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문은 닫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중·고등학생 현장학습 전문 K여행사는 세월호 사건 이후 폐업 위기에 몰렸다. 7건의 수학여행은 물론이고, 수도권 일대 당일치기 현장 학습 프로그램 50여건이 줄줄이 취소됐다. 결국 직원 6명 가운데 4명이 회사를 떠났다. 여행사 관계자는 "대목이 5월이라 예상 수익이 1억원이 넘었는데 다 날아가 버렸다. 10년 넘게 여행사를 하면서 이렇게 어렵기는 처음"이라고 푸념했다. K여행사처럼 5월 대목을 기대하던 여행업계는 세월호 사건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세월호 사건 전에는 당일치기 여행 전세버스 대절료가 40만원을 넘었는데, 지금은 20만원으로 반 토막이 났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로 여행·숙박·음식업종 등 내수 업종들이 비틀거리고 있는 가운데, 최근 환율마저 급락(원화 가치 급등)하면서 수출 전선에도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경제의 양대 축인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충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장중 한때 1021원 선까지 떨어지며 2008년 8월 8일(1017.5원) 이후 5년 9개월 만에 장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9일 1050원 선이 깨지면서 시작된 환율 하락세는 한 달 새 원화 가치를 3%가량 끌어올리며 수출기업의 숨통을 죄고 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내수와 수출이 동시에 악화된다면 올해 성장률은 예상보다 크게 떨어질 수 있다"면서 "환율 문제는 대응이 어려운 만큼 내수 활성화를 위한 경기 부양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사건 후폭풍, 소비 위축으로 성장률 떨어진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소비가 위축되고 있는 현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는 신용카드 사용액 감소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난달 16일부터 30일까지 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우리·하나SK카드 등 7개 전 업계 카드사의 개인 신용판매액(일시불 및 할부)은 하루 평균 9701억원으로 전달 같은 기간에 비해 5% 줄었다. 특히 유흥, 요식, 레저 등에서 카드 사용액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금융연구원은 8일 "세월호 사건으로 올해 민간소비가 1조원 줄어들면서 내수가 위축돼 경제성장률이 0.1%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최대 0.3%포인트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박성욱 금융연구원 실장은 "세월호 사건과 반대로 소비를 늘릴 수 있는 브라질월드컵, 인천아시안게임 등의 영향까지 모두 고려한 수치"라고 말했다.

8일 원·달러 대비 환율이 장중 한때 1012원 선까지 하락하며 2008년 8월 이후 5년 9개월 만에 장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날 오후 서울 명동의 한 환전소 시세표가 1달러당 1021원을 표시하고 있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세월호 사건으로 2분기(4~6월)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올해 성장률은 당초 예상(4.2%)보다 0.1% 낮아진 4.1%에 그친다. 이 같은 성장률 하락의 80%가 세월호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소비 위축이다. 특히 의류·신발·가방 같은 준내구재와 주류·담배·식품·외식·오락·관광 등 단기성 소비가 대폭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 나빠질 가능성도 있다. 성장률이 0.1%포인트 하락할 것이라는 예상은 세월호 사건으로 인한 소비 위축이 2분기에만 국한되고, 3분기(7~9월)부터는 회복된다고 전제한 것이다. 만약 3분기에도 민간 소비가 계속 부진하면 성장률이 3.9%까지 떨어질 것으로 금융연구원은 전망했다.

환율 하락은 구조적 요인, 정책 당국 해법 찾기 어려워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는 올해 연평균 원·달러 환율을 1050원으로 예상하고 사업 계획을 짰지만,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원·달러 환율이 10원 떨어질 때마다 각각 1200억원과 800억원의 손실을 입는다. 중소 수출기업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작년 12월 수출기업 101개사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들은 손익분기점 환율을 1066.86원이라고 답했다.

최근 가속도가 붙은 환율 급락은 일회성 요인이 아니라, 구조적인 상황이 원인이어서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25개월 연속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면서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가 쌓이는 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상당 기간 금융 완화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면서 글로벌 달러 약세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외환 당국도 손을 쓰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외환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24개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IB)의 4분기 원·달러 환율 전망치는 지난달 초 1060원에서 최근에는 1045원으로 떨어졌다.

1달러당 1000원 밑으로 추락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스위스계 금융회사인 UBS는 8일 공개한 보고서에서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계속되면서 원화가 강세를 보여 환율이 연내에 975원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일본계 미쓰비시도쿄은행도 4분기 원·달러 환율을 975원으로 예상했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환율이 최근 며칠간 급격하게 떨어지는 배경에는 투기적 세력이 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면서 "손을 놓고 지켜만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환율이 1달러당 1000원 밑으로 떨어져 세 자릿수가 된다면 수출 등에 상당히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