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에만 해도 1050원 선이었던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020원 선으로 하락하며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경제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이 1000원으로 하락해 수출이 감소하면 올해 경제성장률이 0.2%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환율 하락은 정말 우리 경제에 나쁘기만 한 것일까. 원화 절상(환율 하락)은 수출 기업의 채산성을 악화시키지만, 내수를 활성화하는 효과도 있다. 환율이 하락하면 교역조건이 개선돼 실질소득이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가계소비와 기업투자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성장에서 수출 역할이 크기 때문에 환율 하락이 우리 경제에 무조건 독(毒)인 것처럼 인식됐지만, 내수 활성화 등 환율 하락 효과를 지나치게 간과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한다.

◆ “수출에 환율 영향 줄었다…내수 부양 효과도 봐야”

이 때문에 고환율을 통한 수출 확대가 우리 경제성장을 위한 무조건적인 전략이 돼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여전히 우리 경제에서 수출 비중이 크지만 해외 생산기지 확대와 기술력 발전으로 우리 기업이 환율에 영향을 받는 정도가 과거보다 약해졌고 환율 변동이 내수에 미치는 영향이 커졌다는 것이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원화가 10% 절상될 때 전체 우리경제가 받는 부정적인 영향(부가가치 민감도)은 2005년 -0.15%에서 2011년 -0.05%로 축소됐다. 원화가 절상되면 수출이 위축돼 생산·판매에는 부정적이지만, 소비가 늘어 지출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더 큰 폭으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연구소는 “환율이 하락하면 수출이 타격을 받는 것은 맞지만 같은 조건에서 국내 지출이 늘어 충격을 완화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하락하며 환율 변동이 우리 수출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과 함께 내수에 미치는 영향도 함께 분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진은 명동 환전소의 모습.

경제의 개방도가 높아져 환율보다 세계 경기회복이 수출에 더 큰 영향을 주고, 환율 하락은 오히려 내수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은행이 우리 경제를 산업화단계(1960~1970년대)와 개방단계(1980년대 이후)로 나눠 분석한 결과, 산업화단계에서 환율이 상승했을 때는 소비·투자 감소분보다 수출 증가분이 더 커 우리 경제가 성장(GDP 증가)했지만, 개방단계에서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이 증가하는 것보다 소비·투자가 더 많이 감소해 오히려 GDP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은 “산업화 시기에는 각종 투자유인이 수출조건부로 제공돼 수출 증가에 따른 투자진작 효과가 컸지만, 지금은 수출의 투자파급효과가 줄어 환율이 상승하면 투자 위축 영향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한국개발연구원이 수행한 거시경제모형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실질실효환율이 하락하면 수출 감소로 인한 영향이 내수 증가에 따른 영향보다 커 단기적으로 GDP가 감소하지만 그 효과는 1~2년이 지나면 거의 소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재정·통화당국 미묘한 입장 변화…“환율 하락, 내수 부양에 도움”

최근 환율이 가파르게 하락하는 상황에서 기획재정부와 한은 등 재정·통화 당국도 과거와 다른 미묘한 입장 변화를 보이며 환율 하락에 따른 내수 부양 효과를 인식하는 모습이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월 파이낸셜타임즈(FT)와의 인터뷰에서 “1970∼1980년대와 비교했을 때 환율이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감소했다”고 했고, 지난 달 원·달러 환율이 1050원을 간신히 유지할 때도 같은 말을 반복해 사실상 환율 하락을 용인했다. 정부는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수출 의존적인 경제에서 벗어나 내수를 키워야 한다는 기본 인식 하에 내수활성화 정책을 펴고 있다.

환율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원론적으로 언급한 것이긴 하지만 5월 금융통화위원회 브리핑에서 나온 이주열 한은 총재의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당시 이 총재는 “과거에는 원화가 절상되면 수출에 부정적이어서 경기에 좋지 않다고 도식적으로 이해했는데, 이제 과거와는 좀 다르지 않냐”며 “원화가 절상되면 수출 감소로 우리 경제에 영향이 있겠지만, 실질구매력을 높여 부진한 내수를 살리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고 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기업은 생산성 향상을 통해 환율 변동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정부는 경제체질을 개선해 성장잠재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급격한 환율 변동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해 정부가 미세조정을 통해 속도조절에 나서는 것은 필요하지만 환율 하락 추세는 받아들여야 한다”며 “환율 하락이 내수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이를 제약하는 가계부채 해소 등에 정책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