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박모(45)씨는 작년 8월 서울 남대문의 한 카메라점에서 공식 수입 대리점을 통하지 않은 '병행 수입(竝行輸入)' 일제 카메라 렌즈를 40만원에 샀다. 공식 수입 업체 수입품보다 10만원이 쌌다. 그런데 두 달 뒤 문제가 생겼다. 고장이 나서 국내에 있는 해당 회사의 애프터서비스(AS)센터를 갔더니, 수리비가 20만원이라고 했다. AS센터에서는 "병행 수입 제품은 보증수리가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늦어도 올해 말에는 이런 경우도 병행수입협회 소속 회원사들이 만든 공동 창구를 통해 AS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아들 둘을 키우는 주부 황규란(38)씨는 작년 11월 국내 정식 수입품으로는 3만9000원인 크록스의 슬리퍼를 해외 직구를 통해 절반 이하 가격에 주문했다. 문제는 2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제품을 받았다는 것. 관세청이 통관 절차에 문제를 삼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도 해결된다. 이달 말부터 100달러 이하의 거의 모든 수입품은 통관 기간이 반나절로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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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9일 이 같은 내용의 해외 직구(직접구매)와 병행 수입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외국보다 10~40% 비싸게 팔리는 수입품의 가격을 낮추겠다고 밝혔다. 국내 공식 대리점이 수입품 판매를 독점해 많은 이윤을 챙기는 구조를 깨겠다는 것이다.

100달러 이하 수입품 모두 簡素化

해외 직접구매(直接購買)는 해외 인터넷 쇼핑몰이나 국내 배송대행 업체를 통해 주문하고 국제항공편으로 물건을 받는 구매 방식을 말한다.

지금까지 의류·신발·화장지·CD·인쇄물·조명기기 등 6개 품목을 제외하고는 통관 절차가 복잡했다. 관세사를 통해 수입 신고를 하고, 대행 수수료(4000원)를 내고 통관 기간도 최소 3일 이상 걸렸다. 그러나 이달부터는 식품·의약품을 제외한 100달러 이하의 수입품은 이런 통관 절차를 밟지 않고 운송 업체가 갖고 있는 물건 목록만 확인되면 바로 수입된다. 따라서 통관 기간은 반나절로 줄어든다.

해외 직구는 값이 싼 반면 반품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대해서는 한국소비자원이 해외 직구 대상 국가와 연계를 해 피해를 보상하는 방안을 찾기로 했다. 또 포털 사이트의 카페나 블로그를 통해 이뤄지는 해외 구매 대행이 잘못됐을 경우에는 포털 사이트 운영자가 자체적으로 해당 카페나 블로거를 제재하는 방안을 의무적으로 갖추도록 했다.

병행 수입도 활성화될 전망이다. 병행 수입은 국내 수입 지정 업체가 아닌 수입 업자가 해외 매장이나 제3국 등을 통해서 값싸게 수입해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소위 '짝퉁' 제품을 제조해 병행 수입 물건인 것처럼 판매하는 사례가 많아 소비자들의 신뢰를 받지 못했다.

정부는 정상적인 병행 수입품을 소비자들이 믿고 구매할 수 있도록 현재 122개 업체의 수입품에만 적용되는 통관인증제를 2015년까지 230곳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물건 포장 바깥에 관세청이 붙인 통관표지(QR 코드)를 소비자가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통관 일자와 상품 정보가 스마트폰에 뜬다. 또 그동안 국내 독점 수입 업자가 병행 수입 업자의 영업 활동을 방해해온 것도 적극적으로 제재하기로 했다.

수입 립스틱 최대 15배 暴利

정부가 해외 직구·병행 수입 활성화 방안을 내놓을 만큼 국내 수입품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싼 게 사실이다. 관세청이 9일 공개한 10대 주요 수입 물품의 수입 가격을 보면, 국내 판매 가격이 수입 가격의 평균 3배에서 무려 15배였다. 립스틱은 1423원에 수입돼 2만1150원에 팔리고, 등산화는 2만2560원에 수입돼 16만9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와인·진공청소기·유모차·생수 등도 판매 가격이 수입 가격의 3~5배였다.

비싼 이유는 중간 유통 단계의 마진이 높기 때문이다. 수입 유모차는 평균 13만원에 수입돼 56만원에 팔리는데, 공식 수입 업체와 판매 백화점 측이 마진을 각각 30% 이상씩 남기고 있다. 여기에 물류비(5~7%), AS 비용(10%), 판촉지원 비용(10%)도 덧붙여진다. 기획재정부 박봉용 과장은 "장기적으로 전체 수입품 판매 가격이 10~20% 인하되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해외 직구(直購)

국내에 있는 소비자가 해외의 인터넷 쇼핑몰이나 구매 대행 업체를 통해서 주문하고 택배로 배달받는 것.

☞병행 수입(竝行 輸入)

국내 독점 판매권을 갖고 있는 수입업체가 아닌 제3업체가 다른 유통 경로를 거쳐 국내로 물건을 들여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