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KT 회장이 취임 4개월 만에 '비장의 한 수'를 꺼내 보였다. 그는 KT의 미래 신사업으로 5가지를 제시했다. ①스마트 에너지 ②통합 보안 ③차세대 미디어 ④헬스케어 ⑤지능형 교통관제다. 이 모든 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기존 인터넷보다 10배 빠른 '기가(Giga) 인터넷' 환경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황 회장은 20일 서울 광화문 올레스퀘어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 같은 구상을 밝혔다. 그는 지난 1월 27일 KT의 CEO(최고경영자)로 선임됐지만 그동안 대외 행사를 극도로 자제하며 은둔해왔다. 취임을 전후해 고객 정보 1200만건 유출, 계열사 KTENS의 불법 대출 등 온갖 악재(惡材)가 터지는 바람에 내부 수습에 바빴다. 이 기간 그는 기존 사업을 점검하고, 미래 성장 동력을 찾는 데 집중했다.

"통신과 이종(異種) 서비스를 융합"

황 회장이 발표한 5가지 미래 사업은 모두 '융합'이 화두(話頭)다. 전력거래·분산발전 등 전력망을 관리하는 '스마트 에너지' 분야, 방송콘텐츠 전송 기술인 '차세대 미디어' 등은 모두 전통적인 통신 영역에 머물지 않고 연관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황창규 KT 회장이 20일 서울 광화문 올레스퀘어 1층 드림홀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갖고 지금보다 10배 빠른 기가(Giga) 인터넷 기반의 ‘5대 미래 융합서비스’ 등 KT가 새롭게 추구해 나가는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삼성전자에서 '황(黃)의 법칙'이라는 메모리 반도체 성장론을 앞세워 신화(神話)를 일구고, 이명박 정부에서 국가 CTO(최고기술책임자)를 맡아 활동했던 그의 경험이 짙게 배어 있다. 황 회장은 이날 5대 미래 사업을 소개하면서 "제 경험을 바탕으로 제가 KT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5가지를 찾았다"고 말했다.

이 사업들이 뜬구름 잡는 식의 먼 미래 일은 아니다. 일부는 이미 사업성 검토가 끝나 구체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에너지 최적화 프로젝트 'KT-MEG'의 경우, 미국 캘리포니아 주 정부 연구소(CITRIS)와 핀란드 국가기술단지 등 전 세계 12곳에서 서비스를 하고 있다. 이는 통신기술을 바탕으로 전기·물·가스·열 등의 에너지원(源)의 생산·소비·분배를 모니터링하고 분배하는 플랫폼이다.

황 회장은 "해외 주요 기관에서 에너지 관리를 맡긴 것은 우리의 실력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해외 빌딩 에너지 관리 등으로 사업 영역을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LTE(4세대 이동통신)를 이용한 방송도 다음 달에 서울시청 앞 광장과 강남역 등 주요 지역에서 서비스가 시작된다. 중앙의 서버 컴퓨터에서 다수의 사용자에게 초고화질(UHD)급 영상을 방송할 수 있는 무선통신 기술이다.

KT는 이를 위해 지금보다 10배 빠른 기가 인터넷을 도입해 기가토피아(Giga+ Utopia)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기가 인터넷은 1초에 1024메가비트(Mb·1기가비트)의 데이터를 전송하는 속도를 말한다.

현재 100Mb 수준인 초고속 인터넷보다 10배 빠른 것으로, 고화질(HD) 영화 한 편을 10초 안에 내려받을 수 있다. KT는 유선 통신망에 기가 인터넷을 먼저 도입한 뒤 LTE와 결합해 무선 인터넷도 지금보다 3배 빠른 속도로 제공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KT는 앞으로 3년간 4조5000억원을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신업계에선 기가 인터넷은 고객들이 당장 체감 가능하고, 유선 사업에 강점을 가진 KT가 주도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보고 있다. 황 회장은 "고객들은 새로운 형태의 통신 서비스를 원하고 있다"면서 "저는 '기가'와 '융합'에서 답을 찾았다"고도 했다.

"KT의 숨겨진 역량 확인"

황 회장은 포화상태를 보이는 통신산업에서 '성장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도전(挑戰)을 예고했다. 그는 "KT에 올 때 정말 제대로 IT를 한번 해보자는 욕심이 있었다"며 "모바일 시장은 물론이고 융합서비스를 통해 통신의 붐을 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KT는 이날 발표한 5대 사업을 위주로 계열사를 재편할 계획이다. 미디어 분야는 KT스카이라이프미디어허브, KT뮤직 등이 하나의 소그룹으로 묶여 공동으로 스마트 미디어 사업을 추진한다. 황 회장은 "KT에 와보니 그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던 보석 같은 조직과 기술, 인력들이 있었다"면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사업을 재편해 KT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조직으로 만들어 가겠다"고 했다.

황 회장은 전체 통신업계의 각성도 강조했다. 그는 "세계 최고의 네트워크 인프라를 갖추고 경쟁력을 주도해야 할 통신사업자들이 서로 가입자를 뺏고 뺏기는 싸움을 하고 있다"면서 "차별화된 기술과 서비스 품질 경쟁으로 '판'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황창규의 말말말]

KT 판도라 상자 열어보니… 고난 쏟아졌지만

"KT에 와서 판도라 상자를 열어보니 온갖 고난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맨 마지막 상자에 희망이 있었다. KT의 '1등 DNA'와 직원들의 열정을 확인했다. 새로운 KT를 만들어 가겠다."

12년 전 '황의 법칙' 뛰어넘는 시대

"데이터 사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12년 전 내가 발표한 ‘황의 법칙’을 훨씬 뛰어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기가 인터넷은 기가 막히게

"기가 인터넷은 '황창규가 기가 막히게 잘하네'라는 말을 듣고 싶다."

☞기가 인터넷(Giga Internet)

1초에 1기가비트(Gb·1024Mb) 이상의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차세대 인터넷. 고화질(HD) 영화 한 편을 10초 안에 내려받을 수 있는 속도다. 현재 유선 인터넷 속도인 1초당 100메가비트(Mbps)보다 10배 빠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