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햇빛이 따사롭던 16일 낮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학동사거리 뒷골목에 자리한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를 찾았다.

학동사거리 뒷골목은 ‘버터핑거팬케이크하우스’, ‘오아시스’ 등 브런치 맛집들이 숨어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경사가 진 길을 따라 오르자 프랑스 식당으로 유명한 ‘기욤’의 건너편에 지난 15일 문을 연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트래블 라이브러리는 현대카드가 지난해 2월 서울 종로구에 만든 ‘디자인 라이브러리’에 이어 개관한 여행 전문 도서관이다. 학동사거리 뒷골목에 있던 5층 짜리 상업용 건물 중 2개 층을 임대해 새롭게 디자인했다.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 전경

외벽은 흰색 선물상자를 겹쳐서 쌓아놓은 것처럼 꾸몄다. 입구 전면의 통유리 넘어 다양한 여행 소품들이 전시된 모습이 보였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카타야마 마사미치가 이 도서관을 디자인했다. 카타야마는 “트래블 라이브러리에 발을 들여놓은 것 자체가 진짜 여행을 떠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호기심 가득한 공간으로 꾸몄다”며 “여행의 계기가 되고 여행의 추억을 나누는 장소가 되길 기대한다”고 소개했다.

◆ 트래블 라이브러리 자체가 여행…여행 서적 1만5000권이 한곳에

‘타닥타닥타닥.’

디자인 라이브러리 입구에 들어서자 오른쪽 벽에 걸려있던 비행 시간 안내판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숫자가 바뀌었다. 지금은 전세계 어느 공항에서도 보기 드문 아날로그 비행 안내판이다. 순간 공항에 온 기분이 들면서 지금 당장이라도 비행기에 올라야 할 것만 같았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인천공항의 주요 비행시간 정보를 30분 간격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 전경

1층에서 시작해 2층까지 이어지는 벽과 천장을 동굴처럼 감싸고 있는 목재 서가(책꽂이)가 눈에 들어왔다. 나무가 자라 하늘을 가리듯 서가가 도서관 전체를 덮는 것이 종유석 동굴을 연상케 했다.

서가의 규모는 압도적이다. 현대카드는 장서 9만4324권를 검토해 1만4761권을 엄선했다. 가디언지 여행 칼럼니스트, 론리플래닛 에디터, 타임지 여행 에디터, 일본의 책 컨설턴트 등 큐레이터 4명이 자기 전문 영역에서 각각 2000권씩 선정했다. 예술과 건축, 역사와 문화, 모험과 도전정신 등 13개 테마로 여행의 목적과 의미에 따라 책을 분류했다. 전 세계 196개국 가이드책도 지역별로 나눠져 있다. 여행 가이드북도 초보 수준에서 전문용까지 1910권이 준비되어 있다. 세계 여행 도서관 중에선 최대 규모다.

트래블 라이브러리는 1층, 1.5층, 그리고 2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 카페 발코니도 전면 통유리로 되어있어 햇살이 가득 들어온다. 1층 카페에서는 계절에 맞는 여행지를 떠오르게 하는 음료를 판매한다. 여행의 피로를 기분 좋게 풀 수 있도록 보드카를 넣은 커피(앱솔루트커피), 알래스카를 연상시키는 코코넛 스무디(트래블 알래스카) 등 현지의 맛을 상상하게 하는 음료를 메뉴판에 넣었다. 발코니에는 스톤월(돌로 된 벽)을 만들었다. 밤이면 분위기 좋은 바에 술 한잔을 하러 온 느낌이 든다. 카페에선 맥주와 와인도 판매한다.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 전경

세 개의 층을 잇는 것은 중앙에 놓인 계단이다. 허공에 매달려있는 듯한 계단을 오르면 희귀 서적이 전시된 1.5층 공간이 나타난다. 고(古)서적에서 묻어나는 진한 향이 코 끝을 감싸온다. 이곳에선 흰색 장갑을 끼고 희귀 고서적과 잡지을 둘러볼 수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1888년 창간호부터 1465권까지 전권이 비치돼 있다. 창간호는 내셔널지오그래픽 본사도 구하지 못한 희귀 소장품이다. 1.5층은 매 분기마다 다른 주제로 희귀 서적을 전시할 예정이다. 마침 1.5층 벽에 달린 스크린에선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무음 상영 중이었다.

2층 서가는 창문을 내지 않아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이 없지만 책꽂이 사이 사이로 조명을 설치해 고즈넉한 분위기를 낸다. 책 읽는 이의 눈에 방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딱 필요한 만큼만 조명을 넣기 위해 현대카드는 조광사를 고용해 과학적으로 계산한 장소에 조명을 설치했다.

