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세월호 참사의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세월호 이후'를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아찔하다. 300명이 넘는 사망·실종자를 낸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난달 16일 이후에도 대형 사고는 이어졌다. 삼성SDS의 과천 데이터센터 화재를 비롯해 울산 현대중공업 선박건조장 내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 화재, 아모레 퍼시픽의 대전 공장 화재, 서울 지하철 2호선 충돌 사고 등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은 저물지 않고 있다.

‘구멍뚫린 대한민국’ 기획 시리즈에 조언을 아끼지 않은 백민호 강원대 재난관리학과 교수, 이동규 동아대 석당인재학부 교수,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이재은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 정지범 한국행정연구원 재난관리연구실장, 미국 재난관리사인 하규만 박사(가나다순) 등 6명의 전문가들이 주문한 '세월호 이후' 대비책을 정리했다.

◆ 백민호 강원대 재난관리학과 교수 "기록하고 기억하라…백년대계 위기관리시스템 만들어야"

백민호 강원대 재난관리학과 교수

백민호 교수는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 후세에 확실히 전달할 것을 주문했다. 백 교수는 "일본은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그 당시 불거졌던 정부의 수많은 실패를 기록하고 분석해 문제점을 도출해 낸다"며 "우리도 뛰어난 재난 수습을 보였던 경험을 살리고 세월호 참사 처럼 부족했던 부분은 고치는 문화를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세월호 참사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컨트롤타워의 부재', '재난전문가 부족', '관피아(관료+마피아의 합성어)의 부패' 문제점을 정부와 언론이 토해내듯 쏟아내지 말고 차분히 토론해 대규모복합재난을 대비한 백서(白書)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는 "지금 세월호 참사를 수습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얼마 있지 않아 이 많은 실패와 경험들이 사라질 것처럼 보인다"며 "이를 방치해서는 절대 안 되고 철저히 관리해서 제도적 장치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정권 교체에도 흔들리지 않을 위기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백 교수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재난을 관리하는 독립된 전문기관을 만들겠다는 발상 자체는 좋다"면서도 "이번에 백년대계(百年大計)의 위기 관리 시스템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진행해야지 정권이 바뀐다고 이를 뒤흔들면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까지 역대 정권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위기 관리 시스템을 흔들어왔다"며 "그러다보니 인력과 노하우가 쌓이지 않고 끊겼다. 단일체제와 폭넓은 인재 풀(pool)을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 이동규 동아대 석당인재학부 교수 "대규모 재난 발생 시나리오 준비해야"

이동규 동아대 석당인재학부 교수

이동규 교수는 "만약 세월호 참사 이후 잇따라 발생했던 금융 분야의 삼성SDS 화재, 산업 분야의 현대중공업 LPG 화재와 아모레 퍼시픽의 대전공장 화재, 치명적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는 조류 인플루엔자 발병 중 하나만 대형 재난으로 커졌다면 대한민국은 '패닉 상태'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에 안전에 대한 사회적 메시지를 확실히 할 것을 주문했다. 이 교수는 "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패가망신한다는 메시지를 사회 전반에 분명히 던져야 한다"며 "헌법에 부과한 국민의 4대 의무에 한 가지를 추가한다는 심정으로 안전을 소홀히 다룰 때는 확실히 제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기업과 국가의 의무를 강조했다. 이 교수는 "대규모 재난 사태는 기업의 안전 소홀로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사고가 재난으로 이어졌을 때 어떻게 책임을 물을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국가의 안전 소홀은 헌법 의무 위반인 만큼 기업에 부과하는 처벌 이상으로 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세월호 사태 이후 발생할 복합적인 문제에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세월호 참사로 대규모 이재민이 발생했는데 이들에게 수억원에 달하는 보상금이 지급될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가 이 보상금을 던져주고 그 이후의 사태는 '나 몰라라'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가령 이번에 구조된 여아 5세 아이에게 수억원이라는 보상금은 삶의 유일한 '구명조끼'인데 정부의 도움 없이는 금세 취약계층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며 "이제는 정부가 보상금이 아닌 연금을 지급하는 등의 재난 이후의 시스템도 구축해서 개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안전 비용 지불 당연시하는 문화 조성해야”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이재열 교수는 세월호 참사 이후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분노를 위기 관리 시스템 구축으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모든 책임을 특정 개인에게 떠넘기려는 분위기가 있다"며 "이런 방식으로는 문제 해결이 안 되고 사태는 반복된다"고 말했다. 그는 "사고에 대한 책임은 지위를 막론하고 분명히 물어야 하지만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시스템이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성찰이 무엇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우리 사회가 지나친 저가 열풍으로 안전에 대한 비용을 지나치게 축소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저가 항공사처럼 안전과 직결된 분야까지 저가 열풍이 불고 있다"며 "운임을 올리지 않고 비용을 최소화하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안전에 대한 투자를 줄여야 한다는 유혹에 계속 흔들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 처럼 안전에 대한 비용 지불을 당연시 하는 문화 조성과 함께 이를 철저히 관리·감독하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피아 척결과 재난 전문가 육성에도 힘쓸 것을 주문했다. 이 교수는 "해운협회 처럼 이익 결사체인 수많은 협회들은 사업자의 이익만을 대변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낙하산, 회전문 등 어떻게든 관료에 줄을 대서 규제를 무력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난 전문가 육성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의 소방방재청에는 인재가 절대 모일 수 없는 구조"라면서 "모두가 분노하는 이 시점에서 재난 전문가 육성을 위한 실질적인 예산과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 이재은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 "국가위기관리기본법 만들고 지역 현장형 시스템 구축해야"

