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강덕수 전 STX 회장, 현재현 동양 회장, 윤석금 웅진 회장

강덕수 전 STX 회장이 회삿돈을 횡령·배임한 혐의로 구속되면서 경영위기로 그룹이 무너진 총수들의 사업처리 기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2년새 경영위기로 그룹이 해체 위기에 몰린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강덕수 전 회장 등에 대한 법적 처벌 수위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기성 CP(기업어음) 발행 혐의로 기소가 됐으나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는 윤 회장과 달리 현 회장과 강 전 회장에게는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윤 회장과 강 전 회장은 평범한 회사원에서 대기업 총수까지 오른 ‘샐러리맨의 신화’를 이뤘다가 무리한 투자로 경영위기를 초래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윤 회장이 불구속 처분을 받은 것에는 이같은 성장배경과 사회적 평판이 적지 않는 영향을 미친 것으로 법조계에서는 보고 있다.

반면 강 전 회장이 윤 회장과 달리 ‘성장배경의 메리트’를 누리지 못한 이유는 위법 행위의 사안과 심각성이 다르다고 사법부가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강 전 회장은 STX중공업의 자금으로 재정난에 빠진 계열사의 기업어음을 사거나 연대 보증 등을 지시하는 방식으로 회사에 3100억원 가량의 손해를 끼치고, 계열사를 부당 지원하는 과정에서 회사 자금 540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와 함께 계열사 CFO가 지시한 2조3000억원대의 분식회계의 배후라는 혐의도 받고 있다.

이와 달리 윤 회장은 그룹의 부실한 재무상태를 숨긴채 사기성 기업어음(CP)을 발행하고 계열사를 부당 지원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이다. 윤 회장 측은 재판 과정에서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무리하게 CP발행을 추진한 측면은 있지만 의도적으로 투자자를 속인 사기성 발행은 아니다’며 반박하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2조3000억원에 이르는 STX그룹의 분식회계 규모는 액수 측면에서는 동일한 사건 중 최대 규모에 이르는 수준”이라며 “이런 사안의 심각성이 위중한 경우에는 재판부가 불구속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경유착에 대한 의혹을 강 전 회장 구속의 또 다른 배경으로 지목하고 있다. STX그룹은 각종 M&A(인수합병) 등을 통해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급성장했고, 강 전 회장은 이명박 정부 집권기에도 당시 정권 실세들과 두터운 교분을 쌓았다. 법조계와 금융계에서는 STX그룹이 해외법인 매출채권 조작 등 분식회계를 통해 조성했던 비자금이 정치권으로 흘러갔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도 강 전 회장의 구속 수감 후 이뤄질 후속 수사에서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헤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동일한 사기성 CP발행 혐의로 기소된 윤 회장과 현 회장의 엇갈린 처분을 주목하는 흐름도 있다. 윤 회장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반면, 현 회장은 구속 수감을 면하지 못한 이유를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웅진과 동양 사태의 피해 규모의 차이 등을 상반된 처분의 배경으로 꼽고 있다. 동양그룹 CP 피해규모가 1조3000억원 수준으로 웅진 CP 피해규모(1100억원)보다 10배 이상 크다는 점이 부각됐다는 것이다.

또 윤 회장이 웅진홀딩스 법정관리를 신청했을 때부터 경영권을 포기하겠다고 밝혔고, 캐시카우(현금창출원)인 웅진코웨이를 매각하는 등 회사 회생을 위해 ‘살신성인’의 자세를 취한 것도 구속을 면하게 한 요인으로 평가된다. 이에 힘입어 웅진그룹은 지난 2월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윤 회장도 회사가 완전 정상화된 이후 CP투자 피해를 보전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에 반해 동양그룹은 현 회장 등의 도덕적 해이가 극심하게 대비됐다는 게 법조계 평가다. 현 회장 등 동양그룹 핵심부는 내부에서 유동성 위기 우려가 지속적으로 보고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묵살하고, 오히려 동양증권의 CP판매를 통한 자금 유치를 독려해 투자자 판매를 확산시켰다는 점이 국회 국정감사 등에서 수차례 확인됐었다.

이같은 이유에도 불구하고, 다른 총수와 비교했을 때 윤 회장에 대한 법적 처벌 강도가 약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검찰이 윤 회장에 대해서는 구속영장도 신청하지 않아 이같은 비판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 등의 사법처리 판단 역시 사회적인 정서 등 시대 흐름에 추종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웅진사태가 기업인 범죄를 엄벌해야 한다는 정서가 지금보다는 약한 2012년 하반기에 터졌다는 것이 윤 회장에 대한 처벌 강도에 영향을 미친 측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