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장의 위험성을 둘러싼 논란은 해당 업계나 이를 지켜보는 의학계 내에서도 엇갈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회사 관계자들은 "모든 반도체 생산라인은 위험 물질 노출에 대비해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루 3교대로 24시간씩 연중 내내 돌아가는 공장 근로자들의 안전을 위해 생산라인에서 유해한 화학물질이 새어나올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반면 현장의 관계자들은 여전히 위험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국내 반도체 회사의 한 연구원은 "생산라인은 최근 수년간 꾸준한 환경 개선이 이뤄지면서 위험 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은 희박하졌지만 새로운 공정이나 제품을 연구하는 연구부서 종사자들이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생산라인은 오랜 경험을 토대로 사고에 대비해 이중삼중의 대책이 마련돼 있지만, 연구개발(R&D) 부서는 다양한 실험이 최초로 이뤄지기 때문에 위험에 더 노출됐다는 지적이다.
반도체 공장내에 위험물질이 많이 쌓여있다는 점은 업계와 현장근무자 모두 인정한다. 실제 반도체 공장 근로자들의 잇따라 원인 모를 이유로 숨지면서 정부가 내놓은 반도체 산업 근로자 건강관리지침에서도 여러 위험 요인들이 발견된다.
2012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내놓은 반도체산업 근로자 건강관리 지침에 따르면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근로자들이 노출될 수 있는 화학물질은 151가지에 이른다. 이 가운데 140가지는 한꺼번에 다량 노출되거나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눈과 피부에 자극을 주는 것은 물론 폐암을 유발하는 물질이다.
웨이퍼에 회로를 만드는 식각과정에서 발생하는 벤젠은 최근 수년간 삼성전자를 괴롭혀온 백혈병을 유발하는 물질로 꼽힌다. 벤젠은 웨이퍼에 회로 패턴을 형성시키는 '포토공정'에서 유기용제로 사용된다. 고농도의 유기용제에 노출되면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받아 두통과 구역질, 현기증 등 증상이 나타난다. 또 포토공정에 사용되는 글리콜에테르이란 화합물에 꾸준히 노출되면 자연유산, 임신지연 같은 생식기능이 떨어진다.
반도체에 이온을 주입하는 공정에서 아르신이란 물질을 사용하면 부산물로 비소가 발생하는데 이는 폐암과 간암, 피부암을 유발한다. 반도체 웨이퍼 가공라인 전반에 사용되는 아세톤만 해도 노출될 경우 눈과 기도를 자극하고 심하면 중추신경계를 손상시킨다. 반도체 웨이퍼 가공라인에서 이온을 주입할 때 사용되는 비소는 발암성이 높은 '1급 위험물질'에 속한다.
부속 세척과 부품 교체, 세척용액 보충 과정에서는 근로자들이 불산과 황산, 암모니아 등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연이은 누출 사고로 문제가 된 불산은 황산, 질산과 함께 웨이퍼를 세척하는 과정에서 사용된다. 불화수소나 황산같은 화학물질들은 장기간 노출되면 뼈가 약해지거나 후두암을 일으키는 등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회사들도 이런 위험성을 감안해 엄격한 안전지침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근로자들에게 호흡용 보호구와 보호의, 보안경을 기본적으로 착용하도록 하고 정화장치가 달린 배기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 일본과 유럽 등 선진국에선 반도체 공장내 충분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심지어는 근로자를 들여보내지 않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삼성의 백혈병 피해자들은 이런 조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던 1990년대~2000년대 초반 집중적으로 근무했으나 해당 공장라인이 폐쇄되면서 자료들이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법원은 지난해 두 차례 판결을 통해 피해자들이 장기간 유해 화학물질에 노출된 점을 인정해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10월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근무하다가 2009년 급성골수성 백혈병으로 숨진 김경미(당시 29세)씨 유족이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지급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승소판결을 내리면서 업무 기인성과 백혈병의 인과관계의 증명책임을 과도하게 피해 노동자에게 전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이번에 삼성전자의 배상이 이뤄진다고 해도 반도체 공장 라인의 안전성 여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남는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은 2007년과 2008년 2차례에 걸쳐 삼성전자에서 실시한 '반도체 근무환경 역학조사'에서 "사업장 환경이 백혈병을 유발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얻었다.
하지만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지난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공장 생산라인에서 소량이지만 자연환경보다 높은 백혈병 유발인자인 벤젠과 포름알데히드가 나왔다며 발암물질의 존재 가능성을 일부 인정하는 배치되는 연구보고서를 냈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와 정부 기관, 의료계가 그동안 조사한 다양한 결과들을 기본적으로 서로 인정하고 함께 의견을 모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삼성전자는 2012년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국제산업보건위원회 학술대회를 비롯해 수차례 해외 학회에 반도체 생산 라인의 안전성 조사 결과를 발표해왔다.
삼성측은 "세계 학계에서도 안전성을 검증 받았다"고 홍보했지만, 학계 관계자들은 "일방적인 학술 발표일 뿐 인정을 받은 것은 아니다"는 입장을 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백혈병 진상규명을 위해 구성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관계자는 "반도체 작업장의 안전성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을 종식시기키 위해서는 여러 방식의 연구 결과를 서로 인정하고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공동 조사와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