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권오준 회장, 신일철주금 신도 고세이 사장.

한·일 철강업체가 경쟁적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면서 양국 철강업계 사이에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다. 세계 철강산업이 불황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가운데 한·일 철강업계가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시장에 대한 선점(先占)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

한·일 철강 대전의 양측 대표 주자는 포스코와 일본 신일철주금(新日鐵住金·신닛데쓰 스미킹)이다. 두 회사는 각각 지난 3월과 4월 새 사령탑을 세우고 철강 명가(名家) 부활을 선언했다. 경영 혁신을 주창하고 있는 포스코 권오준 회장과 엔저(円低)를 활용한 공격 경영을 선언한 신도 고세이(進藤孝生) 사장이 첫 번째 맞대결을 벌이는 곳은 아시아와 북미 등 해외의 자동차용 강판시장이다.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 다른 형태의 리더십

두 회사 사령탑이 출범한 시기는 비슷하지만 두 CEO(최고경영자)의 이력은 서로 다르다. 금속학 박사 출신인 권오준 회장은 1986년 포스코에 입사한 후 포스코 기술연구소장, 포항산업과학연구원 기술총괄 사장을 역임했다. 포스코 최고의 기술 전문가로 꼽힌다.

반면 히토쓰바시(一橋)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신도 사장은 1973년 신일본제철에 입사한 뒤 인사·총무·경영기획 등 사내 주요 경영 포스트를 거쳐 2009년에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신일철주금 역대 경영인과는 달리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경영 전문가다.

두 CEO가 취임과 함께 내세운 경영 목표는 서로의 전공 분야가 아니다. 권오준 회장은 재무구조 개선과 사업 개편을 통한 대대적인 경영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기술 투자보다는 구조조정을 통해 경영 쪽을 먼저 안정시키겠다는 것이다. 반면 신도 고세이 사장은 "한국이 기술면에서 신일철주금을 맹렬히 추격하고 있다"며 기술력 강화에 방점(傍點)을 찍었다.

아시아 시장 집중 공략

해외에서 두 회사의 주요 경쟁 무대는 아시아와 북미 지역이다. 중국·인도·멕시코 등에 진출해 있는 글로벌 자동차 업체 생산 라인에 납품할 자동차용 강판이 경합 품목이다.

신일철주금은 5월 말부터 연산(年産) 60만t 규모의 인도 자동차용 강판 공장을 가동한다. 신일철주금은 인도네시아에서도 현지 국영 철강업체 크라카타우스틸과 손잡고 연산 40만t 규모의 자동차용 강판 생산 공장을 짓기로 했다. 인도네시아는 포스코가 종합제철소를 운영하고 있는 곳으로 포스코의 아시아 전략 기지이다. 신일철주금은 이를 통해 오는 2017년까지 아시아 지역에서 자동차용 강판 생산 능력을 지금보다 80% 가까이 확대하기로 했다.

일본 철강업체의 공세에 맞서기 위해 포스코는 인도에 건설하고 있는 180만t 규모의 냉연강판 공장을 올 하반기 가동할 계획이다. 또 6월부터는 태국에 연산 45만t 규모의 자동차용 강판 공장을 짓기로 했다.

중국과 멕시코에서는 각각 연산 45만t, 90만t 규모의 자동차용 강판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포스코가 다소 앞서나가는 상황이다. 특히 멕시코에서는 올 1월 제2공장을 완성해 멕시코 제2의 자동차 강판 회사로 부상했다. 태국에 짓고 있는 자동차 강판 공장이 2016년 준공되면 포스코의 해외 자동차 강판 생산 능력은 225만t으로 늘어난다.

"중국·일본에 협공받는 포스코"

일본 철강업계가 적극적인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선 것은 엔저(円低)와 일본 경기 호전에 따른 자국 철강 수요 증가로 실적이 개선되면서 '실탄'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신일철주금은 2013 회계연도 기준 2427억엔(약 2조449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려 포스코(1조3550억원)를 앞질렀다. 신일철주금의 당기순이익이 포스코를 앞지른 것은 2008년 이후 처음이다. 포스코경영연구소 이민근 박사는 "일본 내 철강 수요가 포화 상태에 이르고 있어 일본 철강업체의 해외 진출은 한층 속도를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과 열연강판, 후판, 건설용 자재 등 범용 철강 제품을 놓고 힘겨운 경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이 전 세계 고부가가치 철강 시장에서 일본에 밀릴 경우 '샌드위치' 상황이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주한 산업연구원(KIET) 박사는 "국내 철강업계가 자동차·가전회사 등 철강 제품을 필요로 하는 가공업체와 동반 해외 진출을 강화해 시장 진입에 따른 비용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마련하는 한편 일본과 차별화되는 기술 개발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