2층 서가에는 약 3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있다. 이날 서가에는 가이드북과 지도에 코를 파묻고 여행 준비를 하는 연인, 친구들, 여행 컨설턴트와 상담하는 사람들이 조용히 도서관을 즐기고 있었다.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 전경. 2층에선 책을 읽는 사람들이, 1층 카페에선 차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여기 저기 설치된 의자들도 눈길을 빼앗는다. 아프리카에서 직접 공수해온 의자, 빅토리아 시대 디자인을 그대로 계승한 의자와 등받이가 제멋대로 꽂힌 단체용 의자까지, 세심한 센스가 돋보인다. 카타야마는 “세계 여러 문화를 한데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국가에서 의자를 수집했다”며 “제작 연대와 문화권도 다 다르다”고 설명했다.

◆ 책꽂이 뒤에 숨어있는 비밀의 공간

책꽂이를 직선 형태가 아니라 울퉁불퉁하게 만들다보니, 책꽂이와 벽 뒷면 사이에 좁은 여유 공간이 생겼다. 그래서 서가를 따라 걷다보면 숨어있는 공간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여유 공간에 카타야마는 또 다른 재미를 불어넣었다.

카타야마는 “여기에는 직선이 없고 다 울퉁불퉁하니까 올 때마다 풍경이 달리 보인다”며 “재미있는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 있어 여길 지나가는 행위 자체가 흥미롭고 모험을 떠나는 기분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1층에 있는 ‘지도룸’의 인방(引枋)에는 영어로 ‘Find’라는 문패가 걸려있다. 전세계 91여개 여행지의 지도와 안내 책자를 도시별로 정리해놨다. 지도룸 천장에는 300여개 비행기 모형을 달아놓았는데 벽에 있는 거울 덕분에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셀카’를 찍고 싶다면 여기가 적소다.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 전경


2층에선 가상 여행을 할 수 있는 '플레이룸'이 있다. 10개 액정표시장치(LCD)를 나란히 붙여 거대한 스크린으로 방을 꽉 채워놨다. 구글 어스(Google Earth)의 데이터를 이용해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의 추천 루트와 자기 여정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다. 조금만 더 걸음을 옮기면 여행 계획을 마음껏 세울 수 있는 '플랜룸'이 나온다. 무엇이건 썼다가 바로 지울 수 있는 화이트보드에는 앞서 들렸던 사람들의 자잘한 낙서들가 가득했다.

카타야마는 "여행에 가는 계기를 제공하는 것도 라이브러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지만 이 장소에 오는 것, 시간을 내어 여기에 놀러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여행에 가까운 체험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를 방문한 관람객이 '플레이룸'에서 여행지를 탐색하고 있다

이곳에서 여행 계획을 마무리한 뒤 질문이 남아있다면 2층에 상주하고 있는 여행 컨설턴트에게 가면 된다. 꼼꼼한 컨설팅 끝에 예약과 결제까지 완료한다면, 트래블 라이브러리의 문을 나서는 순간 진짜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 청담동 한복판서 일탈을 꿈꾸다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은 여행 전문 도서관을 구상하던 중 현대카드의 프리미엄 공간 ‘하우스 오브 더 퍼플’에서 카타야마와 마주쳤다. 카타야마는 파리 편집샵 ‘꼴레뜨(Colette)’ 매장, 뉴욕 소호 ‘유니클로(UNIQLO)’ 매장 등 디자인 프로젝트로 주목 받고 있는 일본 인테리어 디자이너다. 정 사장은 마침 카타야마가 갖고 있던 포트폴리오를 보며 역동적인 디자인을 추구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카타야마는 트래블 라이브러리 디자인을 맡게 됐다.

청담동이란 장소 선택도 모험 정신을 담았다. 화려하고 젊은 소비의 중심지, 청담동 한복판에서 또 다른 일탈의 장소를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카타야마는 “청담동은 정말 화려한 동네”라며 “이곳에 쇼핑이나 식사를 하러 오는 사람들이 잠깐 들려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를 디자인한 공간 디자이너 카타야마 마사미치

현대카드 관계자는 “여행은 라이프스타일 전 영역에 걸쳐 영감을 줄 수 있는 테마인 동시에 이질적인 문화와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라며 “가장 동적인 여행을 자신만의 여정을 발견하는 창조적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발상을 토대로 여행의 본질을 재발견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현대카드 회원에 한해서 입장이 가능하다. 월요일은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