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정주영 회장

현대건설(000720)이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조성한 충남 서산시 ‘서산농장’ 일부를 현대모비스(012330)에 매각했다. 정 회장의 정신을 잊은 행동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5일 현대건설은 공시를 통해 “현대모비스에 충남 서산시 부석면 서산농장 토지 일부를 375억원에 매각했다”고 밝혔다. 서산바이오웰빙특구에 포함된 서산농원 농지 110만㎡(33만평)다. 현대모비스는 해당 부지에 2500억원을 투자해 14개의 자동차 주행시험로, 내구 시험동, 연구동을 갖춘 자동차 첨단부품 연구시설을 지을 예정이다.

‘현대맨’에게 서산농장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얼이 서린 곳이다. 가난한 소작농 집안에 태어난 정 회장은 ‘국토를 넓혀서라도 쌀 자급률을 높여야 한다’며 간척사업을 진행했다. 1984년부터 인원 235만명, 덤프트럭 51만4300대를 투입해 여의도 33배 규모의 간척지를 조성했다.

정주영 회장이 서산농장 쌀을 바라보는 모습

서산농장은 국내에서도 대규모 기업형 영농의 가능성을 보여준 곳이다. 마지막 270m 물막이 공사는 25만톤 규모 폐유조선을 동원해 급류를 막고 진행한 ‘정주영 공법’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난 1998년 북한에 기증한 소 1001마리도 서산농장과 정주영 회장의 선물이었다.

정 회장은 서산농장 조성 후 “그 옛날 손톱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돌밭을 일궈 한뼘 한뼘 농토를 만드신 아버지에 바치고 싶었던 때늦은 선물이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현대그룹 역시 서산농장의 상징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지난 2001년 유동성 위기로 그룹 운명이 위태했을 때만 한차례 농장 일부를 매각했다. 이번 매각은 13년 만에 처음이다.

업계에서는 유동성 위기 등 특수 상황이 아닌 현대건설이 해당 부지를 매각한 것과 관련해 창업주의 정신을 잊은 것이라고 지적한다.

정주영 공법으로 잘 알려진 유조선 물막이 공법

재계 한 관계자는 “2세·3세로 경영이 넘어오면서 창업주의 유산이 희석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며 “다만 서산농장은 정주영 회장과 현대의 얼이 담긴 곳이란 점에서 경솔한 행동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대그룹이 정 회장의 유산을 매각해 자동차 센터를 조성하는 것은 자동차그룹이 득세한 달라진 현대가(家)의 상황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건설 관계자는 “서산시가 주도하는 개발사업의 하나로 부지를 매각한 것으로 오랜 기간 고려해 결정한 일”이라며 “정주영 명예회장의 뜻을 저버리거나 정신을 잊은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