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원 연구팀이 미국에 이어 둘째로 사람의 복제 배아(胚芽)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 사건 이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던 국내 줄기세포 연구에 다시 새싹을 마련한 것이다.
박세필 제주대 줄기세포연구센터장은 "진작 꽃 피웠어야 했던 한국 과학이 후퇴해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10년이 걸렸다"며 "황 박사 사태 이후 정부가 윤리적 문제를 지나치게 강화하다 보니 더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줄기세포 연구의 주도권을 되찾을 계기를 만들었다고 할만큼 중요한 성과라고 평가하지만 치료단계까지 가려면 넘어야할 숙제가 많다는 조심스러운 견해도 나온다.
◆美연구진 보다 한발 더 나아가
과학자들은 이 기술을 발전시키면 파킨슨병이나 시력을 잃은 실명 환자가 자신의 세포로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어 잃어버린 두뇌능력이나 건강한 시각세포를 대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기 몸에서 떼어낸 세포로 만들기 때문에 거부반응을 줄일 수 있는 것이 최대 장점으로 꼽힌다.
줄기세포 치료가 다른 사람의 장기를 이식하는 것보다 것보다 높게 평가되는 이유다.
이번에 개발된 기술은 작년 5월 미국 오리건대 미탈리포프 교수팀이 먼저 성공했다. 하지만 미국 연구진은 아직 덜 자라 복제가 쉬운 태아와 신생아 피부 세포를 이용했다. 반면 차병원 팀은 여성 4명에게서 기증받은 난자 77개와 각각 30대와 70대의 성인 남성 2명의 피부 세포를 이용해 복제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었다.
한국 연구진의 방식은 노화가 진행돼 복제하기 어려운 성인의 체세포를 이용했다는 점이 다르다. 줄기세포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 상당수가 성인이라는 점에서 이번 연구가 한발 나아갔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불법 난자 활용 논란이 일었던 황우석 박사 때와는 달리 기증자를 명확히 함으로써 윤리적 논란도 비껴갔다.
김동욱 연세대 의대 교수(줄기세포 기반 신약개발 연구단장)은 "성인의 체세포일수록 분화의 끝 단계에 있기 때문에 원시세포인 줄기세포가 되기 어려운데 해낸 것"이라며 "나이들면서 병을 얻은 수많은 환자의 체세포로도 치료제를 만들 수 있는 실현 가능성을 높였다"고 말했다.
◆美日과 경쟁 다시 가능해져…망막질환 치료 추진
최근 세계 줄기세포 연구는 크게 다 자란 세포를 줄기세포로 만드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Sc)와 복제배아줄기세포로 양분되고 있다.
일본 교토대 연구팀은 유도만능줄기세포 연구로 2012년 노벨상을 받기도 했다. 복제배아줄기세포는 황 박사의 논문조작 사건 이후 주춤했다가 지난해 미국 미탈리포프 교수팀의 연구성과를 계기로 되살아 났다.
이번에 성공한 기술은 일본이 이끌고 있는 유도만능줄기세포보다도 환자에게 수월하게 적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유도만능줄기세포는 다 자란 세포에 특정 유전자를 넣어 배아줄기세포 상태로 만들지만 유전자 변형이 여전히 우려된다.
한국은 이번 연구 성과로 복제 배아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에 가장 가까이 다가섰다. 현재 줄기세포 치료가 가장 먼저 도입될 가능성이 높은 분야는 뇌와 눈, 척추 등의 치료 분야다.
차병원 연구진은 실제로 환자의 체세포를 활용해 복제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방법을 추진하고 있다. 2년 정도 뒤에는 복제배아줄기세포를 활용해 퇴행성 질환인 파킨슨병이나 망막질환 치료로 임상시험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줄기세포주 확립 성공률 높이고, 규제 낮춰야
국제 의료산업계의 통계를 종합해보면 세계 줄기세포 치료 시장은 2013년 34억달러에서 2016년에는 84억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남은 과제는 특성을 분석해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를 만들 때의 효율을 높여 상용화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지금은 기증 받은 77개의 난자로 5개의 포배기 배아를 만들고(6.5%), 2개의 배아줄기세포주를 만들었지만(2.6%) 연구를 거듭해 성공률을 높일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규제도 완화돼야 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치료목적으로 활용되고 남은 난자나 손상된 난자만 연구에 활용할 수 있다. 이동률 차병원 줄기세포연구소 교수는 "손상 받은 세포나 기관을 가진 환자에게 자기의 세포를 이용해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주를 만들고 맞춤형 치료제로 주입하면 면역 억제제 없이 안전하게 치료할 길이 열릴 것"이라며 "역분화줄기세포와의 비교 연구로 기능 개선에도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