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형 기자

30대 중후반 여성인 A씨는 지난해 소개팅을 하면서 재미있는(?) 일을 겪었다. 남자가 "어디에 사느냐"고 물었고 A씨는 "목동에 산다"고 답했다. 서너번 쯤 더 만났을 때 남자가 "차를 가져왔으니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부모와 함께 사는 A씨의 집은 오목교역에서 차를 타고 5분 정도 더 가야 한다. 집 앞에서 헤어질 때 남자가 말했다. "목동이라면서요?" "예, (행정구역상) 목동이요." 그 남자는 이후로 연락을 끊었다. 요새는 남녀가 만나는 데 '어디에 사는지'가 중요하다고 한다. 거주 지역이 상대방의 재력을 판단하는 일차적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부모님과의 동거 여부가 중요하다. 똑같은 강남 지역에 살더라도 원룸이냐, 부모님 소유 아파트냐에 따라 다르다. 서울 강남에 사는 딸 가진 부모들은 사위의 조건으로 '결혼 후 살 집으로 강남에 자가든 전세든 아파트가 있을 것'을 내세우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딸이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다면 남자 부모의 부동산 등기부 등본을 떼어오라고 해서 확인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학력과 직업은 그 다음 문제다. 어떤 생각과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 성격은 어떤지,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는지는 그 다음 다음 문제다. 우리 사회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도 다르지 않다. 돈과 사회적 지위다. 돈과 사회적 지위가 없어지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진다. 주변에 사람도 없어진다. 고위공무원들이 퇴직 후 산하기관이나 협회 등에 재취업하려고 목을 매는 진짜 이유다. 예전에는 돈이냐, 명예냐를 두고 선택의 고민을 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돈이 명예다. 사회적 지위가 명예다. 올바른 길이나 정의(正義)를 좇을만한 여유가 없다. 청해진해운을 실질적으로 운영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돈으로 명예를 샀다. 유 전 회장은 2012년과 지난해에 각각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과 베르사유 궁전에서 유명 사진작가인 양 사진전을 열었다. 지난 1월말 열린 유 전 회장의 출판기념회에는 유명 아나운서와 가수, 탤런트 등이 참석했다. 앵커 출신 아나운서가 사회를 맡았으며 각국 대사와 정치인 등도 참석했다. 이들이 유 전 회장과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유 전 회장의 돈이 이들을 불러모을 수 있었던 건 확실한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정신의 가치는 이미 땅에 떨어졌다. 고매한 인격과 인간·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력에 대해 존경하지 않는다. 한 분야에 정진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명인들을 대우해 주지 않는다. 돈이나 사회적 지위가 없으면 말이다. 1인 창무극의 대가로 많은 사람들을 웃기고 울린 고(故) 공옥진 여사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해 생활고 속에서 병마와 씨름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제자를 길러내지도 못했다. '1인 창무극'이 무형문화재로 인정받기까지 10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다. 이미 공 여사가 노환과 질병으로 활동하기 어려운 2010년에야 인정을 받았다. 학문의 전당으로 정신의 가치를 수호해야 할 대학은 체면을 버린 지 오래다. 인문학의 성지(聖地)여야 할 대학이 돈(취업)이 안 된다는 이유로 인문대와 사회대, 예술대를 축소하고 일부 과를 폐지하는 행태를 자행하고 있다. 많은 대학들이 6개월짜리 최고경영자대학원과 같은 것을 운영한다. 판검사나 정부 관료들과, 그 네트워크가 필요한 기업체 CEO, 임원들을 '동문'으로 엮어주면서 돈벌이를 하고 있다. 학식과 덕망이 높은 교수보다 대학발전기금을 잘 모집하고 프로젝트를 잘 따는 교수가 대우 받는다. 지성의 상징인 교수들이 권력을 좇아 '폴리페서(polifessor)'의 길을 가지 못해 안달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안 보이지만 정신의 가치를 복원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는 졸부(猝富) 국가에 불과하다. 1인당 국민소득이 아무리 높아져도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성숙한 사회가 될 수 없다. 12.12 군사반란에 가담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측근 10명이 군인연금을 지급해달라고 소송을 냈다고 한다. 정신의 가치가 땅에 떨어졌으니 이렇게 염치없는 일이 벌어진다. 이번 세월호 참사는 '정신'의 가치와 진정한 의미의 '명예'를 도외시한 우리 사회가 만든 합작품이다. 이게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어디에나 '진짜'는 있다. 진정한 학자, 진정한 정치인, 진정한 교사, 진정한 기업인 등등. 돈과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정신적 가치와 진정한 명예를 존중하는 문화가 이러한 '진짜'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에 이은 대한민국의 다음 지향점은 이런 진짜들을 양산해내는 '정신적 고도화'여야 한다. 진정한 가치와 명예에 대한 존중. 세월호 참사가 일깨워준 우리 시대의 화두다.

[유병언 전 회장 및 기독교복음침례회 관련 반론보도문]

조선비즈는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유병언 전 회장 관련 보도를 하면서, 유 전 회장이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라고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유 전 회장 측은 '청해진해운 관련 주식을 소유하지 않아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나 회장이라 할 수 없으며, 유 전 회장 일가 추정 재산 중 상당 부분은 기독교복음침례회 신도들이 만든 영농조합 소유'라고 알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