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5년 8개월 만에 1050원선 아래로 떨어지자 수출기업들이 손익 계산에 한창이다.

원·달러 환율이 5년 8개월 만에 1050원 선이 무너졌다. 수출업체를 중심으로 국내 산업계는 원화 강세에 대비해 어느 정도 전략을 마련했지만 막상 현실화되자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9일 달러화에 대한 원화환율은 전날보다 10.8원 내려간 1041.4원을 기록했다. 2008년 8월 이후 최저다.(원화강세) 전날 국제통화기금(IMF)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0.1%포인트 낮추면서도 우리나라의 성장률 전망치를 3.7%로 유지한 것이 원화 강세 요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보기술(IT)과 자동차, 철강, 조선 등 대형 수출업체들은 아직까지 큰 영향이 없다는 반응이다. 생산시설을 해외로 옮겼거나 기준 환율을 1050원 아래로 잡아놓은 곳이 많아 아직까진 버틸 수 있다는 것. 문제는 환율에 따라 실적이 달라지는 중소업체들이다.

◆ “아직 버틸만 해”…내수업체는 오히려 반겨

수출 대기업들은 당장 큰 부담을 느끼진 않는다고 전했다. 이미 여러차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환율급변동을 경험하면서 단기적 대응대신 장기적인 경쟁력 강화로 체질을 개선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생산시설의 해외이전이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체 생산물량 가운데 미국과 중국, 유럽 등 해외에서 생산하는 비중이 61.7%에 이른다. 기아자동차역시 해외 생산 비중이 43.5%까지 증가했다.

삼성전자(005930)는 달러화 외에도 엔화나 유로화, 루블화, 위안화 등 다양한 통화로 결제를 해 위험을 분산시키고 있다. 환율 외 원가절감 요인을 마련하고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 비중을 늘린 것도 회사 차원의 대비책 중 하나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 뿐 아니라 이미 많은 IT 관련 기업들은 기준 환율을 1000원선 아래로 잡아 아직까지는 여유가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장기 계약이 필수인 조선업체는 이미 2~3년 전 물량을 받아놓은 터라 당장의 실적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 밝혔다. 다만 새로 계약하는 물량에 대해선 다소의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

항공 등 내수업체는 원화강세가 오히려 반갑다. 원화강세가 국내 고객들의 구매력을 높이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또 항공유 수입단가가 낮아지면서 비용부담도 덜어낼 수 있다. 다만 국내 기업들의 수출물량이 줄어들 수 있어 화물 물량 수요에 대해선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 中企 긴장…"환율보다 글로벌 수요가 관건"

대기업보다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중소기업들은 환율하락이 달갑지 않다. 가뜩이나 최근 근로시간 단축과 통상임금 확대 등 현안들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환율하락이라는 악재까지 만나 수익성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12월 중기중앙회가 수출 중소기업 101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환율 손익분기점은 1066.05원으로 분석됐다. 지금의 환율은 이미 중소기업들이 버틸 수 있는 수준을 넘어버린 상태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부원장은 “엔화 환율과 비교했을 때도 원달러 환율이 떨어지는 속도가 다소 가파르다”며 “키코 사태로 환헤지 이용도 꺼려하는 추세라 공적 금융기관에서 나서 중소기업이 환율하락에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환율 변동도 중요하지만 향후 해외 경기상황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클 것으로 봤다. 지난 2005년에도 환율이 1000원선까지 하락했지만 주식시장이 전고점을 돌파하는 등 글로벌 수요증가 효과가 환율효과를 압도했다. 경기가 좋아 떨어지는 환율이라면 나쁠 건 없다는 얘기다.

다만 지금의 경기회복세가 그 때와 달라 문제다. 미국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는 징후는 여럿 있지만 소비지출 회복 속도가 생각보다 느리고, 유럽이나 중국 등은 경기둔화 움직임이 뚜렷하다. 수출환경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는 있다는 것.

전지원 키움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미 중앙은행이 돈줄을 죄면서도 기준금리 인상시기를 내년으로 예상하는 것은 그만큼 소비지출 회복이 더디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중국의 도시화 정책과 유럽, 신흥국의 내수부양 책 등을 기대해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