이재은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

이재은 교수는 재난 발생 때 정부가 제대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부처별로 흩어져 있는 재난·위기 관련법을 하나로 묶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자연재해대책법, 수난구호법, 소방기본법, 민방위기본법 등 관련법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데 이 법들을 하나로 묶어 체계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가칭 국가위기관리기본법을 만들어 재난·위기 관리 전담기구를 설치해 국가적 재난에 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또 세월호 참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재난관리시스템이 현장중심형으로 짜여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장에 재난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대응해 구조할 수 있는 '지역-현장형 재난관리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중앙-광역-지방을 통합관리할 재난지휘시스템을 갖추는 동시에 재난이 난 현장이 확실한 권한을 갖고 움직일 수 있는 지자체의 재난관리 역량을 키워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를 위해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재난 대비 역량을 키워 줄 수 있는 매뉴얼 작업, 전문가 네트워크 구축 등 실질적인 도움을 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관료제의 폐해도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 관료들은 어떤 위급 상황이 발생해도 장관에게 보고하고 결제받는 절차가 최우선"이라면서 "국민의 생명이 걸린 상황에서는 형식적인 절차나 과정을 최소화하고 바로 수색과 구조 작업을 실시할 수 있는 정책 변화와 문화 조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 정지범 한국행정연구원 재난관리연구실장 "예방을 위한 1달러가 복구를 위한 2달러를 아낀다"

정지범 한국행정연구원 재난관리연구실장

정지범 연구실장은 예방과 대비가 사고 이후의 모든 대응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연구실장은 "미국은 클린턴 정부 때 재난관리를 잘했는데 당시에 '예방을 위한 1달러가 복구를 위한 2달러를 아낀다'는 말이 광범위하게 통용됐다"며 평상시 재난 대비를 위한 예방·대비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미국도 감세 정책을 중시하는 부시 공화당 정부가 들어선 이후 재난 대비를 위한 예방·대비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가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 이후 이를 되돌렸다"고 말했다.

또 재난 대응의 첨병은 해당 지역이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의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 때 해당 지역-주정부-연방정부의 행정절차를 모두 거치느라 구조와 복구가 늦었다"며 "총괄적인 컨트럴타워 만큼이나 현장에서 바로 대응할 수 있는 현장형 지휘체계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 연구실장은 "재난은 가장 지역적인 사고"라면서 "지역에서 바로 대응하고 복구 작업에 나설 수 있게 지속적으로 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미국 재난관리사 하규만 박사 "거위 리더십을 키워라"

미국 재난관리사 하규만 박사

하규만 박사는 세월호 참사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버팔로 리더십'을 지양하고 '거위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하 박사는 "이번 세월호 사태에서 선장과 정부가 보여준 리더십은 무리의 맨 앞의 리더가 무너지면 무리 전체가 무너지는 '버팔로 리더십'이었다"면서 "무리의 리더가 힘이 빠지면 두번째 리더가 다시 앞에 서서 종대를 유지하며 전진하는 '거위의 리더십'이 사회 전체에 뿌리 내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난에 대한 학문적 연구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미국의 경우 재난관리가 학문으로 정립돼 있지만 우리는 걸음마 단계"라면서 "재난 전문가 육성 만큼 재난관리를 제대로 된 학문으로 대접해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