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맞춰 지난 6일이 부처님오신날이었다. 물은 연잎을 적시지 않고 연잎은 물을 깨뜨리지 않는다. 연꽃은 듬뿍 채움 없이 감당할 만한 물만 품고 있다가 버겁다 싶으면 선뜻 다소곳이 머리 숙여 미련 없이 훌렁 비워버린다. 마음의 잡초요, 고통의 뿌리인 탐욕과 집착을 털어버리라는 맑은 가르침을 주는 고운 미소 띤 연화(蓮花)다. 불교의 거룩한 상징물인 소담스럽고 싱그러운 연꽃(Nelumbo nucifera)은 수련과의 여러해살이 물풀로, 한국·중국·일본·동남아·호주 등지에 널리 퍼져 살며, 잎사귀를 물 위에 띄우는 부엽수생식물(浮葉水生植物)이다.

붉거나 흰 빛깔인 연꽃은 보통 7∼9월에 피는데, 이른 아침에 벌기 시작하여 정오경에 환히 웃다가 저녁 무렵에 일순간 오므라들며, 그러기를 꼬박 3∼4일을 되풀이하고는 이내 곧 이운다. 꽃 하나에 꽃잎이 18~26장 다닥다닥 매달리며, 꽃잎은 달걀을 거꾸로 세운 차림새다. 연은 한 꽃 속에 수술과 암술이 모두 있는 양성화로 꽃봉오리 하나에 300개 남짓한 수술과 40개 안팎 암술이 열리고, 꽃이 진 자리에 열매(연밥)가 맺히며, 거기에는 씨가 15~25개 든다.

그리고 뿌리줄기(근경·根莖)인 연근을 가로 썰기 해보면 가운데 하나, 그 둘레에 둥글넓적한 구멍 7~8개가 숭숭 뚫려 있으니, 그것은 물속 진흙에 묻혀 있는 근경이 산소가 부족하기 쉬운 까닭에 평소 공기를 넉넉히 저장해두는 공기 저장 조직으로 수생식물의 공통 특징이다.

전기병 기자

그런데 지금껏 연잎에 옥구슬이 방울방울 또르르 구르는 것은 단순히 잎의 밀랍(wax) 때문이라 여겼으나 사실은 그것 말고도 다른 까닭이 있다. 물방울은 높은 표면장력 탓에 표면적을 줄이려고 언제나 동그란 방울을 이룬다. 또 반들반들하고 매끄럽게 보이던 연잎 표면을 주사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높이 10~20㎛(1마이크로미터는 1000분의 1㎜), 너비 10~15㎛의 복잡한 나노 구조(nanostructure)를 가진 울퉁불퉁한 돌기가 촘촘히 나 있어 물이 쉽사리 접착되지 않는다.

좀 더 설명을 보태면, 물을 몹시 꺼리는 연잎의 초소수성(超疏水性)은 나노 구조에 따른 접촉각(接觸角·contact angle)과 관련이 있다. 접촉각이란 액체가 고체와 접촉할 때 액체와 고체면 사이에 이루는 각도를 말하며, 액체가 고체에 완전히 달라붙으면 접촉각은 0도이고 전연 접촉하지 않을 때가 180도이다. 따라서 접촉각이 크면 클수록 소수성이 높은 것으로, 연잎은 나노 구조 탓에 접촉각이 147도라 실제로 연잎과 물방울이 맞닿는 접촉 면적이 겨우 잎의 2~3%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물방울이 바닥에 묻어 번지지 못하고 공중에 붕 떠 있는 상태를 '연잎 효과(lotus leaf effect)'라 이른다.

이렇듯 물방울이 불안하다 보니 물이 모이는 족족 한꺼번에 와르르 좍 쏟아지는데, 이때 잎에 묻은 자질구레한 먼지나 포자, 세균도 함께 물방울에 말끔히 씻겨 나가 광합성도 훨씬 잘 된다. 한편 한련(旱蓮)이나 토란(土卵)잎, 나비·잠자리 날개도 연잎 효과에 따른 자정(自淨) 덕에 언제나 맑고 깨끗하다. 그리하여 나노 기술자들은 이런 성질을 이용하여 물기와 잡티가 묻지 않는 코팅·페인트·타일·섬유·유리판·스마트폰들을 만든다.

연꽃은 예부터 속세에 물들지 않는 군자의 꽃으로 여겼고, 비록 지저분한 구정물에 살지만 때 묻지 않기에 불교의 상징으로 삼았으며, 더욱이 붓다가 태어나 걸음마하는 곳마다 자비(慈悲)의 꽃이 널리 피었다 하여 불가에서는 자못 깊게 아끼고 높이 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