스가 기본 모델(106대)보다 6배 이상 많은 666대가 팔렸다. 재규어는 올 초 롱휠베이스 모델 뒷좌석에 프리미엄 비즈니스 클래스 리어 시트라는 최고급 좌석을 적용하며 넓이는 물론 품질 경쟁까지 뛰어든 상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각 사의 최고급 세단 중 가장 많이 팔린 모델도 이 세 특징을 갖춘 차들이 차지하고 있다. 아우디 최고급 세단 A8 중 올해 가장 잘 팔린 모델은 3.0 TDI 콰트로 롱 휠베이스 모델이다. 디젤 엔진과 4륜구동, 롱 휠베이스 특징을 모두 갖췄다.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에서는 S350 블루텍 롱 휠베이스 모델이 666대 팔리면서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했는데, 역시 디젤 엔진과 롱 휠베이스라는 특징을 갖췄다. 재규어의 XJ 모델도 3.0D 롱 휠베이스 모델이 가장 많이 팔린다.

윤대성 한국수입자동차협회 전무는 "독일 고급 브랜드들이 중형차 시장에서 디젤 엔진이 연비나 동력 성능에서 장점이 있다는 것을 입증한 이후 최고급 세단 시장으로 디젤 엔진의 인기가 번졌다"면서 "4륜구동 역시 과거 스포츠유틸리티차(SUV)용 기술로 여겨졌지만, 점차 세단에서도 쓰이는 최첨단 기술이라는 점이 알려지며 주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